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land Distillery, Ceylon Arrack

칵테일과 증류주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을 꼽으라면 보통 호텔 바 문화의 종가라고 할 수 있는 뉴욕, 위대한 클래식 칵테일의 발상지인 파리 등이 가장 먼저 언급되겠지만, 아시아인으로서 그리고 칵테일 애호가로서 계속하여 주목하게 되는 곳은 바로 인도-동남아 지역이다.

다양한 칵테일 레시피의 등장과 교류, 문헌화는 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바로 그 시절 제국주의자들이 누리던 아름다움이야말로 칵테일 문화가 가진 힘이다. 피지배민족이자 그 게임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던 민족의 후손으로서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 당시 서구 열강들은 중국-동남아로 이어지는 해상무역로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끌어당겼고, 그 과정에서 증류주 문화 또한 융성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 중 하나가 바로 아락으로, 인니 지역에서 만든 '바타비아 아락'이 럼의 대두 이전 이 무역로를 대표하는 증류주로 서방 세계를 제패하 바 있다. 비록 플랜테이션 농업이 남반구 전역에서 대대적으로 전개된 뒤, 사탕수수에 밀려 칵테일의 무대에서는 서서히 퇴장하였기에 클래식 칵테일의 레시피에 자리잡지 못했지만, 아시아의 무역로에서 진이 인도 식민지에서 진 앤 토닉이라는 업적을 남겼다면 아락은 펀치로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펀치의 재료는 이제 무궁무진하고, 바타비아 아락은 쇠퇴하여 외려 오늘날 아락 시장을 잡고 있는 것은 코코넛 수액으로 만드는 스리랑카 아락이지만 그 한 잔에서 나는 여전히 아시아 무역의 위대함을, 교역 중 탄생하는 교류와 환대의 맥락의 즐거움을 떠올린다(비록 나는 그 무대 뒤에서 접시를 들고 서 있을 하인의 역할이겠지만서도). 게다가 코코넛의 취급이 특히 좋지 않은 북방 국가 대한민국의 주민으로서 코코넛으로 만든 술? 남방의 유혹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탑노트에서는 견과나 헤이즐넛을 떠올리게 하는 브라운 스피릿같은 특징을 분명히 드러내지만, 팔레트에서 오렌지필을 떠올리게 하는 선명한 신맛이 과실 기반의 증류주가 가진 에스테르나 유기산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낸다. 럼을 떠올리게 하는 훵크 역시 매니아들이 좋아하는 럼에 비하면 미약하나마 존재한다. 진저비어나 강한 리큐르에 탄산수와 같이 연출하면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이야기는 추후에 다루어 보자).

잘 알고 있는 종류의 스피릿의 더 다듬어진 종류를 찾아 헤매는 게임도 재미가 있지만, 조금만 방향을 돌려보는 것으로 더 넓은 세계를 볼 때 여행의 참 의미를 느낀다. 여행지에서 만나기 좋은 한 잔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