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schöfliche Weingüter Trier, DOM Riesling, Mosel, 2017

Bischöfliche Weingüter Trier, DOM Riesling, Mosel, 2017

와인 구매만을 위해 찾아가는 샵들이 나의 주 거래처이지만 대형 마트는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와인 산업의 큰 줄기이다. 이제는 유튜브가 추천하고-대형 마트가 유통한다. 순서는 다를 수 있지만 두 가지를 무시하고서는 와인 소비의 흐름을 알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 마트에서 눈에 띄게 소외받는 게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리슬링이다. 한국이 본래 독일 와인과 리슬링을 멀리하던 곳은 아니었다. 에곤 뮐러나 된호프같이 먹이사슬 꼭대기에 오른 생산자들은 결코 부족하지 않게 소비된다. 그러나 종종 찾는 식료품 코너에서 리슬링의 자리는 넓지 않다.

리슬링은 한국의 식탁에서 더 넓은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내 말은 보통 들리지 않으니 타인의 힘을 빌린다. 「Benu」의 와인 리스트가 화이트만큼은 독일의 리슬링과 오스트리아의 그뤼너 벨트리너를 프랑스와 미국보다 앞에 배치한다고 나느 말한다. 적어도 2017~18년동안에는 그랬으니 지금은 아닐 지도 모른다만 나는 여전히 그러한 리스트의 구성이 매우 의도적이고 또 설득력 있다고 느낀다. 전형적인 한식 뿐 아니라 한국인들이 즐기는 외국의 요리에서도 이러한 중부 유럽의 자리는 충분하다. 달큰한 소스가 발리는 장어와 백후추향과 풍성한 신맛을 지닌 그뤼너 벨트리너는 손쉽게 짝을 맞출 수 있고 이미 브뤼 샴페인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감안할 때 트로켄이나 GG 리슬링이 결코 빠질 이유가 없다. 단맛이 있는 리슬링과 매콤달콤하고 기름진 아시아 요리의 궁합은 고전의 수준이라고 부를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리슬링이 모든 요리를 여는 키는 아니기에, 리슬링의 부침도 당연히 가능하다. 이 리슬링은 이마트 트레이더스에 있던 두세 종의 리슬링 중 하나인데, 청명한 단맛을 가진 편한 리슬링이었다. 스크류 캡과 모젤, 그리고 단맛이라.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단맛과 신맛의 균형이 있으나 복잡함이 모자란, 과실미 위주의 전형적인 편한 와인이었다. 이런 와인은 고전하고 있다. 여전히 가정의 식탁에서 와인은 소주와 경합하고 있고, 그 상대방이 되는 요리는 고기 구이일 경구가 가장 잦다. 바싹 익혀도 기름이 가득한 삼겹살의 지방에 버티기에는 탄닌계의 두꺼운 피부로 무장한 신대륙의 까베르네 소비뇽이 앞설 수 있으니, 신대륙 와인의 득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의문은 남는다. 프로세코나 모스카토 다스티같은 술들은 뭐 고기랑 잘 어울려서 있는가. 피크닉이나 배달 음식과 함께하는 파티에도 와인의 자리는 있다. 그렇다면 일상의 식사, 이를테면 전형적인 밥과 반찬, 찌개에 힘을 준 요리 한 두개를 곁들이는 식사의 자리에 한 두잔 정도의 자리는 없을까. 진정한 의미의 반주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알코올이 아닌 맛을 이유로 한 음주의 자리. 값비싼 외식 자리에서도 맹물과 무료 녹차로 버티는 객들이 득세하는데 일상에 그런 여유가 어딨겠느냐만은, 오히려 일상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는게 가능성은 있어 보였다. 이 와인은 2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배달 치킨의 가격에 필적하는데 일 주일엥 음료에게도 그런 여유를 줄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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