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채나 - 2021년 봄

비채나 - 2021년 봄

어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점심과 저녁 메뉴가 거의 온전히 동일하다면, 점심 식사만으로도 전체를 아울러 볼 수 있지 않을까?
홈페이지에 올라온 메뉴판에 「NEW CLASSIC」이라 쓰인 문구가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한식의 소박함이 주는 고유의 멋을 지키겠다. 가게 이름도 신묘하다. "비우고 채우고 나눈다"라니, 도대체 무슨 요리를 한단 말인가? 전력으로 부딪혀볼 요량이 있었다.

방문 전에

전화, 인터넷 예약, 카카오톡 챗봇을 통한 예약 등 다채로운 예약 방법 중 선택이 가능하다. 챗봇은 허울 뿐이고 채팅 상담이 아예 불가능한 물건이지만 챗봇을 통해 프로모션을 진행하므로 불편을 감수할 이유는 있다.

예약사항에 대한 확인 전화가 한 번 있고, 당일날 방문에 대한 확인 전화는 하지 않는다.

요리

점심 코스인 산천(KRW 70000)에 생복만두를 더하면 거의 저녁 코스와 동일한 메뉴가 되는데, 정작 매진 관계로 생복만두는 주문할 수 없었다. 대신 건조숙성채끝등심(+KRW 20000)과 청포묵화반(+KRW 10000)을 더해 구색을 맞췄다.

부각

본분을 잊고, 아니, 어찌 생각하면 본분에 집중하느라 두 입을 먹고 급하게 기록을 남겼다. 애초에 이 블로그의 사진은 "여러분 제가 지금 거짓말하는게 아닙니다" 정도의 의미인 만큼 양해를 바란다.

페어링은 두 잔부터 네 잔까지 권하고 있는데, 페어링이 두 잔부터 샴페인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샴페인은 잔으로 주문이 가능한 종류와 일치하므로, 사실상 이곳의 주류 메뉴는 보틀을 제외하면 한 종류에서 양만 정하는 셈이 된다. 별안간 그렇게 G. H. Martel의 Victoire를 식전주로 거의 무조건 고르게 되는데,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다. 빵 향기도 적당히 스쳐 지나가고, 무게감도 충분하다. 다만 선택의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시그니엘 호텔을 제외하면 딱 한 곳의 와인샵에서 취급하는 와인인데, 딱히 나쁘지 않은 와중에 좋지도 않았다. G. H. 마르텔이 워낙 양산하는 저가형 샴페인이 많은 회사인 만큼, 정말 내가 롯데호텔에 있다는 기분만큼은 들었다.

보이지도 않는 샴페인에 대한 이야기를 이정도로 마무리하고, 요리 이야기를 해보자. 앞의 원통에 절묘하게 가려있는 부분에는 야채를 묶은 일종의 쌈이 있었다.

부각은 세 종류로 들깨와 육포, 명이나물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일단 전형적인 부각이 아니라는 점이 눈에 띈다. 부각이라 하면 흔히 땅 위에서 자라는- 그 땅이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을 경우까지 포함하여- 것들을 튀겨내는 몇 안되는 옛 한식의 튀김이다. 먼저 재료를 말리는 행위를 통해 수분을 한껏 빼고 보관성까지 높인다. 그리고 몇 겹에 걸처 찹쌀풀을 바르는 과정을 통해 요리에 켜를 덧입혀 기름을 더해 마무리한다. 애초에 딱딱하게 굳은 재료를 튀긴다는 점에서는 의아함이 있지만 단단한 질감도 어쨌거나 추구하자면 추구할 수 있고, 철을 달리하여 내거나 무언가 더 발라서 마무리하기에도 좋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무언가 의구심이 들지 않는가? 눈에 보이는 부각은 그 어느 것도 감싸고 있지 않다. 흔히 부각에 쓰이는 재료인 해초를 배제하고 계절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들깨와 말린 고기를 재료로 선택했다는 점에서도 일견 의아하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들은 하나의 열쇠로 전부를 열 수 있다. 일종의 프랑스 요리의 구제gougéres같은 것을 내는 경우를 떠올려보면 그렇다. 육포 부각의 경우처럼, 구제는 그뤼에르니 초리조니 반죽에 다져서 열으로 부풀린다. 밀가루 반죽이 찹쌀 반죽으로, 초리조가 육포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요리가 첫 요리로 등장하는 것도 자연스레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이 요리를 두고 우리는 어떻게 감상하는가? 이것은 부각에 대한 "포기"로 느껴진다. 확실히, 재료를 적절한 상태가 될 때까지 말리고 여러 켜의 풀을 입히는 과정은 수고롭다. 또 그렇게 수고로운데 비해서 신선한 채소들의 향이 적절히 살아나지 않는 경우도 잦으므로 허탈할 공산이 크다. 그래서 이름만 부각인 요리를 냄으로서, 부각은 그다지 매력적인 조리법이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정당한가? 단순히 반죽 덩이를 한웅큼 내는 경우가 꽤 있기에 그에 비하면 주관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첫인상부터 "뉴 클래식"을 표방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기 어렵다. 새롭기는 하지만 고전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물론 그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정직함은 언제나 잃어버려서는 안될 가치이다.

