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픽 - 숙성한 쇠고기
이 식당이 제주도에 있을때부터 불안감을 느꼈다. 에체바리와 번트 앤즈의 이름을 과연 올리는 것이, 이곳의 음식에 적합한 일일까? 나는 그것을 우려했기에 이곳을 다룰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어느 날의 저녁이 내 생각을 바꿨다.
엘카노, 에체바리와 같은 바스크의 그릴 주방을 상징하는 것은 그릴의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파리야(Parrilla)로, 실물을 보면 쉽게 그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각도도 조절 가능한 것도 있음). 거기에 에체바리의 경우 사용하는 나무에도 특징이 있고, 전도를 전적으로 배제하고 복사와 대류만을 사용하는 열 전달이 츌레타에 있어, 그리고 다른 재료-특히 해산물-에 있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 무수한 디테일이 있는데, 오늘은 아촌도에 온 것이 아니므로 그런 이야기는 담지 않겠다.
그러한 바스크의 그릴과는 다소 동떨어진 이곳의 요리지만, 맛본 여러 종류의 엘픽 스테이크 - 개중에서도 위 티본 - 는 스페인에 대한 불필요한 레퍼런스를 제외하고 나서, 스테이크하우스라는 측면에서 찾을 이유가 있는 공간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쇠고기를 뼈째 그릴에 굽는 경우, 지방의 향이 강한 고기, 그리고 지방이 풍부한 부위를 사용하는 것이 그 조리의 특징을 극대화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된다. 그릴 과정에서 형성되는 향미성분이 지용성인 점도 있고, 강한 향이 그냥은 부담스러운 점이 있는 부위를 한껏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부분도 있다.
엘픽의 쇠고기는 그러한 지점을 훌륭한 수준에서 구현하고 있다. 특히, 안심보다는 티본에서 그러한 특징이 빛난다. 드라이에이징으로 압축된 감칠맛과 특유의 향을 집요한 조리로 표현해낸다. 쇠고기라는 재료가 가진 잠재력을 보관부터 가열까지, 전 단계에 걸친 변형을 통해 펼쳐낸다.
다만, 분명히 쾌락적이지만, 쇠고기로 하나의 주장의 경지에까지 도달하는 대신, 일상이 가진 쾌락의 극한의 연장선 위에 있다는 것이 결론이다. 흔히 오트 퀴진이 추구하는, 음식이 제공하는 쾌락의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누군가는 이러한 견해가 미쉐린 가이드의 오랜 편견의 연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미쉐린 가이드는 바스크의 그릴 문화를 오랜 기간 외면해왔고, 한국식 구이 문화는 '보름쇠'의 파격적 발탁 이후 계속해서 외면하고 있으니.


나머지 요리와 서비스의 흐름이 발목을 잡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쇠고기와 다른 인상의 요리로 틀을 만드는 데는 성공하지만, 각각의 요리가 다차원적인 경험을 형성한다기보다는 하나의 평면 위에서 서로 다른 좌표계에 존재하는, 평면도형의 인상으로 마무리된다. 그래서 더욱 일상적이며, 친근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