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방길 홍차가게 - 홍차, 테루아, 디저트

뚝방길 홍차가게 - 홍차, 테루아, 디저트

초콜릿에 대한 논쟁 중이었다. 논쟁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나는 더 이상 초콜릿이 테오브로민과 카페인밖에 없다고는, 아니, 그러한 이유마저도 논해지지 않는 상태로 두고 싶지 않았다. 그 때 그런 이야기가 스쳐 지나갔다. 카카오 농업은 언어가 안 통하는 곳에서 이루어지는데 어찌 잘 알 수가 있겠습니까.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럼 우리의 땅, 우리의 곁에 있는 건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뚝방길 홍차가게에서 간만에 차와 여유를 누렸다. 정파나 티 에스테이트의 익조틱 서머 무스카텔.

영국인들이 중국에 자생하는 차나무들을 벵골을 비롯한 인도 전역에 심기 시작했지만, 영국차는 제조의 방식에 있어 이제는 중국차와는 꽤 먼 길을 걸어왔다. 고도와 기후, 토양과 계절에 따른 변화를 섬세하게 담은 찻잎들은 서로가 감히 같은 식물이라고 부르기를 거부하는 수준이다.

정파나 티 에스테이트는 영국과 프랑스에 수출되어 유명세를 얻은, 대표적인 스페셜 티이다. 네슬레같은 회사가 일 년에 사입하는 물량만 해도 톤 단위를 넘어선다. 인도의 차 등급에서도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고 메리어트 호텔 체인에서도 세인트 레지스나 JW 메리어트의 라운지에서만 본 다원의 차를 쓰는 등, 기타 이력서에 달린 추천 문구들은 화려하다. 그러나 우리는 왜 이 홍차가 위대한지를 말해야 한다.

홍차 한 잔에 KRW 14000을 지불하지만 특별한 안내를 받지 않는다. 몇 도에 침출할 것인지, 다기는 어떤 것에 제공될 것인지. 일상이다. 그래도 홍차를 사랑하는 공간이므로 홍차는 알맞은 상태로 제공된다. 사실 잘 모르는 사람도 가이드를 따르면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 90도 미만, 85도 이상 온도에서 4분. 정파나 다원을 운영하는 케지리왈 가문에서도 자신들의 차를 오직 4분동안만 침출한다.(팔리네 마네 하는 소문이 있는데 현재 소유주는 그대로인 것으로 안다.) 느지막히 차에서 빠져나오는 쓴맛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나는 4분을 기다린다.

세컨드 플러시, 첫 잎을 따고 나서 오뉴월에 수확되는 홍차는 흔히 머스카텔이라는 이름이 붙는데, 이러한 머스카텔의 이름은 여름의 과일을 떠올리게 하는 달콤한 풍미를 뜻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무수히 나뉜다. 통상 좋은 무스카텔의 표준적인 기대는 뜨거운 여름을 지내고 맺은 복숭아나 청포도같은 과실의 주스같은 단맛과 향이지만, 고온의 기후의 영향을 더욱 직접적으로 밭은 것들은 주로 말린 과일이나 꿀과 같이 진한 단맛을 풍기기도 한다. 본 차의 경우는 전자에 가깝다.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향기는 차가 가진 고유의 감칠맛을 타고 전달된다.

이러한 차는 정파나 다원의 세컨드 플러시라면 모두 온전히 누릴 수 있을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데, 홍차의 유통 방식 때문이다. 커피도 그렇듯이 차를 만드는 쪽에서는 차를 만들 뿐이다. "익조틱 서머 무스카텔" 같은 이름은 중개상인이 붙인 이름이다. 이 경우에는 Navvayd다. 같은 정파나에서 나온 차라도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생산에도 사이클이 있는 이상 수확 시기가 크게 차이나지는 않겠지만, 사입하는 사람의 솜씨가 품질을 가를 수 있다. 이 차는 온전한 잎(Whole Leaf)이니 분쇄한 경우와도 또 다를 것이며, 수확 시기가 제공되지는 않았으나 통상 올해, 멀어도 작년이었을 테니 내년이나 아주 과거의 맛과는 또 다를 수 있다. 홍차 한 잔을 전하기가 이렇게 어렵다.

