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H. - 르 코미디언

찰스 H. - 르 코미디언

전세계 포 시즌스의 식음료 매장에는 제마다 "시그니처" 메뉴가 있다. 가끔 없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있다. 런던 포 시즌스의 안느 소피 픽 셰프의 "흰 밀푀유"는 고전적인 디저트의 순수성에 대한 헌사로서 더할 나위 없고, 파리의 조지 5세 호텔의 대표 메뉴는 외국 귀빈들로부터 전래된 식문화에 파리의 전통적 풍미를 결합한 형태를 띄고 있다는 것을 보면 호스피탈리티에 대한 호텔 체인의 태도까지도 엿볼 수 있는게 세계 각국 포 시즌스 주방의 묘미이다.

"르 코미디언"은 서울의 시그니처 메뉴로 선정되었다. 과연 레스토랑의 조리사들은 불만을 가져야 할텐데, 그럴만한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찰스 H.를 대표하는 키스 모시의 작품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원작인 「Comedian」이라는 작품은 맛보기의 측면이 거의 없는 시각적인 작품이다. 비스듬하게 붙인 덕 테이프로 벽에 바나나를 고정한 형태인데, 정확하게는 이러한 덕 테이프의 길이 및 각도 등을 설명하고 있는 일종의 지침서가 작품이고, 벽에 붙은 바나나는 그에 따른 구현의 결과이다. 세계 여행을 주제로 한 칵테일을 내는 찰스 H.의 주방에서 키스 모시는 마이애미를 통해 이 바나나를 떠올렸다. 그렇다. 이것이 전시되었던 그 논란의 장소가 바로 마이애미였다.

현대 예술 시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각자 제나름의 정의를 이미 내려놓았겠지만, 나는 칵테일 한 잔에 앞서 그 난해함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자 한다:"벽에 붙은 바나나"를 두고 예술이라고 할때, 푸디들이 물신주의commodity fetishism적으로 음식을 숭배하며 예술적이라고 할 때 예술Art/Kunst은 무엇인가?

혹자의 경우, 우리가 흔히 예술적이라고 사용하는 표현에 앞질러 취미판단das Gescahmacksurteil이라는 표현을 쓰며, 그것은 전적으로 대상이 어떠했는지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주관적인 것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주창했다. 우리도 익숙할지 모르겠다. "맛은 주관적"이라고? 그렇다면 내가 느낀 맛이라는 그 느낌만이 예술이며, 남들은 떠들게 두어라. 그렇다면 맛은 예술이라고 볼 수도 있을까.
물론 이러한 견해를 현대에서 그대로 견지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예술로 취급되는 것들은 머릿속이 아닌 현실에서 존재하고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 않은가. 마음 속에서만 그 의의가 있는 것을 넘어 존재하고 또 영향까지도 나타난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일례로는 예술의 위치가 한 명의 마음 속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술의 위치가 주체와 관객 사이에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것이 나타나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표현하는 식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주객이 뒤섞이는 중첩적인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사건Ereiginis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 다른 경우로는 그것이 완전한 머릿속, 즉 "사유"의 측면만을 지니고 있는게 아니라 "삶"에도 해당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맛을 찾아다니면서 "이상적인 맛"따위의 가능성을 떠올리지만, 예술을 통해 밝혀지는 것은 "잠재된 맛의 존재"에 불과하다. 불가능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아니라, 반드시 가능하지만 단지 그 때와 장소 등의 문제일 수 있는 잠재를 찾는다는 점에서 예술은 현실의 연쇄적인 장면들과 끈끈하게 엮인다.

굳이굳이 개별적인 탐구자들의 논의의 방식과 그 타당성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만일 그렇게 해야한다면 나는 예술 이전의 또 다른 진리탐구, 과학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과제는 아니다. 하지만 짧은 글을 지나치는 동안 여러분에게 어떠한 경험이 되었길 바란다. "대체 그래서 그런 것들이, 내 삶, 혹은 이 세계, 또는 또 누군가에게 그리고 어딘가에서 무엇인가-혹은 무엇으로 인식되는가?" 우리는 이 질문을 곱씹고 즐기는데, 그러한 일들이 예술이라는 말뜻을 둘러싼 가장 전형적인 현상이다. 극단적이고 뻔한 표현을 빌려서, "무엇이 사실인가"와 "그래서 어쩌라고""quid facti", "quid juris" 사이의 일이라고 하겠다.

칵테일에 띄운 바나나 하나를 두고 별 오만 잡념을 늘어놓았는데, 사실 바나나는 이렇게 떠있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 본래 덕테이프를 별도로 주문해서 정밀하게 붙이는 작업까지가 이 레시피에 포함되어 있는데, 모종의 이유로 테이프 생산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마저 우리는 앞선 질문들과 연결하면 재밌게 받아들일 수 있다. 테이프는 존재하고 있지 않지만, 테이프를 붙이는 방법과 그 이유는 여전히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지 않겠나! 물론, 호스피탈리티 산업의 측면에서 이것은 실험이라기보다는 실수, 실패에 더욱 어울리는 장면으로 보인다.

이 칵테일 한 잔은 키스 모시가 "마이애미"를 머릿 속에서 떠올린 과정을 담았다고 보인다. 미국을 떠올리는 방식, 즉 맨해튼-뻣뻣한 새 나무통이 떠오르는 미국 위스키와 들큰한 팔레트- 위에 비터를 연상케 하는 강렬한 연기와 쓴맛 등의 노트가 균형을 잡는다. 단맛-쓴맛-향 모두가 크기가 큰, 꽉 찬 음료로서 마치 술과 담배를 곁들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바나나부터 이어진 복잡한 생각들과 이어지는 대신, 밤의 음식으로서 사람의 전원을 종료하는 의식이 되어준다. 이미 주변을 메운 사람들은 반쯤 사람이 아닌 듯 하다; 훌륭하게도 오랫동안 만족스럽게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는-얼음의 질은 이런 이유로 중요하다- 칵테일은 인식 없이 죽음을 맞도록 돕는다.

"코메디언"이라는 이름이 보여주듯이, 이 칵테일은 "진지한 놀이"의 동반자가 되어주지는 않는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부터 마이애미까지 흘러들어온 논쟁은 풍성한 단맛에 닦이는데, 찰스 H. 베이커가 말하듯이 "그림자를 드리우기보다는 삶에 광채를, 또 기쁨을 헌사하는; 그리고 예술, 음악, 글들과 통상적인 지적인 대화를 독려하는" 경험을 부여하고자 노력한 흔적은 돋보이지만 종합적인 경험, 즉 공간과 시간, 거기에 더해진 사물과 사람들을 결합했을 때 레시피를 떠올렸을 때에 비해 재미는 충실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전체적인 인력이 심각하게 모자란 것은 현실적인 이유를 감안해야겠지만, 그보다도 치명적인건 서비스 매뉴얼이 무너지고 있다는 데 있다. 교육을 통해 기계적인 절차들을 모방시키고 있지만 포 시즌스 호텔의 공기에서도 호스피탈리티의 본질은 점점 찾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는건 바로 이곳의 매우 중요한 고객들의 인품이 되겠다. COVID-19의 감염 확산으로 인해 선데이 브런치도 취소당한 입장에서 크게 나무라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그 이후에 나아지기는 커녕 더 나빠질 가능성이 보이기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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