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 - 카레

카레 - 카레

일상으로 돌아가보자. 성북동의 "카레"에서 화이트 치킨 카레를 먹었다. 먹고 나니 곧 단종이라고? 그럴 수가. 그러나 이 카레의 맛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다. "한정 메뉴"따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공언했건만, 시금치 카레보다는 이 카레에 할 말이 많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울고 싶은데 따귀 맞은 격이었다. 카레라, 좋은 주제 아닌가. 과연 카레는 우리의 식문화에서 어떻게 자리잡고 있으며, 그 미래는 어떠한가. 그 이야기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요리가 이 화이트 치킨 카레였다. 우선 좋은 기회를 준 「카레」라는 가게에 대해서 짧게 얘기하자면 오픈 시간쯔음에 맞춰서 도착하면 기다리지 않고 식사할 수 있고, 아슬아슬하게 늦으면 조금은 기다려야 하는 곳이다. 다행히도 사실상 회원제에 준하는 수준과는 거리가 있어, 편하게 다닐 수 있다. 포장도 가능하니 경험의 복제는 가능하다. 하는 요리는 여러모로 일본 카레를 표방한다. 다름이 아니라 간판부터가 일본어이며, 아지다마고가 그러한 정체성을 굳힌다. 그렇다면 우리는 염두하고 맛볼 수 있다. 한국에서 일본 카레란 무엇인가.

양자, 아니 삼자간 구별이 가능한가부터 나는 묻는다. 확실하게도 남아시아 전반의 커리 문화와(이 사이에서도 엄청나게 다름은 주의하여야 하지만 이 글에서는 넘어가자) 일본 카레는 구분되는데, 일본의 카레는 남아시아가 아니고 영국의 S&B사의 캔 제품을 기원으로 시작한 요리이기 때문이다. 절단된 환경 속에서 자체적으로 발전한 셈이다. 좋지 않은 식량 사정이 감자를 통해 카레의 점도를 잡게 했고 가장 중요한 향신료의 배합은 일본인들의 입맛에 익숙하도록 바뀌었다. 향신료의 배합이 바뀌어서 매운맛이 죽은 걸까? 그렇다고는 하기 어렵다. 애초에 매콤한 자극이 있으니 향신(spice)이 아닌가. 생각건대 중요한 점은 점도를 잡는 루나 감자의 전분도 있지만, 지방과 당의 개입정도가 극적인 차이를 만든다고 본다. 대표적인 일본 카레인 S&B 골든 커리와 하우스 바몬드를 놓고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S&B는 오렌지, 파프리카, 카다멈, 월계수, 고추, 육두구, 계피, 펜넬, 팔각, 클로브, 타임, 세이지를 쓰고 하우스는 고수, 큐민, 펜넬, 후추, 고추, 계피, 육두구, 클로브, 생강을 쓴다. 향신료가 결코 단순하거나 적게 들어가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일본 카레를 특유의 맛으로 만드는 것은 식물성 유지 등 지방의 개입이다. 카레분과 유지의 비율에 따라 카레의 인상이 뒤바뀐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향신료의 배합 이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만, 고형분 카레 등등 인스턴트 제품으로 카레를 시작한 대부분의 일본인들에게는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상술한 일본 카레와 한국 카레는 구분이 가능한가? 명백히, 한국의 카레는 일본 카레의 짙은 영향 아래 제작되었다. "바몬드"같은 표기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의 카레의 기본값인 오뚜기 카레나 카레의 악몽으로 남은 군용 통조림과 같은 제품들은 일본의 기성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맛이 난다. 다들 핵심은 터메릭이라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통상 들어가는 야채까지 더해져 완성되는 단맛이 기억에 또렷하게 남는다. 애호박에 양파, 당근까지 들어간 카레는 뭉근히 끓이면 채수의 단맛이 진하니, 매콤한 향신료로 뭉친 카레인데도 우리가 짠맛+신맛의 김치를 찾는 게 자연스럽다. 일본 카레도 달고, 특히 바몬드같은 종류는 특출나게 달지만, 김치가 동원되는 대신 내면에 짠맛과 향신료의 인상을 더한다는 점에서 일본 카레와 한국 카레는 흐릿하게나마 분류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굳이 다르게까지 분류할 실익이 있을까? 그부분은 미결의 과제로 남아있다.

이러한 일본 카레와 한국 카레는 아직까지 한국인의 식문화에서 크게 구별되지도, 인식되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존재하고 있다. 기성 회사들이 설정한 맛의 기본값을 벗어나려는 시도도, 하다못해 이걸 응용하려는 시도도 전무한 수준이다. 일본을 모방한, 그나마도 완성된 음식에 끼얹는 수준에서 그친다. 그나마 일본 것은 외식업에서 성공의 길이라서 어찌저찌 모방된다. 드라이카레니 키마카레니 한국에서는 쓰이지 않는 외래어 명사들이 존재한다. 커리와의 만남? 전혀. 서울 도처에 히말라야 아래부터 메콩 강 등지까지 각지의 요리사들이 자신들의 커리를 재현해내지만 그 자체로 신기한 취급 정도나 받지 한국인의 식문화에는 명백히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 개선마저 되고 있지 않다. 각 분야별로 하나 쯤은 있지만 그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난 무한 리필과 탄두리 치킨 등의 지겨운 레퍼토리가 이어진다. 그래도 사랑스럽지만, 동네 식당에 머무를 뿐 문화로서 확장이나 발전은 아직은 요원해 보이고, 그 자체로 이국적이라는 점만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듯 하다(대표적으로 푸 팟 퐁).

