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과점 임오반 - 과자의 짝

병과점 임오반 - 과자의 짝

여러 과자와 케이크를 포장하면서 많은 쓴맛을 봤다. 단맛의 세계에서 쓴맛을 볼 일이 있냐 싶느냐마는 그런 일들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단지 요리 때문에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상황이 받쳐주지 않으면 좋은 요리도 빛을 잃기 십상이다. 이동이라는 변수가 장소와 시간을 달리하게 되고 신경쓰지 않았던 요소들의 부재가 눈에 들어온다.

「임오반」의 과자를 간만에 한입거리로 챙겨가면서 눈에 띈 부재는 마실거리였다. 흔히들 이런 간식거리와 함께 곁들이로 음료를 내는 게 오후의 여유가 아닌가. 싱그러운 화채로 신맛과 향을 더해낼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을. 그동안 이곳의 큰 고객이 아닌 덕분에 메뉴를 지켜내지 못한 내 불찰일까? 에이,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아쉬운 건 변함이 없는 가운데 플랜 B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이전에도 누군가는 뭐랑 먹으면 좋다더라, 매장의 큰 고객들이 얹은 소개는 들은 기억이 있지만 나는 그동안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런 큰 고객도 아니고, 주류에 한과를 즐길만큼 풍류가 넘치는 사람도 아니니까. 그렇지만 화채와 홍차가 사라진 자리에 나는 무언가를 채워야 했다.

처음으로 떠오른 것은 매장의 차의 재현이었다. 녹차나 <마리아쥬 프레르>의 홍차 따위는 찬장을 뒤지면 있을 법한 물건들이다. 그러나 그동안에도 이 음료들에 두 번 손을 대지는 않았다. 역시 화채가 필요한데! 비록 가게의 위치에서 경동시장이 멀지 않다고 하지만 화채까지 담을 의지는 없다. 그렇다면 머리를 써보기로 했다.

먼저 전형적인 약과의 맛을 떠올려 보자. 꿀이 주축이 되고 생강 등이 향을 더한다. 꿀은 마이야르 반응에서 이끌어지는 경우와 유사한 풍미를 소량 포함하고 있으며(이는 퓨라논 등의 화합물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꽃에 따라 다르지만 vegetal한 풍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흔히 비추어지는 모습과 달리 생각보다는 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말린 과일 등과 곧잘 어울리고, 앞서 말했듯 신맛을 더할 수 있는 과일이나 과일 식초, 혹은 와인 등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흔히 구할 수 있는 것으로는 레몬향을 더한 탄산음료나 무언가 담그기 좋아하는 집안의 청으로 만든 주스 따위가 떠오른다. 그러나 이런걸로는 재미가 없다. 지혜를 더해보자.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서재에 「Flavor Matrix」같은 책이 있다. 꿀..꿀.. 꿀에는 살짝의 매운맛, 이를테면 정향이나, 아니면 마이야르 유사의 풍미를 지닌 견과류~육류도 상정해볼 수 있다. 그러다 떠오른 생각은 그렇다면 디저트 와인 종류는 어떨까? 생각이 흐르는 대로 찬장 구석에 포트 와인을 곁들이기로 했다. 아직 나이트캡을 마실 시간은 아니니까.

이미 영혼 깊이 각인된 한국적인 기호를 알아차리듯 휘감기는 깨의 향기, 그리고 치밀하게 덧댄 생강의 향기는 잠깐동안이지만 서양 과자를 잊게 해준다. 부스러지는 감각(flakiness)이 서구의 과자와는 결을 달리하고, 밀푀유와 같은 유제와 비교했을 때 사이를 메울 크림의 부재가 마음에 걸리지만 이런 것들을 섣불리 약과의 결함으로 진단해서는 곤란하다. 켜 사이에 지방이 끼어있는 대신 즙청을 통해 가장 깊은 곳까지 발라낸 단맛, 오븐이 아닌 기름에서 굳혀 한층 경쾌한 식감이 있는 약과는 또 다른 세계의 즐거움이다. 네 개를 모아서 만 원이라고 생각하면 서울 각지에서 얼렁뚱땅 팔려나가고 있는 작은 케이크들, KRW 7000~9000, 호텔의 경우 KRW 10000을 손쉽게 초과하는 경우들에 빗대어 보면 그다지 부담이 없다. 애초에 한 사람이 4개를 먹는 설정의 물건이 아니지 않는가(나는 욕심이 많다).
그렇지만 생각과는 달리 모든 것이 마음처럼 맞아 돌아가지는 못했다. 가장 우선한 문제는 약과에 부재한 지방을 감안하지 않은 문제였다. 반죽을 밀어 접는 것만 보면 서양의 과자와 유사하지만 겹 사이에 밀어넣는 버터가 없다. 깨약과에 알알이 박힌 깨가 식물성 지방의 뉘앙스를 더하지만 결코 동치할 수는 없다. 그러한 점을 감안했다면 차라리 어설픈 디저트 와인 대신 저렴한 모스카토 같은 종류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전체적으로 약과가 가진 매력을 즐기는 데는 불만이 없었지만, 과연 우리가 이 과자의 "완벽한 짝"을 찾아줄 수 있을까? 욕심의 영역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어떤 커피를 곁들일지(과연 커피로 괜찮은지?), 또 일면 질박한 생김새가 피드에 시선을 끌지 따위의 고민들이 약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미래에 약과의 자리는 반드시 있기에, 더 나은 이야기를 할 날이 오기를 기다려본다. 유제품으로부터 자유로운 과자라는 점에서도 매력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깨나 쌀처럼 우리에게 친근한 맛들이 뛰놀기 가장 좋은 무대가 바로 우리 과자가 아닌가! 강변북로를 따라가다 보면 서울의 상공에서는 ô같은 일상에서 전혀 쓰이지 않는 글자가(한국어 키보드로는 입력할 수도 없다!) 시선을 사로잡지만, 빌딩의 그림자마저 드리우지 않는 1층집에서 나는 진정한 서울을 본다.

  • 사족: 설거지를 할 즈음에 동봉된 명함에 음료에 대한 가이던스가 있는 것을 알았으나 내 헛수고가 아깝기 때문에 글을 마무리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