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A -백화점 젤라또

EBA -백화점 젤라또

국내 유통 대기업들의 각축장인 백화점들이 요새 열을 올리는 분야는 역시 지하의 식당가다. 컬라버레이션 마케팅의 유행에 힘입어 수많은 팝업 스토어 따위가 들어서고 또 사라지며, 소셜 미디어 등지에서 관심 좀 받는다는 식당이라면 백화점 관계자를 누구나 한 번 쯤은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공간을 짐짓 즐겨보려 하면 한 켠에는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또 한 켠에는 손가락으로 흝으면 먼지가 묻어나올 듯한 세월이 느껴진다.

몇 년 전 신세계가 자사의 대형 매장들을 전부 「젤라띠 젤라띠」로 가득 채웠다. 그래도 되는 시절이었다. 팔라쪼나 지파씨 등 이른바 로마 3대 젤라또(그 기원은 무려 00년대 초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절을 지나 특이한 맛이나 비주얼로 인기를 끄는 젊은 상권의 자영업자들이 부상했던 그 때의 유행을 반영한 것이다. 이에 반해 갤러리아나 현대백화점 등 여타 경쟁사들은 뜨뜻미지근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개중 나름 힘을 준 편인 압구정 갤러리아 지하에는 이 "EBA"라는 가게가 있다.

천연 재료만을 사용한다는 마케팅은 천연 재료만큼이나 오래된 인상을 준다. 약 20년 전이 되가는 2004년에도 젤라또 광고는 "이탈리아의 아이스크림 마에스터로부터 직접 전수받아 현지의 맛을 재현"했다고 하니[1] 세월이 지나도 마케팅은 변함이 없다. 그래도 이곳에는 바닐라가 있으니 굳이 다루지 않을 이유가 뭔가. "그만" 연작에 등재되는 가게들도 가는데 이정도면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목초 우유를 강조하는 입간판을 보고 소르베 종류를 피해 아이스크림 종류로 셋이나 되는-2+1 행사를 하고 한 컵에 한 가지 맛이므로 둘이 가면 보통 이런 설정이 된다- 아이스크림을 고루 맛보았는데 과연 이 백화점에서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 이 제과제빵 코너는 어느 정도의 무게감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만 원 단위로는 아예 살 수 있는게 없는 수준인 백화점의 지상부와는 달리 작정한 듯한 적당하니즘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바닐라는 하겐다즈에 비해 비교 우위가 없는 소량생산품이고, 티라미수는 코코아 파우더만이 티라미수라는 주제를 시각화할 뿐 커피 향, 마스카포네 등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일단 스쿱으로 이렇게 말아놓아 제공하는 방식부터가 틀려먹었다. 접객원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이래서야 티라미수라는 이름은 냉동고 안에서만 의미가 있는 수준이다.

갤러리아가 이 지하 식품관 브랜드로 다른 갤러리아 지점들의 푸드코트를 통폐합하더니 백화점이 아닌 아파트 상가에도 이 상표를 쓰고, 압구정 지하에는 ckbg lab같은 가게도 보이는 등 갤러리아도 시대의 유행에 부합하는 식품관을 꾸미기 위해 갖은 수를 쓰고 있다. 그러나 한꺼풀만 벗겨내면 이런 현실이 드러난다. 왜 입점시켰는지 모르겠는 백화점, 왜 입점한지 모르겠는 가게, 왜 사먹는지 모르겠는 나. 무안하게 서서 대기하고 있는 청소노동자는 누가 보아도 간접고용되어 최저임금이나 받는 분위기다. 몇 년 후에는 입점한 가게들 중 몇 곳은 빠지고 또 그 시절 유행하는 가게들로 채워질 것이다. 왜 유행하는지, 뭐가 유행하는지는 모른다. 내슈빌이 뜨면 전국이 내슈빌이 되고 앉았으니 다음에는 어디 아칸소가 유행하면 전국이 아칸소가 될지 누가 아는가. 포섬 파이는 재료도 구하기 쉬우니 안될 것도 없다. 하여간 위선이라도 좋으니 럭셔리의 가면을 쓰고 그럴싸한 삶이 존재함을 느껴야 하는 백화점이거늘 삶의 현장에 맞닿은 씁쓸함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이게 진정한 라이프스타일 경험이라는 것일까?


  1. 김동희. (2004년 7월 7일). 천연 과일·요구르트로 만든 이탈리아 웰빙 아이스크림 전문점. 여성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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