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 LAMM - Mr. M
BAR를 메뉴의 존재라는 기준으로 바라본다면, 메뉴가 없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곳들과 그렇지 않은 곳들로 구분된다. 전자의 경우에도 메뉴는 형식상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메뉴를 보지 않는 고객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후자는 해당 업장만의 특별함을 부각하기 위해 메뉴를 사용하거나, 혹은 한 두번 오고 마는 고객이 주류가 되는 경우를 상정하고 있다. 생각건대 메뉴의 본질에 충실한 이상 어느 쪽이어도 무방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역시 어느 쪽이어도 무용하다고 본다. 그 본질이 무엇인가? 바로 충분한 정보 제공, 그리고 충분한 선택지이다.
이곳의 메뉴는 접객원이 따라붙어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물건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영업제한 시기에는 그 이상 바쁠 수가 없었던 관계로 어찌저찌 쓰이고 있는 물건인데, 혼자 가격이 튀는 메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 잔에 두 잔 가격이다(약 KRW 40000).
글렌모렌지 오리지널을 지거로 세 번 끼얹는 순간 가격의 이유는 납득했다. 주인공은 자연스레 정해지는 분위기지만 코냑까지 넣으므로 나는 혼란에 빠진다. 물론 세상 칵테일이야 사람 머릿수만큼 있겠지만, 고전적인 프랑스 요리의 문법에서 요리를 만들 때 주재료가 가장 먼저 자리하듯이 칵테일 역시 기주와 부재료라는 문법의 틀로 만들어지는데, 천하의 코냑이 부재료라. 물론 증류주를 두 종류 이상 섞는 칵테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대표적으로 뷰 카레) 증류해서 만드는 조미용 부재료들도 있다(압생트, 코앵트로 등). 그러나 코냑이 부재료라니!
커피 리큐르는 차가운 온도에서 곡류 뉘앙스의 고소함에 커피향은 단맛과 어울리니 마치 카카오를 떠올리게 하는 인상을 빚고, 코냑의 다른 캐릭터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사라진 가운데 신맛의 힌트가 남는다. 후신경은 거의 글렌모렌지와 커피 리큐르가 지배하고 있어 마치 위스키의 일정한 캐릭터만 확대경으로 들여다본 듯 하면서도, 본래의 글렌모렌지보다는 확실한 초콜릿 뉘앙스가 있어 초콜릿 몰트를 쓰는 동사의 시그넷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이 칵테일은 온 더 락 위스키라는, 이미 있는 음료의 모사품일까? 일견 그렇게 보이는 지점도 있다. 스피릿 일변도의 맛의 인상이 자리한 가운데 스터를 통해 확보한 낮은 온도, 다소 묽어졌으되 변하지 않은 액체의 마우스필은 온 더 락 위스키를 떠올리게 만든다. 얼음과의 접촉만으로 원하는 결과까지 기다려야 하는 온 더 락에 비해 스터를 통해 이미 냉각과 희석을 완료한 처지이므로 온 더 락과는 다소 다른 사정을 지닌다. 희석한 물이 고르게 분포하여 균일하게 옅은 점성을 얻었으며, 맛의 경험 역시 일관성이 강하다. 온도의 경험 역시도, 니트 위스키를 얼음으로 희석하는 경우 첫 맛의 강렬함에 신경이 빠르게 적응해 끝에 다다라서는 밋밋함을 느끼는 경우가 잦은데 반하여 처음부터 차갑게 식어있는 음료는 도합 100ml에 달하는 스피릿을 향해 전력으로 달릴 수 있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몸은 온 더 락, 얼굴은 글렌모렌지 시그넷의 반인반수의 거한을 만난 듯한 같은 한 잔이었는데, 레시피에는 재료의 비중(9:1:1)보다도 중요한 것은 물의 비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하여 묽게 만든다면 불쾌한 온 더 락 끝자락이 되고 말았으리라. 벼랑 끝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는 꼴으로 나아갈수록 풍경은 다가오지만 한 발짝만 더 나아간다면 추락이 보장된다.
- 미국의 바텐더들은 스터 과정에서 물이 얼마나 녹는지를 알아낸다면 미리 물을 넣고 냉장고로 온도를 맞춘 칵테일과 스터로 만든 칵테일을 구분할 수 없다는 연구를 낸 바 있는데 아직까지도 스터 기법의 클래식 칵테일의 레시피에서 물이 어느정도 들어가야 하는지 정량화하여 가르치는 교본은 찾지 못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주로 횟수를 세고 서구에서는 시간을 정해두는데 양측 모두 스터의 속도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교반기라는 기계장치를 떠올려보면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점을 쉬이 짐작할 수 있는데 여전히 시정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