부각이 전형적인 서구의 핑거 푸드라면 식기와 함께 제공되는 것은 "막장-야채 쌈-딸기와 콩묵"이다. 나는 서버가 요리의 이름이 막장이라고 했을때 조금은 흥분했다. 장이 주제인 요리중에서도 특히 된장. 그것도 막된장을 주제로 했다니. 그러나 나의 기대는 꺾였다. 조금은 묽은 형태로 장을 만들어 담아낸 것. 그것이 끝이었다. 무를 파내어 담아내는데 무구한 노고가 들었겠으나 중요한 요소, 즉 개념이 없다. 장에 대한 주방의 생각은 무엇인가? 쌈과 장이 이어지지 않는다. 쌈에는 썩 풍성한 신맛이 있고 장은 장대로 납득할만한 짠맛과 감칠맛이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쌈에는 장이 받쳐주어야 할 지방이 없으니 둘은 완벽히 갈라선다. 그렇다면 장은 홀로 설 수 있는 요리로서의 충분한 복잡함을 드러내야 했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 심지어는 이 적절하게 잘 만들어진 된장을 쓴 요리는 이게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더욱 뼈아팠다. 쌈은 어떤가. 카나페나 테린처럼 완성된 작은 요리로서 쌈을 쓰겠다면 쌈의 심장부가 될 단백질이나, 최소한 밥이라도 있는게 장과의 연결에도 자연스럽고 쌈이라는 요리를 존중하는 방식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신선한 봄 야채들은 그 자체로 즐길 거리이지만, 이것이 좋은 쌈이 될 수는 없다.

마침 최근에 이 회사의 계열사 출신 셰프가 「모모푸쿠 쌈 바」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그의 쌈을 이곳은 모르는가? 나보다 훨씬 잘 아리라 믿는다. 데이비드 장이 무언가로 감싼다(wrap)는 행위에는 멕시코의 타코부터 한국의 쌈까지 다르지 않다라는데서 착안한 요리를 냈던 것이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그로부터 무언가 얻은게 없었는가?

짠맛과 신맛, 크게 봐서 나물에 쓴맛까지 끼워주었다고 하면(쌈의 쓴맛은 없는 수준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남는 것은 단맛이라는 점에서 딸기가 있다. 생딸기라니. 보통 한 입 거리인 딸기를 굳이 잘게 저미느라 또 무구한 노고가 들었다. 그러나 아래 보이는 식기의 크기를 감안하면 통상 한입에 집어넣게 되고, 딸기의 섬유질을 부수는 데에 칼집이 필요할 정도로 딸기가 단단하지 않다. 물론 나는 조리사의 솜씨를 허투루 하지 않기 위해 저 요리를 세 번에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나는 입안에서 쉽사리 내려가지 않는 콩가루와 빠르게 사라지는 딸기의 시간차 공격에 세 번 당했다. 샴페인을 세 번 마시고 입안을 닦아내야 했다. 딸기가 일제시대 이전의 한식과는 무관하더라도, 확실히 겨울에서 봄이 될 즈음 한국은 항상 딸기로 시끄럽다. 딸기가 크림보다 많이 들어간 딸기 케이크부터 딸기와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호텔의 딸기 뷔페까지 딸기로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이 딸기는 그 딸기들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틈새 없이 뭉친 반죽과 물이 많은 섬유질, 이것도 질감의 대비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까?

