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의 기술, 클, 2020

돈가스의 기술, 클, 2020

「나리쿠라」 레시피가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돈까스에 진심인 사람이라면 반드시 열어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책은 나리쿠라 레시피 그 이상을 가지고 있다.

내용에 앞서 일본의 음식 관련 서적 문화의 배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시바타쇼텐은 월간지 「월간식당」, 「전문요리」를 필두로 한 음식 관련 종합 출판사다. 전자는 업계 종사자부터 외식을 사랑하는 소비자들까지 두루두루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고, 후자는 메뉴 혹은 파인 다이닝 단계의 레시피 설계, 레스토랑의 위생 관리, 가격 설정, 레스토랑 브랜딩 등 종사자들을 주독자층으로 가지고 있다.

두 잡지의 깊이만 해도 가히 JPY 1600/월의 비용이 아깝지 않지만, 취재 내용을 묶어서 내는 단행본은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성공적으로 시장에 자리잡은 식당들을 취재, 그 성공의 방법을 배운다는 목적의 철저한 실용서이면서도 편집을 보면 단순히 돈 잘버는, 혹은 인기 많은 순으로 업소를 섭외하지 않고 또 내용을 기획하는데 있어서도 썩 섬세한 점이 있어 단순히 따라해서 성공하기 위한 무언가 이상의 가치를 보여준다.

시바타쇼텐의 저번 책에서도 그랬듯이, 파인 다이닝 단계의 요리를 다루더라도 시바타쇼텐은 다이닝 문화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이를테면 초창기 고 미요나, 레시피 없는 파인 다이닝 잡지인 풀 매거진과 같은 방향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들이 무엇을, 어떤 요리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무게를 둔다면, 시바타쇼텐의 대중서는 이미 무언가를 요리하기로 정해둔 뒤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파고든다. 마코토(誠)인가. 굳이 그런 명명을 두고 검증까지는 하지 말자.

그래서 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고? 그간 내가 소개한 책들을 일부라도 읽은 독자라면 아마 이 책을 열어본 순간 그 차이를 실감할 것이다. 「돈가스의 기술」은 한국의 음식 미디어처럼, 기술적으로 상세한 부분들은 무지로 버무린 채 신성화하지도, 서구의 매체처럼 취재 과정에서 상호주관성Intersubjektivität이 드러나지도 않는다. 단지 최대한 자세하게 기록한다. 어떤 브랜드, 품종을 쓰는지, 몇도에 몇분 튀기는지, 한 번 튀기는지 두 번 튀기는지? 소금은 어떤걸? 일본 트렌드좀 읽었다는 사람들은 튀김솥은 어떤걸 쓰는지도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테다.

여기까지는 튀김옷으로 주름좀 잡는다는 호사가들은 흔히 논할만한 주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시바타쇼텐의 디테일은 그 단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완전히 오타쿠들 바깥의 영역, 갈빗대의 흔적부터 근막, 지방 등을 성형하는 과정부터 주방의 구조와 동선의 디테일 속에서 읽히는 의도들은 아마추어를 겸손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어울러 이 책을 완성하는 지점은 바로 기획이다. 여덟 곳의 가게는 모두 각자 돈가스를 열심히 할 뿐이지만, 그 속에서 돈가스에 바라는 모습은 전부 다르다. 대단한 철학이 아니지만 그에 대한 정성이 그 어느 곳에도 없는 요리를 만든다. 그 정성을 느껴야 한다. 돈가스가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나리쿠라를 상징하는게 저온과 빵가루라면 장어나 전갱이 등을 위시한 니혼료리의 방향, 라드부터 일본식 참기름까지 기름의 방향, 밥을 위한 프라이라는 역전의 발상이나 코스 구성 등 식사 구성의 방향까지 각 레스토랑이 제시하는 길들은 제각각 다르면서도 고유한 설득력을 보인다. 「돈가스의 기술」은 각 레스토랑의 간판 메뉴부터 주요 사이드메뉴까지 열심히 읽었다면 그 레스토랑 주방에 꼬미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꼼꼼히 소개하고 있는데, 어차피 따라쟁이에게 자리를 비켜줄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레시피야 따라해볼 수 있겠지만 레스토랑을 완성하는건 한 자밤 들어간 철학이다. 기획은 그 점을 너무나 선명하게 잘 살려내고 있다.

KRW 10000 이상 돈가스를 즐기면서도 무언가 칼칼한 갈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아야 한다. "지방 붙은 등심-누가 정했는지 모르겠는 상등심-반 갈라 심부온도 60도 초반에 머무르는 안심"이 새로운 돈가스의 표준규격이 되려고 하는데, 돈가스는 그렇게 재미없는 음식이 아닌데 게임이 왜 이렇게 됐는지 불만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비단 주머니錦囊다.

말하다보면 지친다. 우리도 국내 레스토랑을 취재한 이러한 종류의 책, 나아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쿡북을 쭉쭉 펴내고 쭉쭉 팔아줘야 한다. 나 요리좀 배웠네 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라면 죄다 인테리어 겸사겸사 책을 깔아놓고 있는데 왜 그 자리에 한국어 책은 이토록 없는가. 「모더니스트 퀴진」이야 출간을 하려고 했는데 잘 안됐다고 치더라도 레스토랑 쿡북 하나가 번역이 되서 들어오지 않고, 국내의 식당들을 깊게 취재한 미디어를 만나기가 어렵다. "@슐랭가이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정기간행물들과 차라리 그 수준에서 머물러주었으면 하는 방송사의 영상 미디어들은 이미 포기했고, 이제는 세 다리 안에 전부 엮여서는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 COI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신경쓰지 않는 매체들의 영향력이나 좀 줄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결국 그러려면 우리 한 명 한 명이 열정을 가지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최소한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4가지 요소에 대해서만큼은 진심인 돈가스 오타쿠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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