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 스톡 - 고전 디저트의 자리

뺑 스톡 - 고전 디저트의 자리

근 몇년 사이 서울의 디저트 문화는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서양 제과의 선택폭이 빠르게 늘고 있다. 마카롱으로 시작해 다른 형태의 디저트들도 속속들이 세를 불리고 있다. 작은 케이크 시장 또한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하는 곳 자체는 많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완전히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만 가지는 않는데, 창업 수요 덕에 제품을 팔던 매장들이 클래스 위주로 영업 방침을 바꾸어버린 일이다. 특정 요일에만 열거나 팝업 등으로만 접할 수 있는 상황은 그다지 미래에 달갑지 않다.

마카롱이나 쇼트케이크 정도를 만들어 파는 가게들도 앞다투어 클래스를 여는 상황에서 이러한 생산자의 선택은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의한 일일 뿐이니 누굴 탓할 일은 못된다. 그러나 소비자에게 이러한 상황이 긍정적으로만 돌아가는가에 대한 의문은 남겨본다. 이러한 클래스나 제과 학교를 나와 개업한 가게들의 디저트는 파리나 도쿄의 거장들의 가격에 견주어도 저렴하지 않다. 가격에 허리가 없다. 가는 곳마다 주방의 인력이 넉넉하지 않음은 보이는 실정인데, 그렇다면 임대인에게 귀책사유가 있을까? 그렇게 말해서야 서울에서 성업중인 요식업 이외의 사업에 대해 설명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형편없다고 생각할 프랜차이즈 카페들도 빽빽이 들어찬 도시에서 우리가 치르는 이 비용은 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그러한 고민이 맞아떨어진 지점이 오늘 이야기해볼 두 가지의 고전적인 디저트에 담겨 있었다. 타르트 오 시트롱과 바바 오 럼. 지극히 고전 중의 고전이다. 너무나도 오랜 세월동안 그 맛의 행복이 다시 검증되고 또 확인되온 고전 중의 고전이다. 언제 즈음부터 만들었는지, 바바 오 럼은 심지어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문헌들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고전 조합은 초심자에게는 창작의 고통을 덜어주고 소비자에게는 고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등 보편적인 생활환경 개선에도 기여한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고전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피에르 에르메의 이스파한, 페티시 인피니멍 바닐이 새 고전에 가까운데 과연 고전만큼 검증을 하고 쓰는지 의혹 투성이이다. 고전을 잘 하는 단계는 이미 지나쳐버린 걸까. 일상에서 고전적인 디저트를 먹기가 참 어렵다. 그러한 상황에서 뺑 스톡에서 낸 타르트 오 시트롱을 맛보았다. 정확히는 레몬과 유자.

KRW 6500. 고전의 위치에 한결 가까워진 가격이지만 맛이 무디지 않다. 충분히 구운 타르트지는 구워낸 맛과 부서지는 질감이 좋다. 제과기능장 따위를 내세우는 곳에서 속이 전혀 익지 않아 무르게 변한 타르트를 맛본게 엊그제 일이다. 물론 제과가 단단하면 안된다는 황당한 편견의 영향도 있겠지만, 요리사라면 맛으로 설득해야 한다. 올바르게 구운 반죽에서는 별다른 것을 더하지 없어도 풍요로운 맛이 난다. 신맛 또한 적절했다. 음료에 곁들이기에는 신맛이나 과일의 그림이 더욱 선명한 게 좋다는 생각이 들지만 음료의 경우에도 맛이 흐린, 아메리카노의 값이 기본 설정인 서울에서는 충분히 허용 가능한 수준이다. 잠깐의 휴식을 더해줄 머랭은 장식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돋보인다.

이 타르트가 KRW 6500. 지난간 블로그를 스쳐간 수많은 작은 케이크들이 떠오른다. 어차피 서울에서 프랑스식 디저트를 한다면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수입품 공세인 가운데, 프랑스 남부의 축복받은 레몬을 접할 수 없다고 하여 이 고전적인 디저트를 무시할 이유가 있었을까. 근방의 식사보다 결코 비싸지 않으니 일상의 끝자락에 걸칠 수 있는 가격대에 일상의 행복이 있다.

