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inger Bros. Sauvignon Blanc 2017

Beringer Bros. Sauvignon Blanc 2017

Beringer Bros.의 와인은 이마트에서 "미국에서 현재 가장 핫한"따위의, 전혀 핫하지 않은 홍보 문구를 목에 걸고 있는 채로 팔리고 있다. 독일계 이민자들이 나파에 자리하여 차린 와이너리는 현재는 호주의 영농 대기업 소유인데, 인기를 끈 이유는 바로 "증류주를 숙성한 나무통의 맛"이라는 지점에 있다.

소비뇽 블랑은 본래도 널리 경작되는 품종의 아종이나, 신대륙에서 더욱 큰 빛을 본 품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뉴질랜드의 말보로는 소비뇽 블랑의 최고 명산지로 꼽힌다.

그렇다면 나파 밸리도 따뜻한 기온이 오래 가고 바다를 보고 있다. 끝? 그럴 리가. 소비뇽 블랑이 왜 신대륙의 광활한 토지에서 대량으로 재배되는가. 본래 산지인 루아르나 보르도 등지에 비하면 한 풀 꺾인 더위에서는 날카로운 신맛과 신선한 풀향을 살릴 수 있음을 느낀 것이다.

그거 참 말만 들어도, 한여름에 딱 생각날 것 같은 포도 이야기다. 그러나 베린저의 독특한 양조와 만난다면 어떨까. 이 와인은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발효한 뒤, 20%는 테킬라를 담았던 오크통에 60일간 숙성한다. 80%는? 스테인리스 스틸에서 끝. 사실 표지의 주장처럼, 테킬라나 오크 통의 풍미를 가득히 느끼라고 만들지 않았다. 이는 와인의 세계에서도 새롭고 당혹스러운 시도이지만 소비뇽 블랑에게는 더욱 그렇다. 소비뇽 블랑은 날씨의 영향을 받은 맛이 발효 시에 곧 두드러지지만 오크에서 오는 달콤한 향이나 묵직한 질감과 쉽사리 어울리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소비뇽 블랑이 저렴한 가격에 마실 수 있는 젊은 와인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재사용한 나무통을 이용하는 경우 등 방법으로 균형을 맞추면 또 썩 어울려 소비뇽 블랑을 주로 생산하는 뉴질랜드 등지에서는 시간을 보내고도 버틸 수 있는, 힘 있는 소비뇽 블랑이 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와인은 많지 않은데, Decanter의 Hugo Rose는 "교통사고"에 비유하기도 한다. 바라고 할 일은 아니라는 뜻이리라.

베린저의 소비뇽 블랑은 이러한 고민에 대해서, 다소 황당한 답변으로 느껴진다. 일단 어울리기 위해서, 소비뇽 블랑 92%에 4% 알바리뇨, 3% 샤르도네, 그리고 1%의 무스카트를 섞었다. 100% 소비뇽 블랑보다는 단맛과 질감을 원하는 쪽에 가깝게 조절하기 위했음이리라. 그리고 통을 사용하되 20%만 사용한다. 솔직히 테킬라의 향은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야 당연하다. 테킬라는 스카치 위스키처럼 오크통에서 엄청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3년만 지나도 최고 등급이고, 고가로 거래되는 테킬라도 1년 미만의 숙성 원액이 혼입되는 경우가 다수이다. 그만큼 나무의 영향에 취약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다 증류한 원액이라는 지점은 다르지 않으니. 결론적으로 그냥 재사용한 오크통에 가깝다. 그렇다면 통하는 지점이 조금은 있지 않나?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 재사용한 오크통은 풍미가 절제되어 있어 소비뇽 블랑과 더 잘 어울릴텐데.

그런 꿈은 알 수 없는 혼입 비율앞에 무너진다. 나파 밸리의 소비뇽 블랑의 풀향기, 그리고 제스티하다고 표현되는 신맛이 첫망울에 다가오나 와인메이킹 과정은 맛을 더해내지 못하며, 오히려 빠르게 물리게 만들 뿐이다. 소비뇽 블랑이 지닌 가치를 잘 살리지도 못했으며, 결국 남는 것은 속았다는 기분 뿐이다.

그럼 베린저가 미국에서 잘 나간다는 소개를 한 유통사의 잘못인가? 일견 그렇고, 또 그렇지 않다. 거짓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베린저의 디스팅션 시리즈나 싱글 빈야드 제품들은 대단하다. 안토니오 갈로니와 같은 이들이 극찬한 이유가 느껴지는 위대한 제품들이 있다. 다만 이게 그렇다고 한 적이 없을 뿐. 당연히 가격 차이는 있고, 이른바 "해평가"를 생각하면 국내 가격은 꽤 좋은 편이다(KRW 30000 미만, 2020년 기준). 하지만 그 외에는 전부 사실 허상이다. 테킬라 오크통, 유명 생산자와 같은 것들.

요새 유튜브를 통해 마트의 저가 와인의 소비 편중이 엄청나게 심해졌다고 한다. 플레이어로서 유튜브는 시청하지 않아도 그렇다는 낌새는 염두해두고 있다. 과연 이것이 와인 시장의 발전일까? 와인 시장에 전문가는 내가 느끼기에는 충분히 많은데, 소비의 지평이 바뀔까?

  • 동 생산자의 동일 라인중 까베르네 소비뇽과 샤르도네가 더욱 호평을 받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여 소비뇽 블랑은 구매한 사람이 유책한가? 그렇다고 하면 시장이 너무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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