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비스 - 문제의 맥주

에비스 - 문제의 맥주

그렇게 오래 전이 아닌 과거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에비스를 비롯한 일본산 라거들은 가히 전설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았다. 마트의 4캔 만원 행사를 시작으로 편의점으로 4캔 만원이 확산, 전국적으로 수입맥주가 생활의 일상으로 자리잡은 것은 전적으로 21세기적, 그것도 2010년대적인 현상이었다. 맥주 순수령이니 들먹이며 다국적 대기업들의 유명 상표들이 진정한 '맛잘알'들의 맥주로 자리잡은 때도 그 즈음이었다. 각 스타일별로인지 '아사히-칭따오-하이네켄/산토리 더 프리미엄 몰츠'정도가 가끔 등락을 반복하며 상위권을 굳혔다. 불매 이슈가 터지고 나서는 완전히 무너졌지만, 그런 시대가 있었다.

그렇게 일본 내 인기 브랜드들이 국내에서도 대중화되면서 스놉들은 새 둥지를 찾았는데 그게 바로 에비스였다. 에비스만큼은 수입까지 시간이 꽤 걸렸는데, 캔을 마트에 납품한게 2017년 경의 일이니 청담동 모처 등에서만 카스의 몇 곱절의 비용을 치러야 맛볼 수 있다는 에비스는 가히 환상의 맥주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 지금도 그 고고함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인지 대형마트 전점포에 입점했음에도 할인행사에 은근 끼려고 하지 않는다거나 여러모로 분투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제는 확실히 환상보다는 현실에 가까운 맥주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 정체 또한 이제 우리는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유통, 관리에 따라 달라진다거나 드래프트와 캔입 맥주는 다르다 따위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할 요량이라면 들을 필요 없겠지만 궁극적으로 에비스 상표를 지닌 맥주는 유사한 캐릭터를 지니고 있다. 에비스 맥주의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틀이 있다. 압도하는 팔레트의 몰트와 크림이라는 단어를 즉각 떠올리게 하는 촘촘한 마우스필이다. 끝에 모자라지 않은 쓴맛을 지녀 필젠의 필스너보다는 도르트문트에 가깝다. 향의 복잡함은 스스로는 충분하다고 하지만 몰트의 단맛을 이끌어줄 향이 완벽하게 채워졌다고는 보기 매우 어렵고, 홉을 통해 다스릴 수 있는 부분 또한 지나치게 점잖다. 편하게 마실 수 있고 양조의 하자 없이 뽑아내는, 대기업다운 위대한 QC와 편안함을 지닌 맥주이지만 이런 종류의 맥주를 마시는 즐거움을 충분히 만족시켜준다기보다는, 이런 종류의 맥주를 찾을 때 기꺼이 손에 잡히는 정도에 가깝다.

과연 이런 에비스가 하면 발효 맥주, 혹은 도르트문터의 끝인가? 아니면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상위군의 일원인가? 그렇지 않다. 에비스 맥주를 만드는 삿포로사도 이런 점은 잘 알고 있어 일본에서는 에비스 그 자체의 상위 규격의 제품군이 한가득이다. 경영상 이유인지 그 이름은 계속 바뀌고, 한정판들은 전부 사라지지만, 어쨌거나 에비스 기본형의 한계를 확실히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서울에서는 이 맥주가 큰 골칫덩이이다. 다른 맥주들과는 여전히 다른 독특한 위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냐? 바로 수십만 원 정도의 식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들에서도 그 존재감을 밝히고 있는 맥주라는 점이다.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가 그나마 몇 군데 머리를 들이밀고 있지만 에비스는 일본식 카운터 레스토랑을 상징하는 음료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위대한 미식가들은 식사의 의식에 허용되는 맥주로 이런 종류만을 허용하고 있다. 나는 고민한다. 이것이 과연 스시라는 음식에 그렇게나 어울린단 말인가? 일견 통하는 조화가 있어 보이지만 솔직히 최선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식사 전체를 통틀어 가히 드럼탄창의 분량만큼의 탄수화물이 쏟아지는데, grainy-bready-nutty의 몰트 노트는 식초에 젖은 쌀의 가락과는 전혀 들어맞지 않으며 끈끈한 마우스필은 여운을 엉키게 하는 문제점으로 드러난다. 탄산과 쌉싸름함에 기대어 호흡을 가다듬는 음료로는 쓸 수 있겠지만, 식대만으로 20만원을 초과하는 상황에서 격에 어울리는 설계는 아니다.

일부 관행과 같이 이 맥주를 일종의 식전주로 마시는 것 또한 동의하기 어렵다. 일단 장장 두 세시간을 달리는 식사에서 위장에 확실한 불청객일 뿐더러 식전주에게 요청받는 결정적 역할. 즉 입맛을 돋운다는 측면에서는 신맛을 함께 지닌 샴페인 등 발포성 와인의 효용이 압도하는 가운데 맥주라고 해도 마우스필은 가볍고, 신맛은 많은 종류를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런 맥주일 필요는 없다. 게다가 맥주 이후의 주류가 샴페인, 그리고 화이트 와인과 일본술로 넘어가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바로 그 샴페인을 고향으로 하는 브뤼 맥주나 트라피스트의 일종인 오르발과 같이 신맛이 개입하는 맥주이 쉽게 떠오르는 대안이다. 물론 저런 맥주들은 케그로 판매되지 않는 실정이기 때문에 채택은 요원하다. 그러나 진정 쾌락만을 위한 식사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면 손 놓고 있는게 올바른 태도라고 보지 않는다. 같은 맥주를 두고 병과 케그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과 다른 스타일의 양조를 통해 빚어내는 간극이 과연 같은 크기를 지니는가? 쾌락을 위해 일상의 한계를 부수기 위해 모인 자리라면 보수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모순이다. 애초에 뿌리를 타고 올라가면 이 자리에 이런 맥주가 존재하게 된 이유는 과거에는 그곳에 이런 맥주밖에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물론 나는 객들도 레스토랑들도 비난하고픈 마음은 전혀 없다. 객은 스스로가 원하는 식사를 즐기기 위해 식당을 찾으며, 식당은 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쌍방이 합의하는 이상, 식대가 수 천만원, 수 억원의 식사라도 에비스를 찾고 에비스가 있다면 따르고 마실 수 있고 그런 수요를 배려하는 것이 진정 접객으로서 바람직한 자세다. 다만 나는 그것이 그 식당 바깥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 때, 카운터에 앉아 에비스를 요구하는 것이 기호가 아닌 미식gastronomy으로 비추어질 때를 두려워한다. 에비스를 마시는 것은 미식이라기보다는 의식이며 맛의 쾌락이라기보다는 기억이나 습관의 무언가이다. 에비스는 일본 요리에 어울리는 맥주로서 끝도 아니며 다짜고짜 유사한 스타일의 맥주들을 나열할때도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에비스는 나쁜 맥주인가. 아니다. 어떤 장소와 상황에서는 에비스는 좋은 맥주이다. 어떤 상황인가. 바로 이렇게. 마트에서 돌아오는 길에 천 원을 떠올리며 집어든, 캔입일 좋고 신선하다면 좋고 아니어도 말아버릴 상황에서 마시는 맥주로서 좋다. 설거지가 싫은 날에는 잔에 따르지 않기도 하고 치킨은 고사하고 라면에 먹을 때도 있는 그런 상황에서 에비스는 반 발짝 더 나아가는 맥주로서 훌륭하게 빛난다. 뭉툭한 맥주가 아닌 무언가를 마셨다는 기억과 함께 기분좋게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에비스를 위하여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