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t Hem - 2023년 여름

Ett Hem - 2023년 여름

호스피탈리티 산업에서 식음료와 숙박 간의 관계는 리츠 호텔과 에스코피에의 관계만큼이나 가깝지만, 본지에서 호텔에 대한 언급은 가능한 피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본지의 존재 이유, 즉 저자가 읽고 싶지 않은 글을 피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수면과 기상까지 아우르는 생활 전반에 대한 서비스로서 숙박업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첫째로는 이해충돌의 우려가 있고 둘째로는 그러한 부분을 고려하지 않으면서 쓰는 글-이른바 호텔 리뷰-의 수준 역시 우려스럽기 때문에 대체로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느냐면 다른 어떤 식사보다도 공간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식사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스웨덴어로 집이라는 뜻을 가진 엣헴(Ett Hem)은 전직 호텔리어와 일세 크로포드가 손을 잡고 만든 디자이너 호텔로 한국어의 호캉스에 대응하는 스테이케이션(Staycation) 개념에 있어 단언코 앞서나가는 호텔이라고 할 수 있다. 스톡홀름이라는 도시를 방문하는 개인적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며, 그만큼 세부 사항에 대해 논할 거리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선을 좁혀서 호텔에서의 긴 시간 중 저녁 시간에 대해서만 논하기로 하자.

방문 전

엣헴의 식사 옵션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날 다루는 것은 1,295 SEK의 저녁 식사이다. 투숙객 이외의 예약을 받는다고 알고 있지만 투숙객 이외의 손님은 보지 못했다. 원하는 장소에서 식사가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주방 앞의 커뮤니티 테이블이 식사 장소. 호텔 예약과 함께했기 때문에 별도의 확인 절차에 대해서는 생략.

식사

주방 전체를 식재료가 가득 메우고 있는데, 대부분 실제로 사용하는 재료로 식사 도중 계속해서 줄어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별도로 고정된 메뉴는 없지만 큰 흐름은 존재하는 편.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은 토마토와 EVOO로 명확한 이탈리아향(向)의 조리 개념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지중해 근방이 아닌 서늘한 기후에서 재배된 토마토이다보니 오히려 한국 정서에 가깝다는 인상을 주는데, 과연 닿을 수 없는 곳에 대한 동경으로 남을 것인가?

이어 등장하는 요리는 파르시를 채운 호박꽃 튀김으로 곧바로 지중해에 대한 선망을 드러냈다. 여기서 잠깐 이야기를 하자면 주키니는 여타 호박류가 그렇듯이 아메리카대륙을 원산으로 하는 작물로 유럽의 식탁에 본격적으로 오르게 된 것은 19세기 중후반 이후로 본다. 주카(Zucca)에서 온 주키니(Zucchini)라는 표기가 문헌에 등장하는 시점 역시 마찬가지. 아주 긴 역사를 가진 전통은 아니라는 것인데, 그럼에도 카탈루냐/남프랑스/이탈리아 전역을 아울러 등장하는 호박꽃 튀김의 맥락이 무엇인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생각건대 채우는 방식의 요리법은 프로방스 요리보다도 오스만 제국-터키의 돌마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다. 물론 이탈리아 요리로 건너오면서 더 이상 속을 채우는 내용은 같지 않고, 특히 지금 처럼처럼 남부의 영향을 짙게 드러내는 요리의 경우 모차렐라 치즈와 같은 남부적인 재료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야기가 잠시 빠졌는데, 그래서 사진의 호박꽃 튀김에서는 어떤 인상을 얻을 수 있는가? 첫째로는 그 치즈다. 스트라치아텔라를 채운 다음 빠르게 튀겨내어 치즈가 아주 녹지는 않은 채로 응유의 느낌을 전달하는데 강한 지방의 풍미가 첫 만족감을 선사한다. 강한 지방을 떠맡는 것은 가운데에 위치한 은두야로, 튀김에 매운 자극을 더하는 것은 실은 이탈리아보다는 중국 요리에서 더욱 익숙한 문법이라는 생각도 났다. 아주 현명한 생각까지는 아니었지만, 스웨덴에서 바라보는 이탈리아 요리라는 주제는 선명하게 드러났으며 그러한 요리를 해야 하는 이유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북반구를 상징하는 작물인 구스베리를 이용한 요리에서는 탁월함이 빛났다. 실은 선선함이라는게 존재하는 지역에서 자라는 토마토는 언제나 고민거리다. 단맛으로 먹는 과일이라고 하기에는 특유의 감칠맛과 신맛을 버리기 아쉬우며 단맛과의 조리에 있어서도 의외의 불협화음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설탕을 뿌린 토마토나 스테비아 토마토에서는 쾌락이 아닌 부담감이 느껴지곤 한다. 열을 더해 조리하는 경우에는 자연스레 신맛이 더욱 강조하게 되는데, 이 경우 기본적으로 신맛이 강한 산 마르자노나 로마 등 남부 품종에 비해 드러낼 수 있는 강점을 찾기 어렵다. 비교적 튼튼한 과육이 있지만 씨를 처리하는 문제가 또 생긴다.

