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 스톡 - 포장해도 좋을 케이크
여김없이 매년 딸기의 계절은 돌아오지만 상황이 예전같지 않다. 날씨는 얼어붙지 않았으되 사람이 얼어붙어버린 일이다. 얼어붙은 경기, 얼어붙은 관계, 얼어붙은... 그 와중에도 여느 호텔들은 또 딸기 뷔페를 시작했다. 복잡한 생각이 들지만 어쨌거나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매년 무수히 많은 딸기들이 쏟아지지만 그에 대해 말해야 할 정도로 밝은 것은 보기 쉽지 않다. 일단은 못해도 6할은 제누아즈 케이크에 과육을 저며 넣은 숏 케이크의 형태다. 커다란 사이즈로 나누어 먹을때는 좀 낫지 조각으로 잘라 식사만큼의 가격을 지불하고 나면 디저트의 텅 빈 현상에 다시 좌절하곤 한다. 애초에 우리가 먹는 딸기가 근현대 식문화에서나 발견되는 매우 현대적인 식재료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직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우리 땅에서 먹기 시작한지 그리 오랜 것들은 이 땅에서 기를 못 펴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고민은 어렵지만 먹기는 쉽다. 영혼이 빠진 단맛만이 감도는, 반죽과 크림 어느 쪽에서도 풍미의 무게를 고려하지 않은 가운데 딸기가 얼마나 많이 들었는가가 논쟁의 대상이 되는 그런 케이크는 이미 무딜 만큼 보고 살았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모이지 않으니 나는 기꺼이 쇼트케이크를 거부한다. 사실 딸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커다란 원통같은 이른바 생크림 케이크의 향연도 정말로 그 빈도를 줄이고 싶었다. 사적인 이유로 먹었기에 블로그에 게시하지는 않겠지만 정말 서울에서 좀 좋다는 생크림 케이크들은 거의 맛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개인의 삶에는 별로 자리를 주고 싶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오븐에 한껏 구워낸 타르트 반죽은 기꺼이 포장하고 싶은 대상이 되었다. 포장의 상태가 아슬아슬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테이프가 생각보다 단단해 무사히 살아남아 주었다. 상자를 열면 생과를 담뿍 얹고 싶은 욕망의 유전자가 남은 가운데 잘게 다진 아몬드 설탕조림우리는 이걸 아망드 폴리냑이라 부르곤 한다과 바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래, 이 딸기는 홀로 서서 결코 좋은 물건이 아니다...
딸기가 맛없어서 반드시 무언가의 도움을 얻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물건은 아니다. 잼으로 쑤면 신맛과 단맛 모두 보강할 수 있겠지만 상자를 여는 순간 딸기가 내는 풍성한 향기, 그리고 오밀조밀하게 채워진 딸기가 주는 시각적 만족도를 온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씹어보면 딸기는 물이 많을 뿐 아니라(당연히, 생과일이니까!) 크림, 즉 유지방이 전달해줄만큼 풍성한 단맛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타르트의 나머지 부분이 여러모로 단맛을 보태는 가운데 같은 것을 여러 겹 쌓는 경우와 달리 각각의 풍미를 보탠다. 타르트지는 오븐에서 구운 과자의 향을 더하고 적절하게 펴바른 바질의 향기가 조화롭게 어울린다. 짠맛의 세계와 단맛의 세계를 넘나드는 바질의 향기에는 잠깐이나마 매혹의 경험이 있었다. 딸기-바질-라임이나 딸기-바질-발사믹의 조합이 곧바로 떠오른다. 그 신 맛의 톱니바퀴가 완전히 맞물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미 딸기가 가진 신맛마저도 저세상으로 보낸 이 도심의 맛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제과의 형태보다 생과일을 먹는게 익숙한 우리 식문화 속에서 반드시 서양 제과의 방식을 좇는게 답은 아니다. 그러나 십 만원에서 수십 만원을 호가하는 곳에서도 오로지 시간 정도로만 가공한 과일을 낼 때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샤인 머스캣부터 "후숙" 멜론까지 일관된 DNA다. 주방에서 할 일을 농부에게 전가한다. 주방에서 화학 변화를 통해 풍미의 응축이나 다각화를 시도하거나, 최소한 단맛-신맛-그리고 매개체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주방이 아니라 종자회사의 연구소와 개별 농가에게 그 책임을 떠넘긴다. 안그래도 불쾌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과일 시장에서 이런 것들은 터무니없는 가격에 거래되기에 격 높은 식사랍시고 등장한다. 거기까지도 좋다고 하지만 그걸 제과로 만들고자 할 때는 요리는 왜 하는지, 왜 서양인들의 버릇대로 밀가루랑 아몬드 반죽을 쑤고 버터와 크림을 넣으며 오븐에 넣고 시간을 기다리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이 한 점에서는 적어도 그 그림이 있어서 좋았다.
두 케이크를 결제하는 가격이 기억에 만 사 천원이었다. 하나가 KRW 6500이었고 하나는 천 원 더 얹었다. 가격만 놓고 이야기하면 스타벅스의 겨울 케이크인 산타 벨벳(KRW 6400)과 화이트 밀크(KRW 6700)와 견줄 수 있는 가운데 마침 코앞에 스타벅스도 있다. 멀리 찾아갈 필요도 없고 인기메뉴를 먹기 위해 서두를 일도 없다. 심지어 지긋지긋한 휴무일도 없다. 일주일에 삼 일을 여는 곳은 많이 쉬어도 일주일에 이틀을 쉴 수 있는 사회인에게 닿지 않을 공산이 크고 나도 많이 당해봤지 않은가. 이 케이크들은 스타벅스가 일상에 녹아든 사람이라면 추가 비용을 지불할 일이 없다. 스타벅스의 공간을 즐기는 것이 불가능해진 이 포장의 시대에 대자본과 동네 빵집은 비로소 동등한 위치에 선다. 그다음 다시 맛을 곱씹으면 아득히 내달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이 근처에는 이곳이 생기기 전부터 구움과자니 쇼트케이크니 파는 곳들이 더러 있고 당연히 나도 내가 사서 아니면 남을 시켜서 맛을 본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