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라멘 - 닭의 애석함

초 라멘 - 닭의 애석함

파이탄, 백탕의 인기가 그칠 줄 모른다. 새로이 생긴 곳이라고 소식을 들을 즘이면 열에 예닐곱은 이 백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나머지는 마제소바다). 이는 전적으로 일본의 유행 탓이다. 2012~13년 급작스래 파이탄은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 2015년 즈음부터는 일본 전역, 특히 도쿄라면 어디에서나 곧잘 찾아볼 수 있는 물건이 되었다. 이 백탕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그래서 조금 지난 사진을 꺼내왔다.

기본적으로 파이탄의 뿌리는 역시 또 중국요리라고 할 수 밖에 없으나, 중간 한 단계를 거친다. 미즈타키水炊き라 불리는 요리를 주목해야 한다. 물에 끓여 익힌다는 이름을 보면 단순하게도 전골에 가까운 요리이나, 백 년 단위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나름의 매력 포인트들을 갖췄다. 우리가 잘 아는 전골의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육수에 야채와 고기를 삶고 야채를 건져 먹은 뒤 고기를 먹고 남은 국물에 면이나 말아먹는 멜로디이다. 그러나 맹물로 시작해서 이름에 물이 들어감에도 이제는 업장의 육수가 비법으로 남는다. 유명 만화인 <맛의 달인>의 가장 첫 권에서부터 이 미즈타키에 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닭이 맛없으니 옛 맛이 나지 않는다며, 지역의 토종닭地鶏중에서도 고루한 방식으로 기른 닭으로 국물을 냈더니 옛 맛이 나더라 하는 이야기. 그만큼 이 요리의 육수는 중요한데, 유명 노점에서 종종 발견되는 것이 센불에 뼈를 오래 우려 내는 백탕이었던 것이다. 토리야사鳥彌三같은 곳의 국물 사진을 찾아보면 이해가 쉬우리라.

그럼 백탕이 그런 요리라 치자, 왜 인기를 얻었는가? 이 부분이 사실 부질없는 맥락 찾기보다 훨씬 중요하다. 기본적으로는 뼈를 먹는 데서 확실한 강점이 있다. 맑은 계열의 국물이 살코기의 단백이나 껍질이나 지방층의 지방이 맛의 몸통(body)이 되어준다면, 고온에서 뼈를 우릴 경우 젤라틴이 가세한다. 기왕이면 고온일수록 이러한 효과는 극대화된다. 서양 연구에서는 99도, 일본 연구에서는 약 100도로 거의 비슷한 가이드를 제시한다. 끓이는 시간도 서너 시간정도는 너끈히 되어주어야 만족스러운 점성을 얻는다. 이러한 점성은 사실상 국물의 감칠맛의 농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다른 음식을 먹는 듯한 경험을 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백탕 자체로는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며, 그 자체만으로 완성될만한 파괴력은 없다. 우리는 설렁탕이라는 뻔한 요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뼈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온도에서 무언가 내놓는 물건이 아니므로 요리사의 손길이 필연적인 재료이다. 예컨대 나는 거기에 뼈를 오븐에서 바싹 구워낸 서구의 맛을 좋아한다. 소의 뼈와 같이 두꺼운 물건은 섭씨 220도 이상의 고온에서 뽑아낼 맛의 힘이 있다. 국물 요리가 양을 늘리기 위해서라는 차원을 뛰어넘는 대표적인 순간이다. 돼지뼈에게도 통하는 이야기이며, 닭뼈는 두께가 많이 다르고 연골의 비율 등을 고려해야겠으나 닭뼈 또한 고온에서 마이야르 반응을 이끌어낼 경우 결과는 나아진다. 거기에 뼈를 정형한 토리가라가 아닌 살코기가 붙은 통닭을 쓴다면 그 필요성은 절실함의 단계로 올라선다. 그 자체로 지방의 풍미가 모자란 하림의 코브, 그것도 1kg 남짓으로 키운 놈들이라면 날상태의 풍미가 영 아니므로 마이야르와 같은 화학반응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초 라멘의 파이탄은 나에게 큰 고민을 안겨주었다. 요리의 면면을 살펴보면 과연 감히 속이고자 하는 부분은 많지 않다. 충분한 젤라틴에 더불어 국물에 지방이 썩 있는 가운데 국물의 무게감이 좋다. 그러나 음식으로서의 구성에서 열정의 흔적은 보이지만 방향키가 가리키는 곳에 대한 의문이 있다. 매운 맛의 조미유를 더해준 "카라 파이탄"이었는데, 신라면이라는 기준을 제시할 때 나는 그 기준의 아래로 향했다. 그 이상으로는 자극이 감각을 가린다. 한껏 쌓은 녹색 채소부터 토마토, 적당히 잘 만든 차슈에 이르기까지 토핑의 맛이 난반사한다. 그러나 완성된 국물 위의 변주가 아닌, 국물의 빈 칸을 채우기 위한 장치들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물의 힘이 모자라기 때문에 토핑에 기대게 된다. 그러나 날 것에 가까운 채소는 경험을 채우기에는 미약하다. 검게 물이 아름다게 든 차슈와 맟추면 모자란 풍미를 훌륭히 메워주지만 반대로 수비드로 낸 닭가슴살과 같은 구성은 과연 유행이나 인스타그램 이외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 오히려 마이너스에 가깝다.
이러한 시도들은 결국 요리의 심장부인 국물의 아쉬움을 메우고자 한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균형이 좋다고 했음에도 완벽으로 평가하지 못하는 이유는 쉬운 탓을 하자면 재료 때문이다. 산란율과 육계의 성장 속도가 핵심인 품종의 문제도 있겠지만 사육 방식부터 한국인이 즐기는 취식의 방식까지 닭 자체의 풍미는 버려졌으므로 그걸 끓여내어도 딸려오는 향이나 풍미라고 부를 것이 적다. 껍질 쪽의 지방이나 돼지 뼈와 같은 다른 물건의 도움을 받았을지는 몰라도(바 형식으로 되어있기는 하나 육수 냄비가 보이는 위치는 아니었다) 닭의 맛이라고는 크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 결과 지방이나 젤라틴, 그리고 그걸 즐길 수 있는 온도나 면의 삶기 등에 있어 모든 값이 알맞음에도 곤혹스러운 공백이 발생한다.