그러한 고민 속에서 주인공은 토마토보다는 부재료였다. 염소 치즈와 구스베리가 각각 발효의 산과 과실의 산으로 토마토의 모자란 신맛을 메우고 강한 감칠맛은 시소와 고수 꽃의 향이 떠맡는다. 지구 반대 편에서 우리의 토마토를 생각했다. 완벽한 재료인 만큼 자주 등장하고, 특히 대저 토마토는 철이 되면 뭇 레스토랑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그만큼 조리법도 발달해서 모더니스트 퀴진에 나오는 토마토 워터부터 오랜 방식의 가즈파초까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 물론 같은 가즈파초 중에서도 겨자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얹는 것까지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우리는 그런 사람의 이름을 '알랭'이라고 부른다) 토마토 요리는 종종 지루함마저 불러일으키곤 한다.

이 토마토는 그래서 성공했는가? 낯선 이에게는 그랬다. 바질에게 의존하지 않은 점, 그러면서도 바질의 빈 자리가 느껴지지 않은 점만 해도 토마토 요리로서 중간 이상은 가는 것이다.

반드시 칭찬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식사가 지난 후부터 꽤 시간이 지난 다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었냐고 한다면 빵과 버터였다. 정확히는 버터. 사워도우에 대해서는 단면이 말하는 바가 있으므로 굳이 따지고 들지 않는다면 핵심은 버터로 스웨덴의 알 수 없는 곳을 출처로 하는 물건이었는데 특유의 화사함이 확실히 남달랐다. 소를 방목해서 키우는 경우 여름에는 주로 풀이나 꽃을 먹는 소의 식습관이 버터에 반영되기 마련인데(반대로 겨울 버터는 짚을 먹인다) 주로 이런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는 알프스 근방의 버터보다도 그 개성이 뚜렷했다. 이런 버터를 또 먹어볼 일이 있을까 싶어 열심히 탐닉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 어느 국가의 버터가 좋느냐 하고. 이런 말을 하는 화자들은 대부분 프랑스의 버터보다 훌륭한 버터가 어딘가에 있다는 말을 곁들인다. 그것은 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준이 되는 프랑스 버터는 까르푸나 가본 식당 몇 곳의 것에 한한다면 프랑스에서도 억울할 일이다. 어디에나 좋은 버터는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일천한 경험에 의존하여 일국의 버터가 타국의 버터보다 낫니 마니를 따질 문제는 아닌 것이다. 다만 좋은 제품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환경이 존재해야 하고, 그러한 환경이 잘 갖추어진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대한민국이 그렇다.

전반적으로 단순한 조리를 지향하기 때문에 기술적인 면에서 따지고 들 것이 없고 결국 재료나 환경에 대한 이야기만 반복하게 되기 때문에 짧게 다루고 넘어가자면, 아래의 라비올리는 결국 일종의 복선 해결이었다. 결국 등장한 바질, 결국 이탈리아의 방식. 앞선 토마토의 탁월함을 뛰어넘는 관성적 편안함.

