레스토랑 에빗을 거부한다
조리에 대해서는, 에빗이 잘 할 수 있는 것에 한식 조리법이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한국의 문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한국 식재료를 풀어내는 것이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일본의 문법이 더욱 눈에 띄는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발효는 사랑하지만 한식의 맛이나 조리법은 배제합니다. 기본은 서양 요리와 일본 요리이고, 그 위에 몇가지의 낯선 감각을 수놓는 식의 방법론입니다. 낯선 것이 낯설지 않을때 곧 의미를 잃을 정도로, 기반이 되는 요리는 복잡성을 회피합니다. 새로운 것들이 색다르게 펼쳐지려면 기본적인 음식의 맛의 층이 쌓인 뒤 그 다음 이런 것들이 새롭게 다가올 때 비로소 "새롭다"는 감각을 느낄 것인데, 낯선 것들을 강조하기 위해 본래의 맛있는 조합을 궁핍하게 만듭니다. 행여나 흑감을 가릴까봐 오렌지와 같은 것이 아닌 애호박을, 솔방울을 가릴까 조개 중에도 맛이 약한 바지락을 사용하는 식입니다. 빵과 밥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했는지 탄수화물은 자취를 감춘 점도 의아합니다.
결론적으로 음식을 놓고 봤을때, 저는 조셉 "에빗" 린저우드 셰프가 한국 소비자의 맛의 경험을 상당히 낮게 예상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복잡한 맛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낯선 것에 압도되어 경험에 대한 판단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는 느낌입니다.
2020년 5월에 작성한 '에빗' 레스토랑의 리뷰 중 일부와, 그에 첨부되었던 사진이다. 룰라드처럼 돌돌 말아 썬 광어에 잣을 올린 이 요리는 살면서 내가 본 가장 어설픈 크넬의 자리를 아직 당당히 지키고 있다. 하지만 조셉 리저우드는 바로 그 '낯선 것으로 압도하기' 문법으로 보기좋게 성공했고, 서울에 몇 없는 2스타 레스토랑의 셰프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사실, 여기까지는 내가 예상했던 내용이었다. 서울의 미쉐린 가이드는 그 속사정은 몰라도 발표의 결과물로 보면 '3스타에서 검증된 경력이 있는 셰프에게는 최소 1스타, 이후 몇 년 자리 잡으면 2스타'같은 불행한 습벽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노마니 레드버리니 별의 별 레스토랑을 열거하던 그의 이력서를 품은 에빗의 성공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지금 에빗이 서울의 식문화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
지금 시크릿 모드로 유튜브에 접속해서 '에빗'을 검색해서 무작위로 스크롤을 내려보라. 개미, 흑백요리사, 가격, 미쉐린 2스타 등의 키워드가 상단에 노출된다. 유명 예능 출연과 미쉐린 2스타에 필적하는 이 레스토랑의 흥행의 키는 이전보다도 더 나쁜 방향으로 발전한, 개미를 위시로한 희한한 식재료의 나열이다.
최근 식약처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곳의 개미는 미국과 태국산이란다. 우스운 일이다. 왜? 그간 '설악산에서 직접 채취한 개미' 따위의 보도나 후기를 내가 숱하게 봤으렸다.
누가 봐도 십수년 전 NOMA 1.0부터 이어오는 노마의 대표적인 개미 요리, '개미와 타르타르'부터 노마 교토의 '개미를 올린 도화새우'까지 르네 레드제피의 너무나도 잘 알려진 아이디어를 가져간 주제에 그의 한국어 인터뷰에서 '노마'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그것 때문에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가 노마를 훔치던 알케미스트를 훔치던 라르페주 랑부아지를 훔치던 관심 없다. 그런 유사품 지향의 레스토랑은 선진국 대도시라면 도처에 널렸다. 다만 인터뷰까지 훔쳐내는 대범함,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러한 방식으로 들키는 어설픔, 그리고 그런 그를 받들어 모시지 못해 안달인 이 도시와 사람들에게 다시 실망할 뿐이다.
적어도 레몬이 아닌 다른 시트러스를 언급하는 성의라도 보였다면, 내가 그에게 조금은 덜 실망했으리라.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격이 될 것 같아 이런 부류의 글은 자제하려 했으나, '개미가 다른 한식 재료 요리가 개미에 가려지는 것 같아 뺐다'는 그의 인터뷰나 그걸 검증 없이 싣던 언론이나 그 꼴을 보는 나를 보니 한 마디 하는 것이 스스로의 마음에 따르는 일이라 이참에 밝힌다. 나는 에빗을 거부한다. 수입산 건조 개미를 직접 채집한 것으로 속여서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노마를 베껴서, 경력을 부풀려서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요리사가 왜 요리하는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왜 특별히 돈과 시간을 들여 값비싼 레스토랑에 가는가라는 본질적인 가치를 왜곡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에빗을 거부한다. 한식의 저변이 열악한 시절부터 묵묵히, 또는 가끔은 요란하게 기반을 다져온 공로자들이 아니라 금발벽안의 백인이 한식에 호기심을 가지고 다소 황망한 요리를 탐구니 실험이니 하는 명분으로 내세우며 결국 이런 요리로 한식을 망치고 있다. 그래, 다 좋다.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개정 운동도 하고, 설악산에 진짜 먹을만한 개미가 있는지 찾는다고 치자. 그럼 저 인터뷰가 말이 되는 인터뷰가 되는가? 언제부터 한국이 개미를 줏어 먹어야 할 정도로 신맛이 없는 도시가 되었는가? 한국에 레몬을 대체할 국산품이 없어서 개미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이이라면 비분강개해야 할 것 아닌가.
물론 레스토랑에 대해 다루려면 최소 비용을 치르고 그곳의 요리를 먹고 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옳지만, 예전 음식이나 꺼내오고 최근 공들여 만들고 있는 여러 요리에 대한 평가를 남기지 못하는 것은 양해해 달라. 손수 채집했다는 재료부터 정체불명의 우편물로 수입되는 마당에 믿고 먹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나는 탈이 나도 다음 날 아침에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 맛없는 요리는 무섭지 않아도 위험한 요리는 무서운 사람이다.
- '나는 맛있게 먹었는데 나를 모욕하는 것이냐', '열심히 하는 주방 직원들에게 미안하지 않느냐'는 반응은 사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