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 브루어리 - IPA와 "수제맥주"

버드나무 브루어리 - IPA와 "수제맥주"

로스트 코스트 등의 맥주가 대형 마트의 맥주 코너에 케케묵은 채로 지내게 된지도 꽤 세월이 지났다. "4캔 만원"의 시대를 지나 종가세의 시대가 열렸단다. 그러한 크래프트 맥주 열풍이 사람들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는가?

SSG 푸드마켓 등 일반화하기 어려운 곳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도시 생활인들의 생활 근거지가 되는 마트 및 편의점 매대의 흐름을 보면 맥주의 정체를 느낄 수 있다. 일본의 에비스 맥주 따위가 무언가 특별한 것으로 대우받으며 수입되기 시작한 지도 이제 지날 만큼 지났으며, RateBeer같은 해외 서비스에 쌓인 한국 유통 제품들에 대한 후기는 이제 여느 타 생활권에 비견하여 모자라지 않다. 그러나 국내 굴지의 맥주업체와 같은 모기업(AB인베브)을 두고 있는 구스 아일랜드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제외하면 새로운 맥주랍시고 매대를 점유하고 있는 물건들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마트 체인에 따라 4캔 만원의 매대에도 그저 해외에서 왔다는 점 빼고는 손이 갈 이유가 없는 깜깜이 제품들이 차차 자리를 잠식하고 있는데, 국산 맥주랍시고 깔려있는 물건에서도 비슷한 바이브를 느낄 즈음이면 정말이지 이 땅의 정신은 지독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통업체나 생산업체나 똑같은 생각을 하는지. 그런 맥주로 가득찬 가운데 벗어나보이는 맥주가 있다면 버드나무의 하슬라였다. 아마도 몇 년 전 즈음 탭룸에서 있었던 듯 아닌 듯 기억이 스쳐지나가는 물건인데 그럴싸한 병에 병입되어 있었던 일이다.

IPA 맥주를 만드는 방법이니 기원이니 하는 정보는 집어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여러분이 생각하는 좋은 IPA란 무엇이며 IPA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 나는 이 한 병을 다른 한 사람과 나눠 식사에 곁들여 조금 맛본 뒤 나머지를 곁들임 없이 단독으로 음용했다. 음용온도는 냉장보관 온도(섭씨 약 5~6도).

탑노트로 신선한 허브향이 다가오는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팔레트의 무게가 신맛에 치우친 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맛 자체가 시큼하지는 않으나 시트러스 계통의 홉의 캐릭터가 상당히 강조되어 있었다. 곡물으로 빚었다는 생각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되, IPA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쓴맛이 거의 짓눌려 있었다. 그러다보니 짠맛과 지방 위주의 튀김, 즉 맥주의 흔한 짝꿍인 후라이드 치킨에 맞서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탄산으로 기름기를 지우는, 500mL짜리 깡통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 맥주가 담긴 조그만 병을 보고 있노라면 이 맥주는 그런 용도를 고려하여 출시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기술적인 흠결이리라 짐작하지는 않는다. 다른 양조나 증류 등의 분야보다도 기술적인 지식을 편하게 구할 수 있는게 맥주 양조 아닌가. 그렇다면 이 의도는 무엇인가. 적당하게 마실 수 있을 정도의 균형은 갖춘 가운데, 첫 노트에서 다가오는 강한 인상만 남고 후각이 적응할 즈음이면 어두운 생각이 떠오른다. 그렇다. 아마도 음용성이 아니었을까. 다른말로는 목넘김이라 부르는, 맛보지 않고 삼키기에 급급할 때의 유용성 말이다. 그렇다면 이 맥주는 아주 잘 만든 맥주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런 부류의 맥주들에 비해 첫 마주치는 순간 유쾌함이 있고 기분나쁜 향이나 맛이 없다. 대형 마트에 납품해야 하는 크래프트 맥주는 아직까지 이런 맛이어야 하는가. 종종 국내 애호가들이 구하기 힘든 맥주 따위를 두고 경쟁하고 또 누군가는 손쉽게 손에 넣기도 하면서 싸우는 풍경의 반대편에는 이런 맥주의 현실이 있다. 페란 아드리아가 "이네딧"을 팔기 시작한지도 정말 지날 만큼 지났고 이제는 크래프트 맥주라는 범주도 넘어 마시는 형태의 음료간 교류에 의해 무한한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언제까지 맥주는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