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돌짬뽕은 시대정신이다

차돌짬뽕은 시대정신이다

Ein Gespenst geht um in Europa - das Gespenst des Kommunismus.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 공산주의의 유령이.
Marx, K. (1848). Manifest der Kommuunisten Partei („Bu23“)

레토릭으로 흔히 쓰이는 표현이지만 유령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인식 덕에 종종 무언가 부정적인 것에 이 수사를 오용하곤 하는데, 배회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는 새삼스래 밝혀야 할 사실일 따름이다. 맑스가 공산주의가 싫어서 이런 문장으로 서문을 쓰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존재를 밝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으니 이런 문장을 썼다고 보는게 맥락에 어울리는 해석이다. 공산주의를 긍정하건 부정하건, 적어도 저 문장의 의도는 그랬다. 나 역시 우리 식문화에 하나의 유령이 배회하는 것을 발견하고 타인의 수사를 훔치기를 주저하지 않을 셈인데, 그 유령이란 바로 차돌짬뽕이다.

서울 동북쪽으로 한참을 달려 차돌짬뽕과 탕수육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도저히 다 먹을 수 없었고 그렇지만 더 먹어야만 했다. 이 차돌짬뽕은 그런 음식이었다. 지극히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일상적이지 않다. 이미 돈골에 유청, 소량의 소뼈와 MSG까지 지방과 단백질부터 염도와 점도까지 거의 완전체인 짬뽕다시 베이스에 치킨스톡까지 첨가되니 스프는 단단하기 이를데 없는데 일종의 향미유 역할을 하는 차돌박이의 소기름이 다시 가세하니 묵직함이 끝에 달한다. 거기에 다시 탕수육까지 가세하면 가히 만찬이라 부를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차돌짬뽕이 2021년의, 그 이후의 한국식 중식의 시대정신Zeitgeist까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 이유를 짧게 이야기해보자.

그간 짬뽕들은 처절하게 실패해왔다. 청요릿집을 거쳐 대중음식으로 보급되면서 뚜렷한 방향 없이 보급되다가 고급화의 불길을 붙인 것은 첫째로는 광동식(!)을 표방하던 조선호텔의 홍연, 신라호텔의 팔선이었다. 요리의 철학은 커녕 조리에 대한 이해 역시 부족했기에 고급화를 시도했으나 그들의 짬뽕은 형식으로 전혀 자리잡지 못했다. 죽순, 청경채, 표고버섯 등 넣은 야채의 구성은 설득력이 없었고 단가를 올리면서 추가하는 것은 인심좋아보이는 해물로 이어졌다. 가격을 설득하기 위해 초월하지 못하고 덥수룩한 건지로 남아있는 장면을 보면 착잡했다. 한 십여년 더 된 현역 파워 블로거들의 홍연 리뷰를 보면 '건더기가 많다' 류의 평가가 수두룩하다. "다양한 해산물이 신선", "해산물 듬뿍 들어간 제대로"라는 멘트에서는 짬뽕이라는 요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드러난다. 객들이 형성하는 담론의 수준만큼이나 호텔 짬뽕은 설득력이 없었다.

그 다음으로는 '전국 5대 짬뽕' 시대가 있었는데 이 역시 시대정신이 되지 못했다. 녹두장군 블로그에 올라왔던 전국 5대 짬뽕이라는게 다른 블로그들의 확대재생산과 언론의 받아쓰기가 더해져 진짜 존재하는 무언가가 되고 말았는데, 거기에 더해 신세계와 제휴한 홍대 "초마"까지 점점 질이 떨어져가는 배달전문점 짬뽕과 차별점이 있다는 이유로 큰 인기를 얻었지만... 교동반점의 상표점 분쟁 이외에 대중적 식생활에 남긴 것은 거의 없는데 위의 호텔 방식과 더불어 대중적으로 발견된 인식이 '풍성한 고기고명'이었다. 복성루와 동해원의 짬뽕은 토핑부터 시각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논의의 실익이 없는 산발적인 짬뽕의 마진 상승을 위한 시도들은 전국 곳곳에 있었다. 이른바 황제짬뽕이니 뭐니 하면서 껍질 많은 해산물을 겉치레로 올리는 부류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의 주머니가 두터워질수록 짬뽕에는 고명만 늘어가는 가운데 춘장시장의 독점기업인 영화식품이 짬뽕다시까지 과점하면서 국물은 가난해지기만 했다.