이렇게 샴페인 한 잔에 작은 요리들을 치르고 나면 그 다음에 대해서 생각이 복잡해진다. 안내받은 순서대로 식사를 하다보면 가장 익숙한 이름을 가진, 그러면서도 가장 색다르게 만들어낸 요리부터 마지막에는 가장 변화가 적다 못해 날것의 재료로 돌아가게 된다. 앞서 말했듯 서구의 핑거 푸드, 혹은 오로되브르를 염두에 두었다면 적어도 최소한의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의 개입이 필요했다. 가공한 내장이나 염장육과 같은 것이 흔히 쓰이지 않는가? 비육을 거친 푸아 그라를 내야 오로되브르가 아니다. 우리 요리에도 순대부터 어란, 포에 이르기까지 정말 그 틀을 재현하고 싶었다면 방법은 많았다. 물론 "순대는 고급 요리가 될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도전하기는 쉽지 않겠다만.

도다리쑥국

계절을 맞아 나온 다음 요리는 도다리쑥국이었다. 도다리쑥국은 외국 문화권의 요리사에게도 눈에 밟힐 만큼 대표적인 봄철 요리로 자리잡았다. 다시 새삼스럽게 이 도다리쑥국을 만난다.

다시 이야기해보자. 이곳에서도 반복한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도다리의 살은 오래 끓여버리면 뭉개져버려 엉망이 되기 십상이므로 또 뼈를 발라 따로 육수를 빼고 살을 마지막에 넣어 조립하는 방식으로 마무리한다. 쑥을 마지막에 넣고 끓여 국물에 향을 입히는 대신 살짝 얹어 국물을 살린다. 다시 도다리는 기름기가 모자라 유쾌하지 않고, 쑥에 대해서는 다시 고민하는 대신 접시 밖으로 밀어낸다. 쑥의 품질 자체가 썩 아름다웠기에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작은 접시를 통째로 뒤덮을 힘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도다리쑥국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깊은 감칠맛의 국물을 제하면 도다리쑥국을 먹어야 할 이유는 아무래도 보이지 않는다. 도다리가 아니라 다른 생선으로 같은 일을 했다면 훨씬 나은 음식이 되지 않았을까? 단지 정갈하게 담았다. 그 이상을 나는 이 요리에서 읽지 못했다.

쑥국이 애초에 어떤 요리인가? 쑥은 강한 생존력을 지녀 봄이 되면 정말 산들에 널려있다. 심지어는 도심에서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독한 새싹들도 보인다. 구황이라 하여 봄철을 지내는 필수품이 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생명력에 있다. 그 생명력만큼이나 향도 강해서 약간의 쑥은 요리 전체를 잡아먹는다. 쓴맛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적게 쓰더라도 그 향이 죽지 않으니 옆나라에서는 쑥으로 당고같이 단맛의 요리를 만들기도 하고, 우리는 된장을 바탕으로 한 짠맛의 요리에도 훌륭하게 사용한다. 그러나 이제 생존을 위한 식사의 단계를 벗어났다면 그 향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살린다면 반드시 이렇게 날것으로 향을 느끼는게 최선인가? 그리고 도다리는 최선의 짝인가? 당장 수십년 전의 신문들만 뒤져보아도 쑥국에 달걀을 풀라 그러지 않나, 고기완자를 띄우거나(일제시대), 모시조개나 바지락같이 조개육수로 하는 제법도 보인다. 왜 하필 도다리일까? 언제부터 쑥국은 도다리였고, 도다리는 쑥국이었나? 이 요리는 그에 대해 일단 후퇴했다. 불협화음이 생기지 않게 각자 똑 떨어뜨려 놓았다. 접시위에서 급하게 모여보지만 이합집산이다.

메추리강정

강정 즈음에 와서는 이제 부각에서 시작했던 한식의 제법에 대한 생각은 그냥 잊는게 편하다고 느낀다. 이 요리는 강정이지만, 반죽을 씌워 익혀냈다는 것 이외에는 강정이라는 생각이 들 요소가 적다. "속 빈 강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속은 메추리가 아닌 다른 것으로 가득찼다. 갑각류와 패류의 살으로 작은 메추리를 열심히 채웠다. 모든 요리가 다 이 모습 그대로 재현될 것을 생각하면 메추리의 절반은 계속 버려질 것이라는 슬픔이 자리한다. 얼마 전 신문에 연재된 오르톨랑의 이야기를 다시 읽어서는 아니지만, 작은 새는 그래도 먹는다면 최대한 전부를 먹을 수 있는 만큼 살리는게 좋다. 그러기 좋은 크기이기도 하고, 요리에 바친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경의이기도 하다. "노즈 투 테일" 레스토랑은 이제 단순한 관광 명소, 미쉐린 레스토랑이 아닌 런웨이에 등장하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는데, 메추리 요리는 거꾸로 거의 모양만을 위해 전부가 버려지고 있었다.