KRW 7500으로 가격의 층이 분리된 바바 트로피칼 또한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단지 적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일회용기가 준비된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잘 적신 바바 반죽에 그치지 않고 열대 과일로 신맛을 덧댄다.

본래 바바의 맛의 키는 역시 럼이 가진 향이다. 바바 오 럼으로 유명한 셰프가 누구인가, 바바 오 럼으로 유명한 곳이 어디인가. 떠올려보면 진즉 알 수 있다. 크래프트 럼 열풍이 기호품으로서 럼의 맛의 방향성을 크게 확장하고 있고, 오랜 증류소 중에서도 크래프트 문화를 선도한 포스퀘어부터 카로니나 햄든 에스테이트 등 이미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곳들의 맛 또한 그 자체로 바바에서 탐닉하고 픈 대상이 된다. 칵테일에서 비싼 스피릿을 쓸 수 없듯이 이런 것들이 꿈에 머무르겠지만 설탕이 잔뜩 첨가된 스페인 계통의 다크 럼도 충분히 먹힌다. 알랭 뒤카스같은 셰프는 마르티니크 럼의 극한값과 같은 럼을 제안하지만 일상의 영역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언제부터 럼이 우리에게 일상이었는가? 뒤카스의 기준에서 마지노선에 가까운 디플로마티코의 리제르바 익스클루시바도 국내에서는 매우 불행한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현실은 럼의 맛에 대한 무관심과 호흡을 맞춘다. 캪틴큐의 시대가 지났음에도 제과에서 럼은 학대받고, 무시당한다. 바바 오 럼이 고전이면 어쩔 것인가. 찾기도 어렵고 찾는 사람도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셰프의 선택은 고전에 어울리는 익숙한 짝인 열대 과일이었다. 그러나 이 바바는 결코 럼이 가지는 풍미를 포기하지 않았다. 역시 현실의 한계 속에서 럼이 갖는 매혹적인 특징, 사탕수수에 따라 이끌어내는 풍미나 캐스크 숙성에서 오는 단맛과 향기같은 것은 모두 포기했지만 바바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 바바 반죽은 흠뻑 젖었지만 못 만든 묽은 반죽과는 달리 베어무는 순간 럼을 타고 단맛과 향이 새어나온다. 지방을 풍성하게 머금은 크림은 올린 파인애플과 스포이드의 내용물을 전부 맛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드디어 바바의 일상 시대는 개막했는가. 희망에 젖는 맛이다.

제품의 습기를 충분히 보호해주지 못하는 국산 쇼케이스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다 접고 싶은 순간이다. 일상에 즐길 수 있는 과자들이 있고, 가격도 한층 일상의 단계에 가까워졌다. 거기에 더해 일상에 가까운 지점은 생산량이다. 빵과 과자 모두 여느 때나 가도 있을 정도로 넉넉하고 종류도 다양하다. 창창한 낮, 느지막한 퇴근 시간대 모두 방문해보았지만 크로아상 두 종류정도를 빼고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지긋지긋한 줄서기를 없애는 것은 생산자의 힘이다. 사실 많이 팔면 서로 좋다. 원가 절감도 되고 같은 마진율에서 순이익도 더 남는다. 그러나 그러한 주방의 규모를 지탱하는 것 또한 셰프의 역할이다. 서울에는 그게 되는 곳이 잘 없다. 「메종 엠오」 정도가 독보적이지만 역시 케이크를 많이 준비하지 않는다.
종합하여 보았을 때 새로 생긴 가게임에도 경쟁자가 거의 떠오르지 않는 훌륭한 디저트를 낸다. 육 천원에 덜 구워지지 않은, 그리고 단순히 큰 것을 자른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 작은 케이크를, 그것도 올바르게 만들어 맛볼 수 있는 곳은 정말 떠오르지 않는다. 있다면 알려주시라. 대표격인 파리 크라상같은 곳과 비교해보면 천 번도 다시 올 생각이 나니까.
생산량과 품질, 선택지의 다양성 등에 있어 즐거운 면모가 많으니 앞으로를 기대해본다. 다만 걸리는 지점은 지도의 이름이 "공덕점"으로 등록된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