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카츠팔월 - 애프터매스
누군가 십 년 전에는 썩 멋진 요리를 하던 자리에서 같은 이름으로 돈가스를 튀기고 있다. 기다리는 객으로 앞이 붐비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여느 날이나 편하게 자리잡을 수 있는 날이 많아졌으니, 어느 하루 이곳을 지나다 결국 참지 못하고 계획을 바꾸었다. 그래, 돈가스를 먹는 것으로 하자.
아마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하면 비웃음을 사겠지만, 일본 브랜드의 분점인 '긴자바이린(梅林, 2011)'과 '안즈(和心とんかつ あんず, 2010)' 같은 가게가 서울에서 먹을 수 있는 최선의 돈가스로 여겨시던 시절이 있었다. 오피스타운이나 주거 밀집 지역에서 동네를 빛내는 가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돈가스를 두고 논쟁이니 취향이니를 딱히 따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로스/히레'의 명칭 사용 등에서 일본풍 경양식의 형태를 유지하는 종류들은 꾸준히 존재했으나, '니혼제 돈가스'는 여전히 비웃음의 대상이었을 뿐, 탐닉의 대상도 숭배의 대상도 아닌 철저한 일상의 존재였다. 그로부터 몇 년, 아니면 몇십 년, '카츠'의 시대가 왔다. 등심에는 어련히 피하지방(脂身)이 붙고, 입자가 큰 습식 빵가루의 색은 옅어지고, 써는 두께는 두꺼워졌다. 소금이나 와사비 혼합물 따위가 각광받는 세상에서 여전히 성의 없이 같은 기성품을 쓰는 소스만이 옛 흔적처럼 남았을 뿐이다. 걸음이 빨랐던 몇 가게는 식도락가라면 으레 가보아야 할 명소로 자리잡았고, 부산에서 가장 오래 기다리는 식당이 돈가스 가게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이전에 가봤으니 괜찮다'는 안도감과 부산 토속 요리이 도외시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팔월식당에서 만난 식사는 그 시절의 풍파를 한껏 견딘 뒤 바람에 닳은 음식같았다. 덧살을 길게 붙인 인심은 좋지만 조리 상태는 나빴다. 튀김이란 무엇인가. 재료를 열에 직접적으로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감싸는 방법은 조선시대의 조리법에도 등장할 만큼 보편적인 발상이다(이런 방식을 채용한 요리를 맛볼 수 있던 곳으로는 스와니예가 있었다). 고열로 인해 튀김옷이 마이야르로 감칠맛을 얻는 것은, 해석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어도 부수적인 이익으로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튀김옷이 맛있기 위해 재료가 희생해야 한다면 협의의 튀김-deep frying-이 답이 아닐 수 있다. 밥의 상태는 설상가상.
돈가스가 무엇인가? 비계가 되었건 가브리살이 되었건 경험의 다양성이나 무언가 다른 것을 먹는다는 만족감은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기름기가 적은 살코기 부위를 먹기 위한 요리이다. 두껍건 얇건 결국 마르지 않게 조리하면서 기름, 마이야르, 소스로 맛을 쌓아내는 것이 목표가 된다. 불완전한 조리로 입안에 부유하는 덧살은 본래의 돈가스가 가진 매력을 외려 반감시키니, 시대의 흐름에 맞춰 모양은 냈으되 그 이유는 알 수 없는 불명의 식사가 되고 말았다.
과연 시대가 더 지나서 (한 번의 실패로 끝난) 품종 돼지 타령이나 샛노란 것을 넘어 하얀 빛을 띄는 저온 튀김이 서울 곳곳에 등장하게 되면 더 기쁜 미래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식사에서는 그 뒤의 그림자가 보인다. 비일상을 좇다가 일상의 기쁨을 잃은 식탁, 내가 마주한 어느 날 점심에 대한 감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