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 Hemingway - Always Ritz

Bar Hemingway - Always Ritz

이름은 바 헤밍웨이지만 다이키리밖에 없으리라 생각하면 안된다. 일단 여기는 리츠고, 리츠의 바텐더는 콜린 필드이기 때문이다.

"호캉스"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교양으로라도 알고 계시리라. 모른다면 부끄러울 것 없다. 이제 알게 되니까. 리츠는 세자르 리츠의 이름에서 딴 것이고 이 호텔은 세자르가 요리사와 손을 잡고 만들었다. 그 요리사의 이름은 오귀스트 에스코피에. 부르주아적인 럭셔리의 시조와도 같은 장소라고 할 수 있는데, 절대왕정, 나폴레옹 시대의 럭셔리와는 사뭇 다르다. 그 시절이 궁금하면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의 Purplelinie같은 책을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하여간 대단한 고객들보다 더 대단한 입지에 있는 곳이 리츠다. 사보이 호텔처럼 이름을 빼앗기지 않고 여전히 오뗄 리츠라는 이름을 지키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 자부심이 드러난다.

바 역시도 헤밍웨이의 유산을 팔아먹는 대신-"엘 플로리디타"에서는 없는 것도 파는데- 리츠에서는 바텐더가 직접 나선다. 내부는 곳곳이 헤밍웨이로 가득 차있지만 다이키리를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헤밍웨이에서의 첫잔이라면 다시 돌아가도 이 한 잔일수밖에 없다. 취하는 자리인 만큼 가타부타를 따지기 전에 이 한 잔에 그와 함께 빠졌던 시간을 여러분과 나눠보고자 한다.

"세렌디피티"란 세렌디프-스러움이라는 뜻으로, 페르시아의 구전 설화에 나오는 극동의 고대 왕국 세렌디프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 설화에서는 세 왕자가 감각적으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나가는 지혜를 보여주는데, 그 발상이 재밌었는지 볼테르부터 에드거 엘런 포까지 이 설화에 나온 플롯을 차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지혜보다는 우연히 얻은 행운이나 좋은 성과를 일컫는 경우가 많다. 콜린 필드는 어떻게 이 "세렌디피티"를 얻게 되었을까.

때는 1994년 마지막 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항상 리츠를 들리는 한 남자는 홀로 앉아 새해를 맞을 작정이었다. 이미 그는 알코올에 또 니코틴에 젖을 만큼 젖어있었다. 바에서라면 시가를 피우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해도 좋을 1994년이지 않았는가. 그는 시가로 건조해진 목을 축일 겸 콜린 필드에게 또 한 잔을 부탁했다. 콜린은 여기서 그가 또 시가를 피울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했고 약간의 재치가 떠올랐다. 첫 한 모금의 시가불어로 le foin가 가져오는 인상을 칵테일로 훔쳐보고자 한 것이다. 민트를 꺾어 칼바도스를 부은 다음 집게로 민트를 살짝 눌러 칼바도스에 민트 향이 스며들도록 만든다. 그 다음 얼음, 사과 주스, 마지막으로 리츠 하우스 샴페인을 차례로 따라준 다음 탄산이 날아가지 않도록 천천히, 짧게 스터한다. 그리고 그 한 잔을 받아든 단골의 입에서 나온 감탄사였다. "세렌디피티".

사실상 그냥 빌드로 완성되는 수준이지만 마시고 보면 정말 그렇다. 우연으로 가장했지만 그의 술버릇을 꿰고 있다가 때를 노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풀어보자면 먼저 바론 드 로칠드 NV의 가벼운 과일향이 곧 사과와 민트로 이어지며 화사한 인상으로 바뀐다. 알코올이 가볍다지만 당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칼바도스는 고르게 퍼져있지 않아, 두세 모금 쯔음 되면 비로소 오크와 구운 과일같은 뉘앙스가 묻어난다. 기분좋은 단맛과 신맛의 균형이 자꾸 당기게 만들고, 빠져들다 보면 깊어지는 칼바도스와 마주친다. 노르망디 사과가 가진 매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잔은 바닥을 드러낸다.

주의할 점은 머들러를 주지만 찧어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밋밋한 기주를 쓰는 칵테일이 아니고 이미 민트 가지를 꺾을 때 상당한 양의 향이 스며드므로 찧을 필요성이 적다. 지루해질 쯤 조미를 더하면 어떠냐 하겠지만 그 전에 비워야 제대로 마신 세렌디피티가 된다.

바 세계에서, 특히 콜린의 시대라면 더더욱 허용되지 않을 것만 같은 문제를 지닌 클린 더티 마티니를 앞두고서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무엇이 그렇게 문제인가. 하나는 스스로 자칭하는 세계 유일의 맛이라는 거창한 타이틀, 둘은 그럼에도 레시피가 비밀이라는 더 거창한 포장이다. 하기사 치킨 양념도 비밀인데.

올리브 즙을 넣기 때문에 더티지만 보다시피 투명해서 클린이다. 이름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아주 허세는 아니라고 하겠는데, 더티 마티니를 떠올리고 마신다고 해도 아마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의 마티니는 권력구조를 뒤집는다. 기주와 베르무트(돌린)가 올리브에 종사한다. 올리브가 주인공이다. 이마이 키요시식의 냉동 진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마이 스타일이 스터를 통해 상온으로 끌어올려 술의 향을 당겨온다면 콜린 스타일은 영하 20도 이하로 지독하게 끌어내려 술의 입을 틀어막는다. 그 속에서 짠맛을 필두로한 올리브의 인상이 후각이 아닌 미각을 가장 먼저 찌르고 들어온다. 마티니 스노브들이 쓴맛을 향해 돌진할 때 그 추진력을 그대로 받아 꺾어낸 듯. 가운데의 얼음마저 올리브로 만들어져 올리브의 포화는 점점 더 거세지는데, 뒷맛이 아주 깔끔하게 잘리기 때문에 이런 폭거가 가능하다. 온도가 올라오며 알코올과 살짝의 화사한 향이 따라 올라오지만(온도 때문인지 몰라도 진보다는 그레이 구스같이 필터를 많이 한 보드카 느낌이다) 가운데 얼음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그렇다. 저 얼음마저 올리브다.

세렌디피티와 다른 점이라면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분명 기술적으로 기대 이상으로 정교하고 발상도 재미나지만 더티 마티니가 이렇게까지 중요한 무언가였는가 하면 글쎄올시다. 하지만 그것 하나는 인정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마티니다.

아직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콜린 필드지만 본격적인 선수로 뛰는 시절은 지났다고 보는 게 좋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리츠의 밤을 리츠답게 지키고 있다. 리츠의 바텐더라면 프리 푸어로 계량하고 셰이크 동작에는 정확한 구분동작이 느껴진다. 셰이크 칵테일은 한 잔도 마시지 않았으니 결과물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겠지만.

시대가 변하더라도 아직 리츠는 리츠다. 프랑수아 시몬은 더 이상 리츠가 리츠같지 않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리츠다. 리츠는 리츠에서만 팔 수 있는 경험을 팔며 그곳에는 분명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