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ORAY - 볶음밥의 간

어떤 이유로 송도국제도시를 간 날이었다. 한국식 신도시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호수공원을 앞에 두고 나는 길을 잃었다. 점심을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한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지도를 열어 과거의 기록을 둘러보니 저녁에 갈 수 있는 곳으로 메모한 것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켄지 로페즈의 분류로는 '전문가의 방식'으로 달걀을 푼 볶음밥이지만 달걀은 엄밀하게 조리된 느낌이 아니었다 - 나는 어릴 적부터 의도적으로 노른자를 터뜨려 납작하게 굽는 프라이의 옹호자였지만, 그것이 마른 질감의 달걀을 용인한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밝음이 있었으니 바로 볶음밥의 또렷한 맛이었다. 짠맛과 감칠맛. 주로 새우에서 나오는 짠맛은 그 자체로 볶음밥을 완성된 음식으로 만든다.

한국형 볶음밥에 대해 '굿 올드 데이' 운운하는 중식 애호가들이 비판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단순히 완성된 질감을 가진 탄수화물에 소스를 얹어 흥건하게 만들기 때문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푸젠식을 비롯해 전분물을 사용하는 광범위한 본토의 실행을 적절히 설명할 수 없게 된다(그것들은 분명히 성공한다). 오히려 자장이 가진 진한 발효로 얻은 감칠맛과 단맛이 중국요리인 볶음밥에 새로운 지역적 차원을 더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볶음밥의 자장은 볶음밥 그 자체를 bland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요 극복의 대상이다. 자장이 강한 맛을 가진다고 해서 볶음밥이 맛을 가지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님에도, 오늘날 실행에서 볶음밥의 간은 계속해서 약해만 지고 있다. 잘 볶지도 않은 흥건한 볶음밥이 횡행하게 된 것은, 무엇을 위해 볶는가라는 목적성을 잃었기 때문은 아닌가. 딱딱하게 굳은 밥을 다시 먹으려고 탄생했다는 의미 모를 고사를 재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열을 사용해 맛을 불어넣는 과정이라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야 한다. 이곳의 볶음밥은, 적어도 그 목적만큼은 올바르게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