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폼 - 팜 투 글라스?

바 폼 - 팜 투 글라스?

샌 프란시스코의 셰 파니스(Chez Panisse)를 축으로 한 "팜 투 테이블"은 독자 여러분들도 들어보셨으리라. 식재료의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운영하는 텃밭에서, 그게 불가능한 경우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재료를 수급하겠다는 신념이다. 아무래도 재료의 품질 등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커질 뿐 아니라 탄소 배출 문제 등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기여한다는 즐거움이 있다. 이것의 바 버전이 "팜 투 글라스"다. 당연히 팜 투 테이블의 영향을 받은 아이디어이고, 이를 주창한 대표적 바텐더로는 데일 디그로프가 있다. 오래도록 칵테일의 중심을 취기, 또는 기주의 풍미가 잠식했다면 과일이나 채소, 허브 등이 주인공이 된다는 점에서 쉽게 그 차이를 찾아볼 수 있다.

언제나 독자에게는 나보다는 글을 보여드리고 싶은 심정이므로 내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하지만 간만에 좀 해보고자 한다. 농사꾼 일가에서 자라는 바람에 불과 일 주일 전에도 밭에 내려가 흙내음을 맡고 온 차인데, 항상 드는 생각은 농업이라는건 그렇게 환상적인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단 직접 키우기 때문에 질을 담보할 수 있다는 생각의 실현이 어렵다. 종자는 종묘사로부터 나오는데, 작황에 대해서는 알 수 있을지 몰라도 주방의 쓰임새의 측면에서 종자를 공부하는 종사자는 많지 않다. 날씨의 변덕도 거든다. 고추 같이 약을 많이 치는 작물을 기르는 과정은 그 자체로 도시인이 떠올리는 자연의 이미지를 훼손할 정도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손에 흙을 묻히며 사냐고 하면, 아무래도 소량이고 또 최소 십년 단위 경력의 베테랑들이 달라붙어서 관리하면 품질 자체도 만족스럽지만-단가를 생각하면 시장에 내놓을 게 못된다-, 이제 도시인이 된 입장에선 그저 쑥쑥 자라고 또 열매를 맺고 찬 바람이 불 즈음이면 사그라드는 순환 자체가 재밌기 때문이다.

완전한 도시인으로 돌아와서, 이러한 농업의 즐거움을 테이블에서 온전히 구현하는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일단 주방과 소통을 하다보니 어떤 종자를 심을지, 또 종자를 어떻게 개량할지 등에 대해 논의가 가능할 지 모른다. 또 기왕에 수급처까지 자세히 밝히는 이유라면 무명의 물건들과는 질적인 차이 또한 보여주어야 한다. 기왕에 이렇게까지 귀하게 다루었으니, 요리의 주인공으로까지 나서면 더욱 좋다.

「바 폼」은 이러한 측면들을 적절하게 이해하고 메뉴를 구성한 듯 보였다. 사과가 주인공이 되는 메뉴 한 장, 그리고 지역에서 수급한 채소와 과일이 주인공이 되는 메뉴 한 장. 그러나 주방의 과제는 이러한 신념을 경전 따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맛보기의 경험으로 이해시키는 것이다. 곧바로 난관에 봉착한다. 먼저 사과. 기주로 추사를 쓰는 것과 칼바도스를 쓰는 것이 혼재한 가운데 일본 종자를 뿌리로 한 우리 사과에 대한 진단은 짚이는게 없었다. 특히나 생과를 먹을 목적으로 재배되는 과일을 그냥 쓴 국산 시드르, 애플잭 유사의 사과술은 그 자체로 나를 의혹에 빠지게 했다.

여러분은 혹시 사람이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은 풋사과를 드셔본 일이 있는가. 미치게 떫고 시다. 풍성한 탄닌, 그리고 꽃피우지 못한 영양의 흔적이다. 기본적으로 술을 만들 때에는 사과는 이런 특성을 지녀야 한다. 물론, 풋사과를 쓸 경우 풍미가 텅 빈 상태이므로 안되고, 열매가 작아 표면적이 넓고-즉 껍질의 비중이 크거나, 탄닌이 잘 발달한 청사과들이 양조장에서는 주인공이다. 날것으로 먹을 때에는 팔레트의 거부감에 부딪혀 느끼기 어려웠던 풍미들이 액체에서는 자유롭게 뛰논다. 우리에게는 이런 사과가 없다. 바의 주방에서 사과를 찾는다면 가장 먼저 이런 사과를 찾아야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어렵겠지만, 가게 이름마저 사과라면 이렇게 사과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사과 페이지를 덮은 뒤 보이는 것은 농장에서 직접 납품받는다는 재료를 쓴 칵테일이었다. 무려 블러디 메리를 기반으로 한 칵테일이 있었는데, 이 토마토 또한 위의 사과의 예를 그대로 계승한다는 점에서-국산 토마토로 퓌레를 쑤어서 피자를 만들면 죽고싶은 슬픈 맛이 난다- 호기심이 일었는데 토마토의 수급 문제로 판매중단. 돌고 돌아 선택한 것은 포른스타 슬링, 바닐라 인퓨징 보드카에 패션프루트 리큐르를 쓰는 포른스타 마티니에 "자메이칸" 럼으로 변주한 종류였다.

패션프루트도, 바닐라도, 하다못해 시럽을 만들 때 쓰이는 설탕도 이 땅에서 구할 게 못되는 것들이지만 그만큼 풍미는 안전하게 맛있었다. 영국식 럼의 펑크 뉘앙스가 힌트로나마 느껴지고, 제과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바닐라와 패션프루트 향의 조화는 이미 포른스타 마티니가 20년 전 증명해냈다.

"바 폼"의 이 한잔을 둘러싸고 여러분은 무엇을 보는가. 나는 칵테일 르네상스를 본다. "팜 투 글라스"라는 아이디어는 데일 디그로프에게, 포른스타 마티니는 더글라스 앙크라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에서 "기주가 아닌 신선한 재료가 주인공이 되는" 칵테일이라는 주제의식이나 르네상스 시대의 레시피의 채용 등 요소들은 눈에 밟히는게 많고, 음료 또한 그에 걸맞는 적절한 수준에서 완성된다. 단맛과 패션프루트의 새콤한 향이 적절하게 밀고 당기는 가운데, 얼음의 질이 만족스러워 음료를 홀짝이는 동안에도 버텨내니 지긋지긋한 날씨를 잠깐이라도 잊을 수 있을 좋은 한잔이 된다. 그러나 문 밖을 나설 때 나는 다시 고민한다; 과연 칵테일 르네상스를 한국에서 이루어내는 방식은 이것으로 만족스러운가? 우리는 결과물이 아닌 과정, 즉 생각의 방식을 흡수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땅의 지형을 감안했을 때 답 또한 조금은 다른 것들이 나와야 하지 않겠나. 술을 판다는 이유로 서울의 많은 바들이 북적이지만 과연 그들이 한 명의 요리사로 우뚝 설 수 있게 도와줄 객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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