논리적으로는 나는 이 요리가 이해된다는 점에서 더욱 슬프다. 메추리를 왜 파냈을까, 왜 메추리의 전부를 내지 않을까? 고고한 역사를 지닌 참새구이도 한국인의 식문화에서 자취를 감춘 이후 작은 새를 요리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 잊어버렸다기보다는, 이제는 그렇게 요리하고픈 메추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메추리의 원산지를 물었는데 역시 국산이었다. 한국에서는 메추리를 고기를 위해 키우지 않는다. 프랑스같은 곳에서는 메추리를 살을 찌우는 과정engraissement을 거쳐 출하하기에 메추리가 자연 상태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살이 오르게 되지만 우리에게는 메추리는 알 낳는 동물에 불과하므로 메추리의 품질은 필연적으로 좋지 않다. 그렇기에 메추리 살을 전부 살려낸다면 객들의 혹평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메추리는 분위기만 내고, 실질은 자신있는 바닷것들의 맛으로 가득 채웠다. 그런 요리를 먹고 있자니 생복만두가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도 같다. 큰 얼개에서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그럼 이런 요리는 왜 해야만 할까. 역시 그 메추리의 분위기다. 고급 한식당이 고급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익숙한 닭이 아닌 낯선 메추리인가. 메추리 타령은 그쯤 하고 다시 강정으로 돌아가자. 닭 대신 메추리라고? 앞서 전통 강정과의 거리를 지적했지만 뒤의 고추장을 보면 독자들도 이해할 것이다. 그 강정이 그 강정이 아니고, 닭강정을 말하고 있다. 닭강정의 "찍먹" 버전인 이 요리는 근현대 한국 식탁의 가장 무의미한 논쟁 중 하나인 찍먹과 부먹의 문제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방에서 내놓은 답은, 찍먹이었다. 고추장을 찍어서 먹는다. 풀기가 진득하게 남은 고추장은 마음처럼 찍히지 않고 기물을 더럽히는 한편 골고루 맛이 스며들지 않는다. 그 자체로 섬세한 맛들이 좋은 속재료를 단맛이 강한 고추장이 덮어버려 최대한 손목에 힘을 주어 살짝 찍도록 노력하게 된다. 여러모로 닭강정의 현주소를 지적하기보다는 닭강정과는 전혀 다른 요리로 만들어버리고, 닭강정의 문제는 압도적인 코스트의 해산물로 해결했는데, 그렇다면 다시 나는 부각을 떠올린다. 이 주방에서는 근현대의 산물인 닭강정 역시 포기의 대상인 듯 하다.

Domaine Nudant, 'Les Valozieres', Aloxe-Corton 2017
건조숙성채끝등심(supplément KRW +20000)

아마 개업때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이 요리는 이름부터 사실 정말 사람들이 지금 이 현실에 만족하고 있는지 의문을 던지고 싶게 만들었다. 건조숙성이라고 하지만 사실 드라이 에이징이다. 드라이 에이징을 건조숙성이라고 말하면 그것이 한식으로 완성되는지, 격식 있는 식사=스테이크의 공식을 따르는 와중에 소스의 부재에는 아무도 의견이 없는지? 이 이름을 보면서 나는 근래 와인 판매점의 소개글이 떠올랐다. 이 와인에 잘 어울리는 요리는? "한우 맡김차림". 이게 무슨 코미디인가! 한우 오마카세에 어울리는 와인-소고기의 모든 부위에 들어맞을까에 대한 의문은 둘째 치고, 와규를 한우로, 오마카세를 맡김차림으로 말만 바꾸면 모든게 해결되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래도 와규 오마카세보다는 드라이 에이징을 옮겼으니 마음은 한결 안심이 된다.

소금을 입혀서 드라이 에이징을 하고 염지를 더한 뒤 그릴에 굽는다. 놀라운 것은 양파에도 소금간이 되어있었다는 점 정도. 두 요리 모두 온전히 재료와 소금만으로 먹어야 한다.

