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옥 - 순대 2021

청와옥 - 순대 2021

순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서울 댓 곳에 자리하고 있는 「청와옥」에 몰려드는 인파와 함께하며 여러 생각을 했다. 단언코 서울의 대중이 주목하고 있는 음식이라 할 수 있는 인파였다. 점심 때와 저녁 때 가리지 않고 붐빈다.

근본적으로는 이른바 한정식이라는 말로 축약되는 이미지의 얕은 뿌리에 기대고 있다. 기왓장을 본뜬 이름부터 놋식기 등은 도시의 일상과 반대되는 무언가를 제시한다. 매장 곳곳에 어필하고 있는 음식에 대한 소개문구들은 이 국물 요리에 대한 도시인들의 선입견을 자극한다.

순대와 순대국이라는 음식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1인용 솥으로 옮겨간 밥은 국물에 말아먹기 알맞은, 전분이 지나치게 끈적이지 않는 상태로 일견 기존 대중음식이 가지고 있는 약점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듯 보인다. 적어도 박정희 시대에 정한 스테인리스 밥공기와 온장고보다는 적절하지만, 결국 이제는 새 표준으로 자리잡은 "따로국밥"의 문제를 답습한다. 식탁에 다다라서야 조립되는 밥과 스프의 가락은 쉽게 합일이라는 결과로 일어나지 않는다. 입에 댈 수 없는 온도로 제공되는 국물의 온도는 한 술 더 거든다. 미각의 마비, 통각에 의존하는 나쁜 문법이 잔존한다. 온통 붉은 색 위주의 찬 구성은 이를 대변한다.

이러한 지점들만 짚자면 서울에서는 내 의사와 무관하게 이런 음식이 인기를 얻고 시대정신이 되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므로 심드렁하겠지만 이곳의 인기를 뒷받침하는 순대와 국물에 대해서는 고민이 깊었다. 한식의 나쁜 버릇에 대해, 미각의 보편적 특성에 대한 이해가 거부되는 일은 지나가더라도 이곳이 제시하는 동시대적 가치, 매장에서 직접 우린다는 육수와 직접 제작했다는 순대가 제시하는 비전에 대해서는 더 큰 우려가 있다.

한식의 국물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본래 머리나 내장 등 잡부위의 풍미가 핵심이 되는 순대국밥은 그 본래의 풍미를 더욱 자극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다. 더욱 착잡한 쪽은 순대이다. 분쇄한 속, "패티"에 해당하는 부분이 입자가 굵은 것이 섞여 최소한의 순대스러움을 보여주고 있으나 풍미로 만족스러운 순대라고는 할 수 없다. 부댕 누아부터 소시지, 순대까지 이런 요리들의 핵심은 요약하자면 부산물의 반란이다. 살코기가 나오지 않는 잡부위와 뼈, 내장, 피와 같은 것들의 고귀한 맛을 소화해내는 방식인데 서울의 순대는 그 풍미로부터 계속 뒷걸음질만을 반복하고 있다. 이곳의 잘못도, "공장"의 잘못도 아니다. 분쇄기를 사용하지 않고 사람이 다진다면 입자가 불규칙해져 식감에 재미 정도는 좀 더할 수 있을지 몰라도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며, 충진기를 이용한 케이싱 풍미와는 무관하다. 유럽의 순대들도 충진기로 채우기는 매한가지다. 문제는 순대의 속에 침투하고 있는 무미의 탄수화물들에 있다. 편백찜에 제공되는 떡을 박아넣은 순대는 그것을 더 나쁜 형태로 확대재생산하고 있었다. 당면순대, 찹쌀순대에 이어서 이제는 떡 순대인가. 하나같이 같은 가락이다. 이제 도시인들에게 돼지의 풍미는 맛(flavor)이 아닌가. 그렇기에 맛이 없는(tasteless) 탄수화물들이 자꾸 들이민다. 당면 뿐인 납작만두와 같은 가락으로 이제는 피와 뼈로부터 낯섦을 느끼는 도시인들의 두려움에 음식이 후퇴한다.

시골의, 과거의 맛이 무조건 우등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로지 생존의 맥락 하에서 기르고 도축된 돼지의 질 나쁜 맛까지 계승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도시가 제안하는 맛의 방향은 거짓말로라도 옳다, 아름답다고 말하기 어렵다. 치즈야 타락죽 정도를 제외하면 유제품에 무관했던 우리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샤퀴테리에 대해 쏟아지는 관심과 찬사의 반대편에는 이렇게 샤퀴테리의 본질을 모독하는 순대가 계속 세를 불리고 있는 현실이 있다. 반복하여 말하건대 이곳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겪은 나는 슬픔을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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