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ol Ila, 1969 GM Conniseurs Choice, 12yo
12년 숙성 위스키라면 일반적으로 위스키 애호가들이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관심을 가지는 대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같은 12년 위스키라도 수십 년 전의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와인과 달리 병숙성이 되지 않는 위스키이기에 세월으로만 완성될 수 있는 맛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과거의 위스키는 분명히 현대에는 없는 맛을 느끼게 해준다.
정식 수입된 현행 쿨일라 12년을 집에 항상 두고 사는 사람으로서 쿨일라 12년은 내게 지루하지만 안전한 선택지라 할 수 있는데, 이 쿨일라는 이미 라벨로 오염된 두뇌의 편견까지 더해져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려낸다.
톱 노트부터 굉장히 살집이 오른 듯, 알코올을 압도하는 에테르의 오일 느낌이 아일라 특유의 피트향과 겹친다. 그야말로 훈제라는 느낌. 이탄에서 짚이나 잘 익은 곡식까지 스펙트럼을 펼치고, 팔레트에서는 담뱃잎 같은 향과 몰트 위스키 특유의 고소함. 오늘날 40%의 위스키에서 볼 수 없는 집중도가 그려진다.
하지만 이 '진한 12년'은 단순히 저숙성에서 고숙성 위스키의 느낌이 난다는 방향은 아니다. 고숙성 쿨일라가 가진 눈에 띄는 나무 느낌과 시트러스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60년대의 고숙성이었을 1940년대 이전 원액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라 나름 확신한다.
결국 이러한 올드 보틀이 줄 수 있는 경험은 무엇인가? 좋았던 옛 시절?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같은 12년 숙성 원액이 더 많은 것을 보여주던 시대가 분명히 있기는 했겠지만,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그 시대의 12년이 오늘날의 12년과 같은 대가와 교환되지 않는 상황에서 '요새의 12년은 구리다'고 폄하할 것이 아니다. 1969년 서울에서는 쿨일라가 아니라 싱글 몰트 위스키 자체를 접할 수 있는 사람도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을 텐데, 우리에게 좋은 옛 시절 따위가 있겠는가. 이 위스키 한 병이 줄 수 있는 교훈이라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만큼 연약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쿨일라의 맛이 변한 것이 무엇 때문이라고는 하기 어려울 것이다. 몰트 품종 변화로 인한 프로필의 변화, 기후 변화로 인한 창고 컨디션, 위스키 수요의 증가로 인한 비즈니스적 변화, 관리인원의 세대교체 등. 어느 이유든 이런 맛의 위스키는 세상에서 계속 줄어들고만 있다. 그것이 그 가치를 다르게 보아야 할 이유가 되지 않지만, 보통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지금 맛보고 기억할 것인가?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