김치

그렇다면 소스는 영락없는 이쪽, 바로 김치였다. 「가온」에서 클렌저로 내는 김치는 국물 가득한 동치미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건 절대로 클렌져가 아니다. 제공되는 순서 역시도 그렇고. 식사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가는 젓가락도 이게 일종의 소스임을 방증한다. 소금과 소금 뿐인 고기 사이에는 반드시 김치가 필요하다.

김치는 젓갈을 풍성하게 썼지만 겉절이에 불과해서 소스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봄 배추는 봄 무에 비하면 그나마 합리성을 보이지만 김치의 우주에서 꺼내온게 겉절이라면? 김치-고기-밥의 트로이카를 굳이 이렇게 분쇄하는 이유는 바로 어떤 사람들의 허영심 때문이겠다. 한식당에 와도 "스테이크"가 먹고 싶으시겠지. 「어글리 딜리셔스」에서 본 목욕탕 스테이크를 떠올리면서 이 요리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맺겠다. 김치 위의 참나물이 할 말이 많은 듯 하니.

청포묵화반(supplemént KRW +10000) / 소고기무국

마침 녹두가 맛있는 봄이기도 하기에 청포묵을 넣은 비빔밥이 있어 주저없이 선택했다. 사실 나는 이 화반이라는 이름에도 불만이 있었다. 혹시 육회를 넣은 진주식 비빔밥같은걸 내면서 화반이라고 한다고 하면 나는 분통을 터뜨릴 지도 몰랐다. 아무리 찾아도 그런 소문의 기원을 알 수가 없었기에. 그러나 내가 마주한 것은 진짜로 꽃을 한 송이 얹은 비빔밥이었다.

김가루 흩날리며 고루 비벼주어야 맛이 사는 탕평채를 떠올려보면, 묵을 넣고 비빔밥을 할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탕평채의 이명이 골동채로 불리기도 했다니 화반의 본명일 골동반에도 얼추 들어맞는다. 서울에서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는 비빔밥을 주제로 냈다는 데에서 나는 반색했다. 게다가 아까 말한 엉터리 설명도 없고, 고사리부터 나물들도 줄지어 있으니 나는 이제 고추장을 기다렸다...

그랬다. 이 비빔밥에는 고추장이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찬으로 곁들이는 조개를 담은 간장(조개젓)이 간의 도구였다. 밥의 양에 비해 양이 시원찮으므로 접시째로 밥그릇에 털어넣게 된다. 아밀로펙틴이 터져나오지 않도록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에 고추장 대신 간장이므로 비벼도 끈적끈적해지지 않아 마치 더 나은 비빔밥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고추장을 회피하고 성공했다면 그 성공은 반 쪽 짜리다. 비빔밥의 맛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고추장을 쓰지 않는 헛제사밥의 매우 큰 지지자이다. 그 요리를 접한 그 때부터 비빔밥 식당에 가면 나는 그것을 찾았고 지금도 찾고 있다. 그러나 헛제사밥의 경우는 이것과 다르다. 간장에 볶아낸 고기나 기름진 전, 그리고 때에 따라 달걀까지 풍성한 단백질 요소들이 투하되고 거기에 탕국물까지 곁들이는 헛제사밥에는 간장만 살짝 더하더라도 간도 감칠맛도 풍성하다. 그러나 나물의 구성을 보라. 고사리 정도가 강한 풍미를 낼 뿐이고, 청포묵은 애초부터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공들여 지은 밥이 무너지고 말았다. 애초에 솥밥이 유일한 선택지이고 내가 함정에 들어간 것일까? 앞선 네 조각의 소고기가 있었다면 상황은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완성된 한 상이 굳이 시계열을 이루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분절되고 요리도 식객도 방황한다.

소고기무국은 주 요리의 변경에 불구하고 동일하게 나오는데, 봄 무를 쓴다면 적어도 푹 익혀달라. 깍둑썰기한 무의 가장자리 부분으로 보이는 한 덩이를 씹는 순간 나를 며칠 전 천 오백원을 주고 산 무는 반드시 겉을 더 열심히 깎아서 먹겠다고 다짐하게 만들었다.

