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삼합과 두부김치

두부삼합과 두부김치

두부는 한식 단백질에서 상당한 의의를 지니고 있음에도 두부를 주연으로 한 요리는 그다지 발달하지 못한 실정이다. 정확히 말해서는 두부 자체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채로 속절없이 세월만 흘려보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좋은 두부를 받아 쓰기가 어려우니 두부를 특색으로 내세우기가 어렵다. 좋은 두부의 기준은 단순하다. 너무 묽지 않고, 지방이 풍부한 것. 고형분의 비중은 20%는 되어야 보통 두부다운 맛이 난다. 흰 치즈와 만드는 방법이 유사하므로, 단순히 누르는 압력으로 농도를 조절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결국 만드는 쪽의 의지인데, 일반적으로는 높은 수분율이 즉 많은 생산량을 뜻하므로 타협하기 어려운 영역이 되어버린다. 물론 고형분 비중이 높아 질감이 좋지만 정작 맛이 공허한 두부도 있다. 후진 원료를 쓰는 문제가 크다. 맛이 비어있는 콩은 맛이 비어있는 두부를 만든다. 일제시대 생산량을 늘리려 보급된 장단콩이 대표적인 이 분야의 문제아다. 물론 토종 콩을 쓰면 된다 따위의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여간 카리야 테츠가 지로의 입을 빌려 "와인과 두부는 여행을 시키지 마라(ワインと豆腐には旅させちゃいけない)"고 얘기한 것이 반 백년이 되었으니, 두부가 서울로 오지는 못하고 두부를 찾아 여행을 떠나야 되는 시대가 되었다. 염장육이나 치즈와 같이 식자재로 내 주방에서 즐겨야 할 재료임에도 외식의 영역으로 밀려나고 말았으니 바깥으로 돌 수밖에 없다.

어릴 적 두부 외식에 대한 가장 큰 기억은 화심순두부였는데, 유독 화심의 순두부가 먹을만 했던 것은 채수와 조개로 낸 육수로 두부에 모자란 맛을 입혀냈기 때문이었다(어느 순간 너무 맛이 없어져 발길을 끊은 지는 아주 오래 되었지만). 오늘날의 두부전문점에서 내는 요리도 대부분 접근 방식은 유사하다. 좋은 두부를 내는 곳도, 전문점의 이름이 무색한 곳도 그렇다. 두부와 짝을 짓는 것은 기본적으로 김치(두부김치, 두부삼합, 수육 등)나 고춧가루 푼 국물(순두부, 두부전골 등)로 두부의 중립적인 맛을 매개체vehicle로 삼아 맛의 층을 쌓아올린다. 개중에서도 두부삼합은 그 가락이 잘만 맞는다면 마치 서프-앤-터프처럼 상호보완적인 작용까지 보여준다. 한 입에 전부를 우겨넣는 쌈 방식보다는 두부-볶은 김치로 두부의 지방을 바탕으로 볶은 김치의 단맛을, 그리고 돼지고기-새우젓으로 짠맛을 그려내기도 하고, 랍스터와 샤토브리앙처럼 김치를 하나의 소스로 엮어도 좋다. 두부김치도 육식 위주의 외식 문화를 반영하여 고기를 썰어 넣고 볶는 스타일로 정형화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두부 삼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런 그림이 언제나 잘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맛이 연한 흰살 생선에 소 뼈를 태운 소스를 쓸 수 없듯이, 두부가 충분히 강해 김치와 맞설 수 있어야 두부 삼합은 진정한 三合이 된다. 두부가 약하면 그냥 무언가 끼어있는 수육에 지나지 않는다. 김치 대신 말린 더덕이나 식해 등 훨씬 강한 맛의 재료가 자리하니 두부의 맛 따위는 알 바 아닌 경우도 많다. 맛이 연한 두부라고 쓸모가 없지는 않다. 태생적으로 질감을 위해 그렇게 만드는 순두부도 있지 않은가. 그런 경우 앞서 찌개나 전골처럼 국물에 짝을 짓는다. 단가를 위해 체면상 들어간 해산물을 빼면 오히려 두부에 육수만으로 맛을 입히는 꼴이므로 진정 두부가 주인공인 요리는 이쪽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1970년대부터 명성을 얻은 초당두부, 1990년대 말부터 지자체가 키운 장단콩 등 두부를 지역 아이템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몇 번 있었지만 정작 그런 곳들의 두부가 가장 빠르게 맛이 없어졌다. 그럼에도 그 명성에 큰 흠집이 나고 있지 않은 이유는 전술한 대로 두부 요리의 방식이 주로 두부 그 자체를 가리거나 보충하는 식으로 조리법이 발달한 덕분이다. 두부 자체에 대한 기대감도 착실하게 낮아지고 있으며 멀쩡하게 만든 두부는 외식 시장에만 간신히 존재하고 있는 형편인데 그러다보니 부수적으로 높은 단가를 정당화하기 위해 전골의 갖은 해산물이나 삼합의 삶은 고기와 같은 요소들이 필연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이런 두부 요리는 두부 입장에서는 궁여지책의 방편이라는 것이다. 코티지 치즈만으로 요리하는 레스토랑 따위가 있다면 모양새가 우스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좋은 두부를 어느 정도 규모로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을 만큼 두부를 받아써줄 가계와 식당이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움직임을 선도해야 할 고가의 한식당에서 두부 따위에 공을 들인다면 몰매를 맞고 망하게 될 것이다. 매까지 맞을 일인가 싶지만, 그래서 지금 이 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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