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앤 제리스, 하프 베이크드

벤 앤 제리스, 하프 베이크드

벤 앤 제리스, 그리고 미국의 아이스크림을 상징하는 맛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단연코 이 하프 베이크드를 뽑는다. 한국에서 다행히 꽤 버티고 있는 <에맥 & 볼리오스>에서도 쿠키 도우를 빼놓을 수 없는데, 사실 그동안은 벤 앤 제리스를 기다렸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하프 베이크드는 초콜릿 퍼지 브라우니와 초콜릿 침 쿠키 도우의 혼종으로, 거기에 바닐라 레이어가 더해져서 완성된 이 맛은 그야말로 미국의 단맛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폭발하는 단맛, 지배적인 맛의 폭격. 결코 많이 먹을 수 없지만 미국의 사람들은 상상 이상으로 먹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가끔은 그런 욕망이 사람을 지배할 때가 있고, 하프 베이크드는 그럴 때 항상 최고의 선택이다.

16oz가 월마트에서는 $4, 흔한 세일을 곁들이면 한 통에 $2나 $2.5로도 쉽게 집어들 수 있는 미국의 경우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KRW 12500을 지불해야 하므로 상황이 쓰다. 그러나 그만큼 현재 한국의 아이스크림 시장은 절망적이다. 이런 가격을 수긍해야 한다. 변화를 위해 지불해야 할 프리미엄이다.

크게 바닐라와 초콜릿 퍼지, 그리고 초콜릿 칩 쿠키 도우의 완벽한 혼란과 같은 상태이지만 전진하는 숟가락에 어떤 것이 낚여들어도 좋다는 점에서 낯선 이들은 당황할 지도 모른다. 바닐라랑 초콜릿을 동시에, 그리고 달짝지근하기 그지 없는 쿠키 반죽과 브라우니도 또 달기 그지없는데, 이런게 맛있다니! 그러나 이것은 완벽하게 미국적인 맛, 과잉과 사랑의 맛이다. 그리고 이 맛은 생각보다 절묘하게 계획되어 있다. 먼저 쿠키 도우의 맛부터 올바르다. 과잉의 단맛, 굽지 않은 듯한 데서 나오는 아쉬움은 바닐라와 유지방의 고소함이 이끄는 아이스크림과 훌륭하게 호흡을 맞추는데, 꽁꽁 얼린 아이스크림에서도 지나치게 굳지 않은 벤 앤 제리스의 쿠키 반죽은 위대한 집밥을 과학자의 연구실의 영역으로 옮겨온 물건이다. 고온에 살균해 질병으로부터 안전하며(우리는 달걀을 날것으로 먹기에 걱정하지 않는다만), 놀랍게도 과다하게 얼어붙거나 굳지 않아 이가 가는 대로 부서져 반죽 속의 단맛을 알알이 전한다. 실제로 쿠키 반죽이라는 걸 다뤄보면 끈적한 반죽 상태이고, 얼리면 불쾌한 돌맹이가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밴 앤 제리스의 쿠키 반죽의 위대함은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에서만 거주한 이들이라도 미국인들이 할머니가 구워주는 쿠키에 대해 가지는 각별한 애정을 미디어를 통해 접했다면, 이 맛이 왜 위대한지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랑은 지나치지만 그래서 흐뭇한 풍경이다.

밴 앤 제리스는 그 자체로 아이스크림의 여정의 끝은 아니다. 다만 시작이다. 하프 베이크드는 아이스크림 시장의 발전을 위한 필수요소Sine Qua Non라 불러도 좋다. 우유의 상태가 좋은 바닐라, 쓴맛이 안분된 초콜릿, 그리고 미국 문화의 심장을 관통하는 쿠키 반죽. 여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가운데, 이 아이스크림은 적어도 이러한 행복을 지탱하고 확장할 수 있는 물건이라는 점이 또 중요하다. 아이스크림을 비롯한 디저트 전반은 많은 어둠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바닐라와 카카오 농업은 환경의 변화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으며, "키 큰다"는 거짓말 아래 주저앉아 있던 낙농업의 위기는 한국에서 더 커보인다. 사실 어떤 맛을 먹느냐부터가 모든 주변 환경의 영향이다. 사회적 기업이니 기업의 책임이니 이런 담론은 한국에서 설득 되지도 않고, 별로 내가 할 생각도 없으나, 어떤 아이스크림을 먹을지, 어떤 아이스크림을 좋아할 지에 대해서 완벽히 자유로운 판단은 없다는 점을 B&J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감히 우리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그 설득력은 파인트 안에 담겨 있다. 아이스크림 한 통을 먹어서 세상을 바꾸자고 한다면 너무 인생 편하게 살려고 하는 일이지만 아이스크림이 이야기의 매개는 되줄 수 있지 않은가. 솔직히 어섶르게 '발로나' 써있는 여러 동네의 아이스크림보다 이게 낫다. 계급장 다 떼고 아이스크림의 맛의 농도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드는 파인트다. 농도! 농도가 중요하다. 부디 잊지 마시라. 여러 부재료로 눈속임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맛이 진하려면 재료를 넣어야 한다. 속일 수 없는 맛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