이러한 면요리의 불행의 역사 속에서 우연히 탄생한 형식이 차돌짬뽕이었다. 그 시작은 지중해 홍합 껍데기 산처럼 쌓아주는 부류들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차돌짬뽕은 다른 짬뽕들에 비해 강렬한 설득력을 지닌다. 베이스가 되는 스프가 영화식품 짬뽕다시라는 점은 fait accompli인 가운데 결국 무엇을 얹느냐의 싸움에서, 웍에서 소기름으로 야채에 절묘한 풍미를 얹고 다시 국물 위에 기름을 띄우면서 일종의 향미유를 더하게 되는 차돌짬뽕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차이점을 지닌다. 찌르는 신맛의 단무지로 지방을 닦더라도 곧바로 몰아칠만큼 부담스럽지만 개악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다 말라버린 조개들이나 체면치레 수준의 작은 새우에 비해 맛으로 자신의 논리를 가졌다는 점에서 다르다.

차돌짬뽕의 훌륭함을 인정하는 것은 나 뿐이 아니다. 일, 이년전부터 은근슬쩍 신라호텔에서도 '전복 한우 차돌박이 짬뽕'따위로 공인을 내줬는데, 어쨌거나 한국식 중식의 고급화가 가능한 거의 유일한 공간에서 채택되었다. 물론 여전히 게다리에 새우 대가리까지 띄워놓은 모습은 국물 요리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이 들지만-여러분은 게 껍데기가 둥둥 떠다니는 비스크 스프를 보신 적이 있는가? 불도장 먹으면서 노루 힘줄 씹어 보셨는가? 우습다- 뭇 사람들의 허영과 일차원적인 소유욕을 적당히 충족시키면서도 맛에 있어 최소한의 합리성이 있는 신라호텔의 차돌짬뽕은 광동식을 표방하던 당 호텔의 중식당의 정통식! 짬뽕보다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차돌짬뽕은 신라호텔 수영장-그렇다. 한국 사람들은 짬뽕을 수영장에서 먹는다-에서보다 빌라와 구식 주택 가득한 골목에서, 생의 현장인 직장인 상권에서 빛난다. 천 원에서 이천 원 정도를 더 치르지만 1만 원이 되지 않는, 하지만 적게 후회하는 특식이다. 가끔은 지나치게 기름지고 싶고, 지나치게 짜고 맵고 싶은 날이 있을 때 차돌 짬뽕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차돌 짬뽕은 서울의 차슈멘, 뉴러우멘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차돌짬뽕은 완성된 형식은 아니고 이제서야 고작 가능태가 되었다고 본다. 소기름을 띄워 풍미를 보여줄 요량이라면 야채와 함께 볶아내는 것보다 극단적 방법들이 있을 것이며, 높아진 기름기에 걸맞는 야채의 조합 역시 고민해보아야 한다. 곁들이는 음식이 거의 탕수육 한가지라는 점 역시 고민이다. 신맛-단맛으로 짝이 썩 맞지만 탕수육 역시 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개별 웍을 하나 더 구비해야 하는 문제가 발목을 잡는 가운데 탕수육 소스 역시 개판으로 만드는 곳들이 갈수록 늘어간다. 과일통조림 국물과 케첩으로 나누던 시대에서 더 안좋아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궁극적으로 국물 요리인데 국물이 개선될 수 없다는 현재 중식 씬의 고질적 문제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것들을 넘어서야만 차돌 짬뽕은 진정한 새 시대의 음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가능성이라도 있는게 어디인가. 나는 다음 달에도 또 어딘가로 차를 달려 차돌짬뽕을 먹어치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