매체가 발달하면서 비둘기가 이색적인 또는 낯선(가끔은 이상한) 식재료로 주목받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주로 관심이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목적이 크기도 하고 다루는 입장에서도 목적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탐미를 위한 재료로서 조명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간단히 다루자면, 비둘기는 적색육이 많아 분홍빛이 될 정도로 익혀 내는 것이 가장 전형적이다. 자체로 맛이 강하기 때문에 충분한 크기로 키운 것이 상등품인 닭과 달리 500g 미만의 어린 비둘기도 좋은 대접을 받으며 오히려 큰 비둘기의 경우 질긴 문제가 있다(우리가 종종 마주하게 되는 이른바 토종닭의 닭다리가 가진 문제를 생각해보라). 사냥으로 잡은 다음 피를 빼지 않고 도축하는 방식(étouffés et non pas saignés)을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지만 사육한 비둘기도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반드시 품질이 떨어진다고도 할 수 없다. 오히려 가축의 경우 먹이 등의 선택에 따라서 더 나은 품질을 보여줄 수도 있다. 만약 실제 구매 및 조리까지 나아가게 된다면 어려울 것 없이 라벨 루즈를 선택하면 좋고, 인증에 무관하게 제품을 찾는다면 전술한 먹이와 더불어 도축 시기를 잘 확인해 선택하는 것을 권한다. 아주 믿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프랑스의 도축업자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성체가 되서 날기 직전의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재료에 대한 설명을 이정도로 넘어가자면, 체리와 버섯, 콩을 곁들이는 방식은 가장 흔한 프랑스 방식으로 이전까지 이어지던 이탈리아와의 흐름과는 절대적인 단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자체의 완성도로 상당한 인상을 남겼는데, 무엇보다도 비둘기의 품질이 절대적이었다. 그을리듯 익힌 방식과 포르치니의 흙향, 그리고 비둘기의 강한 향과 체리의 신맛의 어울림이 훌륭했다. 크림과 닭가슴살로 대표되는 흰색 가금류 요리와 대비되는 적색 가금류 요리의 방향성을 정확히 짚었다.

치즈의 경우 불행하게도 스웨덴어가 짧기 때문에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브랑예벡(Wrångebäck)으로 추정한다. 경성에 가깝지만 속은 보기보다 무르고, 우유의 고소한 맛이 강한 치즈는 강한 개성의 요리의 인상을 지워낼 정도의 힘을 갖췄다. 컨디먼트로 과일이 이어지지 않은 것은 작은 아쉬움.

계절이 계절이다 보니 거의 모든 식사에서 스웨덴 딸기를 먹을 수 있었는데 링곤베리로 대표되는 특유의 신맛에 대한 이해가 돋보였다. 우리가 딸기를 얹은 디저트를 낸다면 결코 이런 맛으로는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만약 할 수 있더라도 상업적 실패를 겪었으리라. 하지만 분명 이렇게 만들 이유는 충분했다. 도우부터 크림까지 모두가 달콤한 와중에 하나 정도는 다른 색을 내도 좋지 않은가. 그렇다고 단맛이 없는 것도 아니다.

총평: 엣헴의 주방은 투숙객을 위한 식당이므로 가격 이외의 요소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공간은 호텔과 공유하고 서비스 역시 호텔 직원들이 번갈아 제공하기 때문. 요리에 대해서만 주로 다루자면, 호텔의 컨셉과 유사하게 어느 면에서는 가격 대비 놀라울 정도로 소박하면서도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놀라운 감각을 빛낸다.

한국어권에서는 유독 일본 요리(보다는 정확히 말하자면 스시)가 가진 재료에 대한 집착에 편승하는 경우가 많은데, 생산에 막대한 비용이 소모되거나 자연 발생 빈도가 낮은 재료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하다. 예컨대 동물의 경우 큰 것이 좋은 것이라는 논리는 통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큰 재료를 들이대는 것이 요리의, 혹은 최소한 재료의 능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단순히 비둘기나 가재류와 같은 예외를 논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좋은 재료라는 것에 대한 판단은 얼마든지 다른 기준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으며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좋은 치즈, 좋은 버터, 좋은 딸기, 좋은 아몬드, 좋은 콩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가? 마땅히 좋은 이유가 있는 것들임에도 우리는 적게 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