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H. - 더 비숍

찰스 H. - 더 비숍

and we will discuss your affairs this very afternoon, over a Christmas bowl of smoking bishop, Bob!

  • Dickens, C. (2017). A Christmas carol. UK: Penguin Books.

이 날의 마지막 한 잔 역시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리라 다짐한 "비숍"이었다. 지난 글에서 베이커의 기록을 레퍼런싱하는 단 두 잔 중 나머지 하나를 남겨둔 테다. 사실 이 칵테일은 더 서프 클럽과는 제법과 접근에 있어서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나는 원작자의 의도를 조금 듣고 싶었다. 그러나 이 날 바는 방역을 생각하면 당분간 이 요일, 이 시간에는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게 만들만큼 북적였고 쉴새없이 지나가는 "플라이트"들 사이에서 나는 방황했다. 이내 나는 입에 마스크를 다시 채워야 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큰 호텔에는 큰 고객이 우선인 법이 아닌가. 특히나 독자를 위한 식사에는 언제나 경험의 복제 가능성을 고려하여 개인을 최대한 지우는데 신경쓰므로, 시끌벅적한 바에서 좋은 대우를 받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부적절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음료가 있고 우리는 요리 앞에 앉았다. 원할 경우 뚜껑을 덮고 사진을 위한 여유를 제공하는 이 한 잔의 첫 인상이 어때 보이시는가, 비숍이라는 칵테일은 서적을 뒤져보면 본래 영국의 명절 음료라고 한다. 뱅 쇼, 글뤼바인의 영국 버전이라고 하면 그다지 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크리스마스, 혹은 우리 민족의 설날, 연말의 회한과 따스한 가족애라던지 그런 것들이 보이시는가? 그럴 리 없다. 커다란 얼음 사이에서 탄생한 한 잔에 그런게 보인다면 크나큰 착각이다.

그럼에도 "비숍"에서 그것이 보인다면 완전한 환상은 아니다. 이 칵테일은 원래 멀드 와인Mulled wine내지 토디Toddy의 일종은 맞다. 와인을 뜨끈하게 데워 계피니 정향이니 향신료를 담뿍 넣고 달큰하게 마신다. 추위를 잊게 해주는 이 명절 음료는 마시고 속과 함께 마음 속 깊은 곳이 뜨끈해진다면 성공이다. 나는 앞서 인용했듯이, 이 칵테일을 베이커 씨에 앞서 다른 찰스인 디킨스에게 배웠다. 개과천선한 스크루지가 권하는 화해의 한 잔. 디킨스의 명작의 종지부에 해피 엔딩의 대단원을 상징하는 음료다. 그러나 광산업자의 유산을 상속받은 미국 찰스는 이런 서민적인 따스함과는 거리가 좀 있는 사람이었고, 그는 이 한 잔을 미식가의 사치품으로 재탄생시킨 모습을 보고 감격한 나머지 받아적었던 듯 하다-그가 이 칵테일을 가장 훌륭한 토디라고 기록한 때는 무려 여름이었다.

원래 디킨스가 기록하는 이 칵테일의 19세기적 모습은 여러 군데에서 기록되듯이, 끓지 않을 정도로 달여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모습을 딴 이름이다. 그러나 베이커는 이 칵테일을 영국에서 한여름에 주문하는데, 단지 따뜻하기 때문에 마시는 음료라고 냈다면 핀잔이나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바텐더가 그에 권한 토디는 더 이상 근대적 가족애를 상징하는 만찬주가 아니라 지독한 미식가를 위한 독주였다. 꼬냑과 클로브에 절인 오렌지를 넣고 포트 와인을 끓인다. 그 향이 베었을까 싶으면 다시 그 위에 2지거의 꼬냑을 들이붓는다. 꼬냑을 뒤섞는지, 혹은 잔에 띄우는지는 언급되어있지 않다. 거기에 옵션으로 플람베를 더해 잔에서 연기가 피어오를 즈음이면 정말고 김이 아닌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게 된다. 알코올이 거의 없는 명절 음료가 꼬냑으로 뒤덮이니, 스크루지 영감이 더 이상 정령spirits과 놀아나지 않았다는 농담도 이제는 못할 것 같은 자본가의 비숍 완성.

이토록 찰스 H. 베이커 주니어의 비숍은 도발적이면서도 치명적으로 매혹적이다. 포트에 꼬냑으로 입안 가득 풍미를 머금고 즐기면서도 알코올은 놓치지 않겠다니, 얼마나 미국적인가!

「찰스 H.」에서는 이 칵테일을 다시 차갑게 냄으로서 베이커의 위트에 위트를 더했다. 굳이 옛 문헌을 찾아보면 이미 19세기 (개신교도) 비숍이라는 이름으로 럼에 보르도 레드를 더한 형태로 이러한 변주는 있어왔으니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도 하겠다. 그러나 맥락을 살펴보면 아무리 봐도 전위적이다! 알면서도 비틀다니, 그 이름을 "스모킹"으로 하지 않으면서도 잔을 가득 매운 연기를 보면 그 재치에 웃음을 감추기 어려운 것이다.

꼬냑에 절인 오렌지를 큐라소와 비터스로 내서 시트러스 계열의 풍미를 감추듯 두른 가운데 차가움에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꼬냑의 단맛, 그리고 묵직한 알코올의 공격력이 그야말로 베이커의 비숍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 무더운 날씨에 굳이 이런 칵테일을 마시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걸 원했을 테지. 잘 녹지 않는 얼음이 조금은 녹을 만큼의 여유가 필요했다.

이 칵테일은 영국, 런던 섹션에 위치하고 있는데, 참으로 미국적인 맛이다. 포트 와인과 꼬냑은 런던의 번화가를 번뜩 떠올리게 하지만서도 제법에 있어서만큼은 찰스 베이커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어, 그에게 묶여서 궁중 요리법마냥 고조리서를 재현하는 대신 21세기 무더위에 걸맞는 한 잔을 만들어낸 덕이다. 차디찬 독주 위에 그려지는 도회지의 -디킨스의 소설에서는 주로 비극이 일어나는- 분위기는 어둑어둑한 바에서 서울 도심만큼이나 시끄러운 바에서는 더욱 또렷하게 떠오른다.
감상에 젖은 글은 슬슬 접어두고 풍미에 대해 마저 마무리하자면, 생각건대 스모크가 시선을 사로잡고 맥락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체적인 그림을 아우를 수 있었다면 완벽하다고도 할 수 있는 한 잔이었다. 탑 노트로 쓰기에 연기의 쓴 감각은 팔레트로 완전히 연결되지 못했다. 이미 칵테일에서 연기는 흔히 쓰이는 재료 중 하나이고, 피트 위스키나 압생트 등 향과 맛(flavor-taste)에서 연결점을 가지는 재료로 맥락을 이어줄 수 있지 않지 않은가? 알렉스 데이의 "Smoke & Mirrors"가 압생트와 라프로익을 이어서 "스모크"를 연출했고 바 아메리칸의 바텐더는 여기에 위트를 더해 액체를 연기에 재워내는 재치를 부린 바 있다. 굳이 이런 예시를 들지 않아도 나는 주방에 충분히 이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으리라 짐작하는데, 그 부재에 다른 이유가 있나? 짚이는 것이 없는 가운데 기계는 끊임없이 빌지를 뱉고 화장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누군가에게 길을 터주어야 함을 느꼈을 때 나는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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