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과 서울의 두 샌드위치

뉴욕과 서울의 두 샌드위치

유행이란 뜨고 지기 마련이지만, 실상 대부분의 유행은 새로운 것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단지 누군가에게 새로울 수는 있다. 육가공품 역시 마찬가지로, 발음하기 어려운 멋진 이름들과 그것을 다루는 멋진 외국 요리사들에 대한 이야기로 꾸며져 있지만 그 기저가 되는 원리에 대한 이해는 근래에 들어서까지 크게 바뀐 게 없다.

내장을 사용하는 등 질감 구성에 있어 폭이 넓거나 식물을 첨가하는 등 맛의 구성, 사용하는 지방의 종류에서 변주를 줄 수 있는 종류들이라면 여전히 갈 길이 다양하게 있다는 생각이지만 파스트라미나 잠봉 뵈르 샌드위치에게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보다도 풍성한 살덩이들이 연출하는 시각적인 과잉이 인기의 이유는 아닐까?

그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취재 목적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가까운 시일 내에 서울과 뉴욕 두 도시에서 전혀 다른 파스트라미 샌드위치를 먹었다. 하나는 100년이 넘는 노점 KATZ'S의 것이었고, 또 하나는 아예 개업한지 일 주일 정도가 되지 않은 데일리 픽스의 것이었다. 둘 중 어느 것이 낫니 따위의 이야기는 (이제는 아시겠지만) 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는 "파스트라미 샌드위치"라는 음식에 대해서는 이제 할 말이 있다.

좋고 나쁨의 평가를 위해서가 아닌 관찰을 위해 둘을 비교하자면 일단 가격이 많이 다르다. 카츠에서는 잡다하게 다 붙어 $30정도를 지출했는데 데일리 픽스에서는 KRW 15000정도로 기억한다. 카츠는 커다랗게 구운 호밀빵을 슬라이스해서 내는 반면 데일리 픽스의 빵은 작은 바게트에 가까우며 이스트를 통해 부풀린 빵 질감이 명료하게 다가온다. 파스트라미의 경우 데일리 픽스는 슬라이서로 두께가 얇고 균일하게 떨어지는 반면 카츠의 파스트라미는 뜨거운 찜기에서 꺼내 투박한 손길로 썰어내므로 다소 두껍고, 사람이 써는 것이라 단면이 일자가 아닌 살짝 경사진 모양으로 쌓인다. 맛의 경험에서는 써는 두께보다 재료나 가공의 차이가 도드라진다. 카츠의 파스트라미는 돼지로 치면 삼겹살 즈음이 되는 나벨 엔드를 사용하여 기름이 많은데다가 따뜻한 상태로 썰어내므로 소의 지방맛이 빠르고 강하게 다가오며 굉장히 부드럽다. 이에 반해 픽스의 샌드위치는 점잖다고 할 수 있겠다. 빵 껍질의 면적이 넓은 만큼 많이 씹게 되는데, 씹는 동작에 통째로 따라 들어온 한 장을 씹는 경우에는 적당히 가락이 맞기도 하고 모자라게 끊어질 때에는 모자라기도 하다. 고기를 제외한 가장 큰 차이는 데일리 픽스의 것이 치킨 샌드위치에 쓰이는 양배추 샐러드를 사용하여 최소한의 인간성을 갖추었다면 카츠는 별도 주문이 없으면 머스타드만 발라 폭력적인 맛을 낸다는 점. 같이 주는 피클도 아주 제대로 시어버렸다.

왜 뉴욕에서는 이런 샌드위치가 팔리고, 또 나는 사먹었는가?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새벽 5시 즈음이었기 때문이다. 4시를 끝으로 최후까지 불을 켜던 BAR들도 불이 꺼지고 해가 뜨기 시작하는 시간, 거리에서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은 이것밖에 없다. 내게 파스트라미 샌드위치란 이 아침 햇살(旭) 같은 음식이다. 도시 전체를 밝힐 정도로 밝지는 않지만, 어둠 속에서 만나는 빛이기에 참으로 반갑다. 이런 음식은 완전히 합리적일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반 쪽을 다 먹을 즈음하면 후회가 몰려오지만 또 여느 새벽이면 떠오르는 중독의 음식. 신맛으로 짠맛과 지방을 받아내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강렬하여 강-강-강의 태세에 심호흡할 틈이 없다. 쉬는 순간 다시 샌드위치를 집어들 용기가 반은 휘발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야말로 식사를 '해치웠다'는 말이 어울리는 음식이다. 하지만 지친 도시인의 삶에는 종종 이런게 필요할 때가 있다. 가난한 자들이 고기를 먹기 위해 만든 음식인 만큼 엄밀하게 말해 진귀한(delikat) 먹거리(Essen)는 아니지만, 먹거리의 귀천은 그 출신성분으로 타고나지 않는다. 궁중음식에도 저질이 있듯이(사실 대부분이), 거리 음식에도 존귀한 것이 있으며 이 샌드위치는 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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