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집다 - 빵과 좋은 빵
아침식사로 비에누아즈리를 매일 먹을 수 있겠지만 서울에서 아침을 그런 빵으로 먹다가는 주머니에 남아나는게 없으므로 졸린 와중에 편하게 차려먹기에는 타르틴이 자연스러운 선택지이다. 그간 정해두고 먹는 빵 종류는 몇 가지 있었고, 사생활의 성질이 강한 아침식사 따위를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여러분은 아침식사를 맛으로 먹는가? 물론 맛없으면 곤란하지만) 그간 다루지 않았는데 사정이 생겨 부득이하게 새 빵을 찾아나서게 되었다.
몇 군데 빵가게를 후보로 고른 끝에 아현동의 「빵을 집다」에서 빵 두 덩이에 KRW 12000정도를 결제했다. 가져오는 동안 차량에 빵 냄새가 가득차 입맛을 당기기도 하고, 아침상에 올리기 전에 테스트 겸 충분한 양을 썰어 이리저리 맛보았다.
바게트가 우선이었는데 심경이 복잡했다. 아주 나쁜 빵이라서가 아니다. 냉동생지 유통품이나 프랜차이즈 빵과 차이점을 강조하려는 의도인지 크럼블이 과다할 정도로 열려있는데 비하여 껍질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인상이었다. 충분히 두텁고 딱딱하지 못하니 껍질이 갈라지며 폭발하는 빵 향도 느끼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바게트의 심장부와도 같은, 껍질의 비중이 가장 높은 꼬다리 씹는 순간이 즐겁지 못했다. 수분이나 굽는 온도의 문제? 혹은 작업하는 공간이 계절에 노출되어 있었을까? 진단을 위해 빵을 먹는 사람은 아니므로 곧 생각은 접었고, 다음 날 아침부터 버터나 스프레드를 발라 먹기에는 큰 무리는 없었지만 과연 굳이 아티장 바게트를 하고자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의문만이 남았다.
100% 호밀만 쓰는 호밀 빵 역시 바게트와 같이 아티장을 추구하고픈 욕심이 느껴지는 빵이었는데, 이쪽 사정은 더욱 좋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18세기 이전 유럽의 입맛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이런 빵의 지상과제는 전적으로 밀 빵과 비교해서 비교이익을 보여주는 데 있다. 맛으로는 아무래도 몰트의 뉘앙스, 그리고 특유의 고소함. 이에 더해 천천히 구웠을 때는 밀가루가 보여주지 못하는 단맛 역시 떠올려볼법 하다. 비교해서 눈에 띄는 변수는 무엇보다 펜토산과 섬유질이다. 무엇을 극복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무엇을 호밀의 특징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구상을 어떻게 현실에 보여줄지가 오븐 앞에 선 사람의 과제이다. 그래서? 호밀빵은 견고하게 두터운 껍질과 다행히도 지나치게 빽빽하지 않은, 최소한의 digestibility를 갖추고 있었다. 전형적인 인상에서 더 나아가지는 않더라도 뒷걸음질 역시 크게 없다는 인상이었다.
이제 서울에서 이러한 아티장 블랑제를 꿈꾸는 가게를 구마다 하나 쯤은 볼 수 있다. 이곳처럼 굳이 아티장이니 뭐니 거창하게 들먹이지 않으려고 하는 곳도 있고, 반대로 PR을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수준인 곳들도 있다. 과거에는 정말 굽다 만 것같은 빵을 먹어야 했던 시절도 있음을 감안하면 감지덕지하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일상 빵들이 성공적으로 일상에 안착할까? 그러기에는 모두 무언가 하나가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면 결국 빵집은 언젠가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매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아티장을 할지, '영리한' 제품들을 좇을지. 일본식 식빵부터 근래의 앙버터와 잠봉뵈르까지 빵 시장에서는 끊임없이 유행품이 등장한다. 이런 종류의 빵도 이미 식사빵이라는 이름으로 한번 휩쓸고 지나간 바 있다. 그 다음에는 이렇게 개인창업자들의 손에서 이루어지 양적 확장의 바람이 불고, 그 다음은? 나는 떠올리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