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옷 - 로컬과 포장의 본질 재고

띠옷 - 로컬과 포장의 본질 재고

"제철 지역산물로 만든 로컬 디저트". 지역산물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점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로컬 디저트라는 말은 우리를 거슬리게 한다. 우리는 그런 가치체계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 지리적 표시제를 모방하는 시도야 있지만 설득력은 없다. 이를테면 보성이니 하동이니 차 산지로 유명하다고 자랑하는 곳들이 있지만 과연 진지하게 차상들의 관심을 받을 만한 차는 있는가? 있다면 그 수급이 안정적인가? 전설적인 맛이라고 해봤자 맛볼 수 없으니 무용지물이다. 내가 불운아라기보다는 분포의 문제라는 추측이 타당하다. 쌀은 다른가. 시금치는, 당근은 다른가? 전국 재배면적의 70% 전후가 제주도인 현실 속에서 당근의 맛은 단 한 종류가 아닌가.

이런 현실에서 "로컬 디저트"를 한다는 곳을 만났다. 모 진흥원 내지 무슨 소같은 곳에서 낸 보고서를 통해서 시작된 사업덕에 생긴 지역 농산물 브랜드는 전혀 믿지 않지만, 디저트로 소화해낸다는 아이디어에 주목했다. 짠맛의 세계와 단맛의 세계를 잇겠다니, 비록 서울에서는 실패를 더 많이-정확히는 거의 전부- 맛보고 있는 분야이기는 하나 나는 언제나 이런 도전을 응원하고 또 성공을 고대한다. 결과물만 좋다면 이 산업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이 곳의 요리를 두 가지로 이해했다. 앞서 짚은 지점. 스스로가 표방하고 있는 "로컬" 재료들이다. 과연 유가공품이나 밀가루까지 가까운 지역의 제품을 썼을까라는 데는 심대한 의문이 드는데, 로컬 푸드 운동이 운송에 따른 화석 연료 사용이나 품질 저하 등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주도는 그다지 설득력을 갖지 않는 곳이지만, 나는 그보다도 주목받지 않는 재료들을 주목한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대추나 당근 정도면 그래도 자리가 좀 있지만 가지라면 이야기할 거리가 한참 많아진다.

두 번째로는 포장 전문이라는 점을 나는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의 성격만이 있다면 크게 의식하지 않았을 것이나, 프로필의 문구에 더불어 매장은 좌석이 없이 쇼케이스만 덩그러니 놓여 전시관에 가까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마감재부터 조명까지 어두운 가운데 시선은 자연스레 냉장고로 향한다. 공간이 오토록 시각적 경험에만 종사하고 있다니, 그렇다면 포장도 하나의 주제라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케이크 두 개와 스콘 하나를 사는데 KRW 20000이 조금 넘는 비용을 지출했다. 그리고 나는 불안을 직감했는데, 주문과 동시에 직원이 뒷문을 두드리자 포장용기에 담긴 째로 내 케이크가 나왔기 때문이다. 찰나의 순간이라서 냉장고에서 꺼낸 나머지 하나는 어떻게 포장하는지 보지도 못했다. 작은 케이크의 포장이 이토록 빠르게 끝날 일인가? 즉시 포장이 불완전하리라는 의혹이 엄습했다. 근래의 기억은 아니지만 「껠끄쇼즈」같은 곳을 예시로 들어보면, 그곳의 디저트의 품질에 대해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포장의 절도를 볼 수 있다. 스페이서와 견고한 접착제로 마감하는데는 다소 기다림이 필요하지만 안심하고 들고갈 수 있다. 재활용기 가능할 듯한 색을 띈 포장용기, 그러나 지나치게 빠르게 완성되고, 형태에 있어 믿음직스럽지 않은.

나가버린 것은 초점만은 아니었다. 개봉하는 순간 이미 마지막에 치즈 그레이터에 긁어냈을 치즈와 가지는 용기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나는 차량을 이용해 운송했는데, 그간 「컨펙션즈 바이 포 시즌스」나 「쎄 쎄종」, 「디저티스트」같이 서울 각지에서 같은 방법으로 디저트를 집으로 운송해오며 이러한 문제를 겪어보지 못했다. 쎄 쎄종의 포장용기도 불안하게 생기긴 했지만, 무너진 형상을 마주한 것은 이곳에서의 일이 아닌가.

