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es du Roy, Brut NV

Charles du Roy, Brut NV

간만에 와인 이야기를 해보자. 감염병으로 사회적 활동의 감소는 와인 시장에도 단기적으로 여러가지 양상을 불러왔다. 우울감으로 폭음하는 이들도 늘었고 반대로 관계의 윤활유로 쓰이는 소비는 사라졌다. 그러나 확진자 수가 다시 늘어나는 일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제 서구에서는 다시 바깥세상이 열리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여기는 대한민국. 여러모로 다르다. 나는 여전히 감염될 위험이 부르는 손실이 위험을 즐기는 이익보다 압도적으로 큰 사람이어서 한동안 바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으레 집에서 음식에 샴페인을 곁들이지는 않으므로 발포성 와인과는 인연이 멀어졌다.

그러다 여느 날 이마트가 아닌 곳에서 저가 샴페인을 발견했다. 3만 얼마던가. 이마트의 저가 샴페인이야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았으므로 흥미도 줄었지만 그 바람이 확산하다니. 눈에 띄는 물건이었다. 여러모로 복잡한 감정이 들어 맛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이 글도 그 필연의 연장선일까.

"찰스 드 로이"라고 정직하게 읽어버린 수입사의 상품명부터 기분이 복잡해진다. 찰스. 수출 전용품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G.H. Martel & Cie S.A.R.L.이 소유하고 있고, 이 기업의 소유주는 몇 종류의 비슷한 저가 샴페인을 만들고 있다. 그중에는 국순당 수입품도 있는데 그게 이쪽보다 시중에서 찾기는 쉽다.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의 블렌드지만 압도하는 것은 역시 피노 누아다. 보틀에는 피노 뫼니에르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표기하고 있으나 비율로서 느끼기는 쉽지 않다. 전반적으로 오래 숙성하려 만들지 않고, 팔레트에서 신맛이 지배한다. 탄산가스는 다소 점잖은 편. 뻔하다면 뻔하지만 반가운 빵 굽는 향부터 적당한 핵과 뉘앙스까지 전형적으로 갖출 것들은 적당하게 갖추어져 있다.

그렇다면 저렴한 가격에, 깜깜이지만 맛도 멀쩡하다. 다만 상황 자체는 찝찝하다. 그야말로 샴페인을 위한 샴페인이다. 샴페인이라는 말 속에 가진 고정관념만 뽑아서 최적화해 생산한 듯 하다. 놀라운 공산품. 아무튼 샴페인이면 돼, 식의 가치판단에 따르면 여러 번 손이 갈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샴페인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역시 아쉬움이 있다. 샴페인이라는 이름값의 비용이 차지하는 부분을 느낀다. 메소드 트레디시오넬과 지역 포도라는 틀은 우리에게 품질을 보장하는 듯 하지만 우리를 가두는 올가미이기도 하며, 샴페인이라는 이름의 이미지는 욕망으로 얼룩지고 돈의 반사광에 눈이 멀 것처럼 번쩍인다. 와인 시장, 넘어서 식음료 제품이 안 그런 부분이 어딨겠냐만은 샴페인은 확연히 LVMH의 덕을 보면서 또 그들에게 비용을 치르는 맛이다. "남자는 술 여자는 향수"라는 전략 아래 LVMH는 크룩부터 순서로 돔 페리뇽과 루이나르, 모에 에 샹동과 뵈브 끌리꼬로 이어지는 돈의 탑은 샴페인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거머쥐고 있다. 그 반대편에 제이 지의 아르망 드 브리냑을 위시로 한 경쟁작들이 이러한 구조의 응고에 기여한다.

LVMH의 영리한 전략 덕에 "크룩"의 왕좌는 나날이 높아만 가는 가운데, 우리는 그 아래에서 그들이 쌓은 탑의 그림자에서 더위를 식힐 수 있다. COVID-19로 면세점도 클럽도 박살이 나서 이제는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만 그간 특급 샴페인을 생각보다 괜찮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데에 나는 레이버들의 덕을 많이 보았다 믿는다. 오로지 화폐 단위로만 유통되는 돔 P들은 샴페인 시장의 진정한 주인공이고, 그를 마시는 이들이 진정한 VIP들이다. 왜 샴페인이어야만 하는지의 이유도 이쪽에 있다.

어쨌거나 샴페인의 맛만은 틀리지 않다. 이런 구조에 적당히 빌붙어서 혜택만 누리고 살아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역시 기분의 찝찝함은 남는다. 이미 샴페인에 충분히 젖어버렸을까, 프로세코니 크레망이니 집에서는 손이 가지 않는 게 사실이고 가격 메리트가 많은 경우도 적다. 입은 기억을 먹고 사니 어쩔 수 없이 순응한다. 애초에 다른 선택지라고 나오는 것마저 그냥 유럽 옆동네들 아닌가. 하지만 찝찝함에도 나름의 근거가 있다. 이 와인의 경우 병목의 근거 없는 백합 문양이다. 카페 가문에서 유래된 푸른 바탕의 백합. 대체 이 스러져버린 왕실의 흔적이 아시아 태평양 수출용 샴페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적당히 왕 어쩌고라는 뜻을 가진 이름 "드 로이"가 되버렸지만 본래는 "뒤 루아"로 왕의~에 가까운 뜻이다. 컨셉트에 발맞춰 어색한 왕실 무늬를 빌려왔겠지만 철저히 민주주의 사회의 평등시민들이 만든 물건이고 이런 왕에게부터 훔쳐온 장식들은 그냥 프랑스 느낌을 더하기 위한 것이다. 맛에 기생하는 값으로 머리를 좀 비워야 한다는 점이 뒤끝에 남는다. 사먹는 사람이 최소한 프랑스에 별 관심이 없을 거라는 걸 짐작하고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