이러한 요리가 차라리 무신경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글을 쓸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아렸다. 요리하는 이는 너무나도 열심이었다. 백화점처럼 차린 토핑 속에서는 고민의 흔적이 묻어난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해결이 되지 않기도 하지만 방울 토마토는 토마토의 역할을 하기에는 감칠맛이 모자라 아이디어에 그치고 닭가슴살은 빈칸의 경험을 확장하는 자충수다. 돼지고기와 다른 측면을 연출하고자 하는 의도는 이해할 수 있으나 여러모로 현재의 국물 상태를 보면 기름지고 짠 물건이 낫다. 개별적 요소들 자체로서 나쁜 것은 없다. 토마토가 물러버렸거나 채소들의 보관 상태의 문제도 없고, 달걀이나 차슈는 훌륭하게 완성되었으며 앞서 미운 소리를 한 닭가슴살도 수비드라는 조리 자체의 에러는 없다. 여러모로 사람이 묻어나는 요리라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이쯤 되면 반드시 토리-파이탄이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마저 생긴다. 애초에 파이탄이라는 구성이 이러한 요리사의 노력의 빛을 바라게 만드는 족쇄는 아닐까. 글의 맨 앞에서 밝혔듯이 파이탄 유행은 일본에서도 그다지 오래된 것이 아니고(요새 유행은 빨리 변하므로 이것도 오래되 보이기는 한다), 일본 관광청이 반 쯤은 밀어준 지방 요리나 재료 타령과 호흡을 맞춰 발전한 요리이다. 품종의 우열을 떠나서 합리적인 가격에 관리가 잘 되고, 충분히 자라서 맛을 내기 좋은 닭을 구할 수 있기에 자연스레 닭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런 라멘이 성업할 환경이 되고, 업소용 백탕 육수까지 구할 수 있으므로 대중화는 쉽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닭은 튀김 껍질과 양념의 재료에 가까운 현실이 필연적인 한계를 낳는다. 저렴한 가격(KRW 7500)을 생각하면 최선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속근fast twitch muscle인 닭가슴살은 들이는 노고를 생각하면 계륵의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긍정적인 측면을 보자면 구성요소에 대해 대충 넘어가는 일은 없으므로 다소간 요리에 헌신하는 자세만큼은 모자라지 않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데, 기왕에 더 나은 요리를 욕심을 부려볼 이유가 있다고 느낀다. 식사를 마치고 근방의 풍경을 둘러보자면 가히 지옥도같은 느낌이 들기에 대학가의 아웃라이어라는 지금 상태도 좋다고 할 수 있지만, 요리의 면모는 여러모로 그 이상을 생각하게 만든다. 지나친 짐을 지우는 것 같지만 주방에서도 욕심이 있다고 느껴지는 한 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