반찬들의 경우 하나하나는 빛나는 지점도 있다. 김치는 완벽하게 시었고 멸치는 가정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손질을 거쳤다. 그럼에도 젓가락에 전부가 달려나오는 모습은 가정과 똑같지만. 무만두? 무는 이제 그만.

곶감수정과 / 단팥묵

점심 코스와 저녁 코스의 차이는 디저트에서 아이스크림이 있느냐 없느냐다. 아이스크림이 없기도 하고 글이 충분히 길어졌으므로 굳이 개별 요리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지는 않겠다.

잣이 있는 점은 훌륭하고, 팥묵은 콩묵과 동일한 질감-즉 동일한 불유쾌감-이다.

보이차 / Pu Er Tea

무려 보이차가 있다. 운남성의 홍태차창, 수확년도가 그다지 멀지 않아서 생차로 추측했다. 그러나 내는 온도가 너무 뜨거워서 이런 생각은 다 접었다. 공도배라고 해서, 보이차도 일종의 레스팅을 거치는 다기가 있는데, 어째서? 그래도 있는 것에 만족해야 했을까.


총평

「비채나」의 이름이 글에서 느껴졌는가? 나는 무엇을 비우고, 어떻게 채우고, 누구와 나누었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KRW 169000으로 얻은 것은 도대체 한식은 뭐고 앞으로 한국인으로서 한식을 해먹고 산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에 대한 짙은 의문 뿐이었다. 한식에 대한 고민을 유일하게나마 느낀 지점은 부각이었고, 그나마도 나는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나머지는 나를 슬프게 하는데 이르렀다. 운이 좋게도 가족끼리 특별한 날을 보내는 객들, 그리고 일종의 취미생활로 호텔을 즐기는 사람들과도 같은 시간대에 식사를 가졌는데, 도합 세 테이블에서 내가 앉기 전부터 내가 떠날 때까지 단 한 번도 건들지 않은 듯한 콜라 한 잔과 오가피를 끓인 기본 차 이외의 모든 음료는 전부 내가 마신 것이었다. 그러나 무엇이 나오는지, 왜 요리와 맞추는지, 그리고 샴페인이 왜 페어링인지 알 수 없는 잔의 행진을 이어나가다 보면 그 사람들의 선택도 일견 이해가 간다. 몇 잔 걸치고 곱절의 가격을 내는 사람은 그냥 바보 내지 술꾼으로 보인다고 해도 누구 하나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 않을 분위기. 같은 것을 달리 본다는 시각이 무엇인지, 한식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나는 모르므로 답을 구하기 위해 이런 곳에 이런 비용을 치렀고 이런 답을 얻었다.

십 년, 아니 오 년, 아니 2021년 지금 당장 한식의 주소를 바라보라. 단백질의 품질과 가격에 사활을 맡기는 스시 오마카세와 한우 오마카세의 득세 속에서 한식의 아름다움이 설 곳이 있는가? 그들에게는 탑-다운 방식이라고 불러줄 수도 없는 것이 사실 탑만 있고, 다운은 없다. 미국산 소고기 오마카세 같은건 없다! 그러나 한식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 속에 녹아들어있기에, 그들은 할 수 없는 바텀-업 방식의 미식을 가능케 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 재료가 값비싸고 낯설어서가 아니라, 내일의 요리를 바꿀 수 있는 지혜를,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effervescence를 느낄 수 있는 한 끼를 찾아서 장장 두 시간동안 식탁에 앉는 것이다. 셰프 드 퀴진에 더해 Creative Director까지 있는 곳에서 이곳의 요리는 과연 한식을 해석interpretatio하고 있는가?

분위기: 들리는 듯 대화를 가리지 않는 음악. 층고가 높은 공간에서 소리는 거의 울리지 않는다. 객들의 절반 이상은 스니커즈를 신고 있고, 그래도 되는 정도의 분위기를 갖추었다.

서비스:

가격: 점심 KRW 70000 단일 메뉴, 저녁 KRW 150000과 KRW 180000의 두 가지 구성이 있다. 각기 한 두 가지 요리가 더해지냐 마냐의 차이이며, 주말에는 10% 가산한다.

음료: 프랑스 이외의 선별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인 리스트가 돋보이지만 페어링은 프랑스의 대형 생산자 위주의 안전한 선택에 머무른다. 보틀로 화이트를 고른다면 거의 신대륙 샤르도네가 필연이다. 내추럴 와인에 한국 와인까지 확보한 점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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