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단편적인 베트남 요리사 이해

쇠고기와 쌀으로 만든 면이라는 이색적인 조합의 쌀국수phở bò라는 요리로 대표되는 베트남 음식이 식민 지배 시기 프랑스인들의 영향을 받아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베트남 음식의 사정은 그보다도 복잡한 측면이 있다. 이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이해해 보자.

프랑스를 비롯한 열강이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이전, 베트남은 큰 틀에서 중화권의 일부로 인식되었다. 중화에서도 그렇게 바라보았으며 베트남인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월, 안남, 교지 등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명칭이 사용되었고 중화 왕조가 직접 지배한 때, 독립 왕조가 지배한 때가 뒤섞여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베트남의 독립은 근대의 민족주의적인 성격으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조공 제도를 중심으로 한 중화권 특유의 질서 내에서 조공국이 아닌 북의 천자와 대등한 남의 제위를 주장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조선이 명을 섬겼다고 하여 조선 요리가 중화 요리의 일부로 편입된 것은 아니듯이, 베트남 요리 역시 중국 남부의 각종 요리들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예컨대, 베트남의 왕자비가 작성한 요리책 식보백편Thực phổ bách thiên과 같은 기록을 보면 광둥 지역과 오랜 무역을 유지했음에도 건패나 제비집 등 광둥 지역의 고급 식재료들은 거의 사랑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가장 사치스러운 궁중 음식이었음에도 소고기마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해산물 위주, 그것도 메기나 숭어와 같이 메콩 강 생활권의 생선들이나 바닷고기, 야채 등이 주로 등장하고 그 뒤는 가금류가 자주 등장하고, 광둥 요리의 고급 식재료들은 드물게 등장한다. 외려 민중적인 단위에서 후띠우Hủ tiếu나 완탕 스프 등의 요리에서 광둥의 영향이 나타난다.

중화권과의 긴 교류보다도 현대 베트남 식문화에 강렬한 영향을 끼친 것은 프랑스라 할 수 있는데, 재밌는 것은 프랑스의 등장은 단지 프랑스 식문화의 요소들을 도입하게 했을 뿐 아니라 베트남 자체의 음식도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는 점이다. 시카고대에서 식문화 역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역사학자이자 작가 E. J. 피터스에 따르면 느억 맘과 넵 머이와 같은 베트남 지역의 음식들이 두각을 보인 것 역시 프랑스의 본격적인 지배 이후라고 한다.[1]

프랑스의 베트남 지배 정책은 융화보다는 분리에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식문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았지만, 커피와 바게트, 우유, 소고기 등은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베트남에 자리한 것이 분명하다. 재밌는 점은 이후 남북 분단기에는 미국이 햄이나 아메리칸 체다같은 식재료가 다량으로 배급하기도 했는데 이런 재료들은 별달리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민주정부 시기 베트남에 파견된 미국인들마저도 베트남에서 햄버거보다 바게트를 비롯한 프랑스 요리를 즐겼을 정도라고 한다.[2] 포토푀로부터 현대 쌀국수(포)가 유래했다는 설은 학술적으로도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반대로, 19세기까지 베트남에서 쌀국수의 주된 형태는 분bún이었다) 이외에도 서양의 야채들부터 플랑같은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문화가 베트남에 녹아드는 계기가 되었다.

도이모이 정책의 도입 이후로는 화교들에 대한 탄압이 줄어들면서 중국과의 교류가 늘어나 중국 요리 역시 현대 베트남 요리에 다양한 영향을 주었다. 쩌런을 중심으로 청판이나 춘권 등의 딤섬을 본딴 요리가 보급되었으며, 반대로 베트남에서 광저우로 진출한 인지창펀(银记肠粉)같은 사례가 생기기도 했다.


  1. Peters, E. J. (2011). Appetites and aspirations in Vietnam: Food and drink in the long nineteenth century. Rowman Altamira. ↩︎

  2. Lien, V. H. (2016). Rice and baguette: a history of food in Vietnam. Reaktion Books. p. 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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