이러한 배경에서, "카레"의 카레는 자못 주목할 만 하다. 일본식을 표방하지만 레토르트나 기성품을 표방하지 않는다. 물론 카레를 직접 쑨다고 하는 곳들은 있다. 그러나 중요한 지점은 맛의 값이 거기를 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등하지 못한 향신료를 열심히 쑤어서 레토르트랑 비슷한 맛을 낸다면 그것은 고생스러울 뿐이며, 모든 고생스러운 일들이 보상받지는 않는다. 카레의 화이트 치킨 카레는 또렷하게 달랐다. 터메릭이 없어서? 그것을 넘어서, 자신들이 쑤는 카레의 인상 자체를 다르게 설정했다. 이번 여름을 지낸 고수라서 그런지, 식사의 단가에 맞는 밋밋한 고수라는 점이 매우 아쉬웠으나(고수를 여기저기 찾아보고 다니지만 올해는 정말 편차가 심한 편이고 중간값은 별로인 편이다-참작을 바란다) 다른 것들의 인상이 화사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밝다. 매콤함이 풍성하다. 그 가운데 나는 이걸 일본 카레라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카레가 가벼웠기 때문이다. 가볍다는 점은 첫째로 카레의 농도가 가볍다. 이는 점도에 관련된 지점이다. 밥에 끈적하게 올라간다기 보다는 적셔지는 인상이 강하고, 따라서 전형적인 카레라이스보다는 남아시아 커리의 느낌을 준다. 둘째로 맛(taste)이 가볍다. 짠맛이나 단맛, 어느 쪽도 많지 않고, 오히려 둘 다 적은 편이다. 특히 바몬드로 대표되는 당분을 더한 단맛이나, 애호박이나 양파를 통해 내는 야채의 단맛도 아니었다. 단백질마저 스스로의 맛이 옅기로는 제일가는 닭의 흰살 부분을 쓰니 향신료 아래에 깔릴 맛(taste)이 많지 않았다. 보통 육수나 토마토, 아니면 쇠고기와 같은 재료들이 이부분을 채워서 자체로 매개체vehicle 위의 맛으로 작용하도록 두는데, 그부분이 비어있다 보니 당혹스럽다. 마지막으로 맛의 무게(body)가 가볍다. 지방이나 고형분이 관련된 지점이다. 산이나 설탕, 글리세롤 등에 더해 지방이 있는 액체는 그 자체로 마치 비단에 비견되듯이 우리 혀에 감겨 맛(flavor)을 전한다. 이게 지나치면 맛(taste)에 가려버려 누벨 퀴진 이전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모자라면 맛볼 새 없이 흘러버린다. 이러한 카레의 특질들은 참으로 이곳만의 요리라고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러한 경험을 카레의 흠결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 글쎄, 과연 그렇다고는 할 수 없겠다. 카레를 먹는 경험의 축은 향신료가 주는 다양한 자극, 그리고 그 자극이 기대는 밥의 맛이 쥐고 있었는데 이 둘은 만족스러웠다. 특히, 올바르게 지은 밥은 그 자체로도 기쁨이었다. 향신료의 향이 납작하게 죽은 카레들보다야 감사할 정도로 화사한 카레가 결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일상 속 카레의 진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이곳이 단지 향신료를 맛보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요리에 자부심을 가지고 운영하는 외식공간이라는 점을 감안했을때 이 카레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음식이었을까? 어묵이나 새우 튀김, 달걀 등등 카레의 완성 요소로서 토핑을 이용했던 시간을 감안하면 나는 이 카레는 미완성에 머물렀다고 본다. 잘 조려낸 달걀만으로는 이 요리에 충분한 균형을 만들 수 없었다. 터메릭이나 고추 등, 전형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향신료에서 벗어난 흰 커리에 도전했다는 점은 높이 사며, 서울의 대부분의 카레 외식 중에서는 경쟁군의 축에 들 곳도 없다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완성된 한 끼로서는? 이 도시의 많은 외식과 기꺼이 경쟁해야 한다. 아니, 스스로의 시금치 카레와부터 경쟁해야 할 것이다. 나를 비롯, 이 날 함께 식사한 이들 모두가 한정판에 홀려 이걸 먹었지만 곧 정신 차리고 돌아보면 마주하는 것은 현실이었다.

화이트 카레와 한 끼를 다행히도 즐겁게 끝낼 수 있는 데는 사과 주스의 역할도 지대했다. 충분히 달아서 음식에서는 모자란 맛(taste)의 감각을 적당히 메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 들어오는 객 포함, 내가 목격한 여느 사람도 이 사과 주스는 커녕 다른 음료도 주문하지 않았다. 음료는 식탁 위의 다른 차원의 요리다. 단 맛과 짠 맛의 세계가 있듯이 요리 세계에는 고체에 대비되는 유체의 차원이 있다. 예쁘게 나오는 물도 좋지만 음료 없는 커리의 경험은 내가 겪은 하루와는 자못 다를 수밖에 없다. 반드시 카레에 곁들이는 음료가 요거트나 차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액체 요리도 돈 받고 파는, 또 기꺼이 돈 내고 사는 문화의 영역에 들어오기를 언제까지나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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