내리는 과정을 포함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다기의 림의 두께가 지나치게 두꺼울 경우 섬세한 무스카텔의 향이 퍼지기 전에 팔레트가 감각을 지배할 공산이 크다. 한 번에 딱 한 잔만 우리지 않는 이상 차를 즐기면서도 주전자 속에서 차는 계속 변화한다. 마지막 잔을 따를 즈음이면 쓴맛이 눈에 띄게 올라온다. 오늘 오후가 끝난 것이다. 첫 향의 아름다움은 덧없이 흐려진다. 그 틈새를 메우기 위해 우리는 티 푸드를 준비한다. 나를 망설이게 했던 티 푸드. 삼단 트레이는 자리가 없었다. 영국 여왕도 매일같이 그렇게 먹지는 않으니까. 나의 호기심과 우려를 동시에 자극한 건 "루시롱"이라 이름붙은 무스케이크같은 베린느였다. 무스카텔의 풍성한 향은 한껏 달콤하고 부드러운 크림을 탐하게 만든다. 스콘은 미래에 양보하자.

적당히 잘 만든 무스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 어디에서나 흔히 보지만 또 없으면 서운한 발로나 오팔리스의 단맛, 부스러지는 과자까지 홍차의 친구로 똑 떨어지게 알맞는 베린느였다. 그러나 하나의 사족이 있다면 무화과였다. 뭇사람의 요구로 올라왔을지 모르겠지만 아무 이유 없는 무화과였다. 무화과 특유의 향이 홍차와 잘 어울리는지? 그런 질문은 필요가 없었다. 향이 나지 않는 무화과였기 때문이다. 여느 해보다도 비가 쏟아지는 올해가 아니었는가. 안그래도 텅 빈 국산 무화과가 당신이 지금 무화과 철에 살고 있어요, 그럼 나도 습관적으로 무화과를 먹어야지. 마치 살기 위한 아침의 커피처럼, 대화가 없는 곳에 현대인들이 습관적으로 꺼내드는 스마트폰처럼, 관성이 자리해 있었다.

설탕 같은 데 졸였는지 겹치는 단맛만 더해진 무화과를 물고 날 때 쯤이니 해가 본격적으로 기울어졌다. 이대로 좋을까. 내가 지나치게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이대로 먹어도 좋은 걸까. 채광이 좋은 공간은 아니지만 홍차와 크렘 파티시에 덕에 내부는 참으로 밝아 보였다. 그러나 또렷한 그림자는 나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관성에 프리미엄을 지불해야 하는가. 커피를 내릴 때는 몇도에 내렸는지, 커피와 물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 당연하게 물어보고 당연히 말한다.(아닌가? 그럼 소비자가 물어보아야 한다.) 내리는 시간은 초단위의 차이에 진입했다. 홍차는 왜 그러지 못하는가. 그나마 <뚝방길 홍차가게>는 그러한 정보의 부재와는 별개로 좋은 홍차를 고르고 또 내므로 안심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러나 이런 곳이 있으면 몇 군데나 되는가. 누군가에게 이끌려 모르는 찻집에 가면 다시 지뢰찾기의 회색을 누르듯 눈을 질끈 감고 마셔보게 된다. 인도에서 한반도가 결코 인도에서 유럽의 거리보다 멀지 않음에도 한 번 거쳐오느라 항상 불만스러운 가격인 점은 이러한 나의 고민을 거든다. 세부적인 품종은 다를지라도 커피나 카카오, 바닐라나 통카 빈과 같은 것들과는 경우가 다른데,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이 땅에서도 차나무가 자라고 있고 녹차원이나 동서같은 대기업이 만드는 현미녹차의 맛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현미녹차와 옆나라의 겐마이차玄米茶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으며, 애초에 왜 녹차를 현미랑 섞고 있는지에 대해 묻기도 어렵다. 곡차를 블렌딩하는게 나쁘므로 하지 말자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유가 있어야 한다. 우리 차의 맛에 대해서 우리는 이야기하고 있는가. 우리 차에도 관심이 없는데 외국 차에 대한 이야기가 잘 될 턱이 있나. 외국 차에 대한 우리의 환경은 그나마 외국에 기대어 만들어져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수동적이어야 하는가. 정파나의 세컨드 플러시는 SFTGFOP 등급이라고? 우리는 차를 평가할 가장 기초적인 표준도 없다. 애초에 이런 발효차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있는가. 500%의 관세 장벽으로 둘러싼 한국 녹차가 존재할 뿐 국산 홍차는 아에 있지도 않다. 그 국산 녹차마저도 "구수한 차"의 위세에 밀려 현미랑 뒤섞이고 있는게 현실 아닌가. 그럼 차 생산자들이 잘 먹고 잘살게 되었는가? 젊은 차 생산자는 없다. 누구를 위한 현실인가. 불만이 조금 서린 디저트에 차 한 잔, 2만원을 투자하세요. 누구에게 이런 걸 권할 수 있을까. 나는 2만원이 아깝지 않으면 남에게도 그럴까. 아니, 나는 내년에도 정파나의 무스카텔을 지금처럼 마실 수 있을까. 차 한 잔에 미안할 정도의 장광설을 늘어놓았지만 현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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