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RA/SKIPPERS INN - 여행 속 여행
지난 몇 번의 휴가에 대한 반성 끝에 식당 예약으로 휴가를 망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세웠다(그리고 어느 정도는 또 실패했다). 줄이고 줄였지만 역시 기회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미련은 남았는데, 그 중 하나가 북유럽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새 플레이어인 AIRA였다. 스톡홀름에서 새로운 게임을 이끄는 플레이어로 부상해 가스트롤로직이 폐업한 현재 내륙의 프란첸과 함께 스톡홀름의 식문화를 가꾸는 리더의 자리에 단단히 올랐다. 하지만 여름 동안 내부 공사가 예정되어 있어, AIRA에서의 식사는 취소되었고 대신 AIRA의 두 헤드 셰프가 준비한 팝업 레스토랑, SKIPPERS INN에 자리하게 되었다.
AIRA에 가려면 먼저 유르고르덴 가장 끝자락, 종점에 하차하게 된다. 차량을 이용해도 좋고, 선착장이 마련되어 있으니 보트를 이용할 수도 있다. 트램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1km 내외의 거리를 걸어야 하지만, 불편한 만큼 도심에서 벗어나는 경험이 더욱 극적으로 느껴지는 장점도 있다(그리고 음주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조성되어 있는 산책로를 따라 향하다 보면, AIRA로 향하는 입구를 발견할 수 있으며,
레스토랑 앞에는 AIRA를 상징하는 요소, 스톡홀름의 물이 펼쳐진다. 촬영 시각은 약 오후 8시경으로, 북유럽의 해가 지지 않는 여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투 스타 레스토랑이긴 하지만, 기존 직원들 대부분을 휴가로 보낸 상황에서 조리의 스타일과 방향성은 명확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참에 이야기하자면, 이른바 요리에 대한 재능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수 한심한 수준의 오해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요리는 타고난 미각만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며, 음식은 그러한 훌륭한 미각에 기대어 절대적으로 평가되는 것도 아니다. 특히, 오트 퀴진 단계의 요리는 단순한 아이디어보다도 실행할 수 있는 역량과 인프라, 그리고 끈기 따위가 더욱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스타 셰프가 조리한다고 해서 모든 요리가 갑작스레 대단해지는 것은 아니다. 누벨 퀴진 이후 개인의 주관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경향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이는 그 이전의 요리와 비교했을 때의 상대적 경향일 뿐이다. 사실 예술 전반에 대해서도 그런데, 사람들은 작품의 탄생을 번뜩이는 영감으로만 생각하지만 세상 일은 그렇지 않다. 물론 요리사는 전형적인 단계를 거쳐 성장하므로, 셰프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요리사라면 간단한 요리도 전형적으로 잘 해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그 요리가 오트 퀴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스타 셰프가 구운 서니 사이드 업을 생각해 보자. 적절히 잘 만들었을 수는 있겠지만, 가정용 팬 위에서 노른자의 온도를 68도에 맞춘다거나 하는 요술을 부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일생 달걀만 부쳐온 호텔 조식 담당과 큰 구분도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요리를 선보일 인프라가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요리사는 같은 요리를 할 수 없고, 그것을 기대할 필요도 없다. 스키퍼스 인의 요리는 그러한 배경 하에서 전혀 다른 방향의, 또다른 특징적인 방식의 조리를 보여준다. 위의 타르타르 샌드위치에서는 조리의 단계나 시간을 길게 가져가지 못하는 주방 환경이 드러나지만, 아몬드와 경성 치즈로 선이 두꺼운 터치를 넣어 요리에 손쉽게 특징을 더한다. 타르타르에 가장 흔히 떠오르는 짝이라면 달걀이지만, 치킨 스톡과 견과의 지방으로 그려내는 느낌은 자못 새로웠다.
가장 시선을 사로잡았던 요리로는 이 아시아식 프라이드 치킨이 있었는데, 쌀떡(!)까지 명백한 레퍼런스를 내비치고 있었지만 한국의 양념 치킨의 재현을 전혀 목표로 하고 있지 않았다. 양념 치킨의 탄생 비화에 대해 알지 못할 것 같은 주방인데도 딸기와 고추장이라는 양념의 핵심 재료를 관통하면서도 단맛을 배제한 자극을 향해 가고 있었다. 오히려 중화 요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그 원인은 역시 화자오에 있었다. 매운맛과 강한 신맛의 조화 역시 한국 요리에서는 그다지 흔한 종류는 아니었다. 닭 치고는 썩 강한 개성을 가진 것을 사용했기에 아슬아슬하게 견딜 만한 정도였지만 어린 아이들도 좋아할 만한 한국의 양념과는 거리가 있었다. 딸기 마멀레이드나 잼을 사용하지 않고 과육째로 분리해낸 결과 양념의 자극과 신맛은 더욱 명확하게 분리되는데, 그 덕분에 레퍼런스를 아는 입장에서는 단순한 요리에서도 전위성을 느낄 수 있었다.
정직하게 구운 쇠고기와 그리고 흑후추 소스 역시 광동 요리의 느낌을 내면서도 패션프루트와 모렐이 요리에 다문화적인 색채를 더하고 있었다. 분명 한두 가지 부재료의 사용 외에는 썩 단순하게 조리되는 요리들이었지만, AIRA의 주방은 그것을 통해 이국적이고 전위적인 요리에 대한 주민들의 갈망을 풀어내고 있었다.
여름 휴가 기간 동안만 운영되는 SKIPPERS INN에서 풀어낸 스톡홀름의 여름이란 여행과 휴가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요리는 실은 외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것에 가깝지만, 경험의 여러 측면이 합쳐져 하나의 추상적인 인상을 그려낸다. 잠깐의 휴식, 어딘가로의 도피. 유르고르덴 앞을 흐르는 물결의 평화로움과 도츠, 그리고 번뜩이는 조리가 휴가를 주제로 한 팝업 레스토랑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남의 나라에 휴가를 와서 또 휴가를 만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