디저트의 크기에 비해 부피가 넉넉한 포장용기를 쓰면서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고 진단한다. 통상 파티세리들이 제품을 포장하는 방법을 떠올려보면 몇 종류가 들어갈 넉넉한 상자에 종이로 칸을 나누어 담는다. 이곳에서도 종이 봉투에 무언가를 넣어 그런 고민을 모사하지만 충격을 흡수하려면 바로 그 작은 용기 안에 들어가는게 맞다. 상자 안에서 케이크는 단지 바닥에 접착되어 있을 뿐이므로 째로 구워낸 게 아닌 조립을 마지막 공정으로 하여 완성된 제품은 이렇게 흔들림에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피에르 에르메」는 종이 스페이서를 쓰지 않아도 좋은 것들은 촘촘히 담는다. 무스같이 주변을 오염시킬 수 있는 것들은 OPP 케이크 띠라도 고려해볼 수 있다. 그의 밀푀유는 한 개를 구매하면 거의 꼭 맞는 상자에(이런 크기의 상자가 있다!) 담는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빅 맥을 떠올려보라. 층층이 쌓은 것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띠를 두르고 형태를 아우르는 포장으로 둘러야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이 결과물에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는 생산자-중심적 접근의 산물이라고 결론짓고자 한다. 미리 담고, 또 담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접착제로 붙이면 끝. 적은 인원으로 빠르게 많이 팔 것을 염두에 두면 옳은 판단이다.

이제 맛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아예 넘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서문에도 밝혔듯 나는 이런 시도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언젠가는 소비자가 알아줄 일이다. 말린 가지와 이탈리아 치즈를 뿌린 밀푀유는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가지가 겉돌지 않고, 잘 말린 가지는 훌륭한 가지나물을 떠올리게 한다. 요새는 이렇게 가지를 말린 것을 보기 어렵지만 여전히 동북식 중국요리집 밖에서는 난관에 부딪히고 있는 가지라는 재료에 대해 사람들은 다시금 고민할 수 있을지 모른다. 가지의 단맛은 살아남는다. 그러나 밀푀유라는 디저트라는 형태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한다. 일전에도 나는 밀푀유의 기준으로 프랑수아 시몽이 Le Figaro에서 기고했던 글을 언급한 바 있는데, 짙은 금빛으로 구워져 구운 밀가루의 향을 머금되 쓴 맛이 나지 않아야 한다(이는 과열의 흔적이다). 반죽이 흐트러지는 과정이 잊힐 정도로 크림이 과도해서는 안된다(이는 반죽이 아닌 액체 덩어리를 씹는 감각을 연출한다). 기본이 되는 디저트인만큼 평가 기준은 이렇게 명료하다.

과연 이 가지와 과자 층, 그리고 크림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첫 입에서 "가지라서 신기하다" "치즈 향이 나서 신기하다"가 지나가지만 크림과 반죽이 적절하게 배분되어 나타나는, 밀푀유의 가벼움에 대한 의견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가지와 치즈를 사용한 밀푀유가 아니라, 밀푀유 위에 올린 치즈랑 가지라고 하는게 맞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흔히 베리류의 과일을 잔뜩 옳린 밀푀유에서 과일을 바꾸고 납작하게 눌렀다는 데서 끝난다.

한 편에서는 피에르 에르메 따라잡기의 연장선에서 제과 클래스를 통해 몇몇 해외 유명 셰프의 맛을 모사하려는 시도들이 있다면 그 반대 편에는 이런 창작물이 있다. 로컬 디저트? 가지는 강원도부터 경남까지 전국에서 고르게 재배된다. 강원도에서는 노지재배가 더 많고 경기, 경남에서는 시설재배가 흔하다. 어디 가지인지는 중요하지도 않고, 제철에 맞는지도 의문이 남는다는 뜻이다. 하우스 재배 가지를 올린 밀푀유, 사실 가지 말고 로컬이라고 부를 만한 재료가 있기는 할까? 밀가루, 버터(국산품은 사양이다!)와 치즈까지 여권을 확인해보면 다들 도장이 주렁주렁 달렸을 텐데. 흔히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나온 파티셰들이 이런 시도를 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지극히 한국적인 DNA를 느낀다. 실제로 이 요리를 설계한 사람이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는 몰라도 나는 이것이 '한국인이 바라보는 해외의 파인 다이닝'을 담고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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