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어딘가에서 먹은 크넬

어느 날 어딘가에서 먹은 크넬

파리행 밤열차를 타기 전 뭐라도 먹어야 했다. 슬프게도 탑승하는 차량의 식당칸이 운영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앱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정한 게 이 크넬이었다. 옆에 무언가를 또 먹었다는 기억은 있지만 크넬에만 감각이 꽂힌 나머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크넬 리오네즈는 프랑스 요리에 대한 일반의 인식과 달리 한 그릇 요리로서의 기능을 해낼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곁들이는 빵도 있지만 이미 크넬 자체가 충분히 탄수화물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저렴한 옛방식일수록 단백질의 비중이 높지 않아 그러한 성질은 더욱 부각된다. 약점이 있다면 짠맛 쪽으로, 치즈 정도에 기댈 뿐 동아시아의 한 그릇 국물요리에 비하면 빈약하다. 한 그릇 요리로 낼 생각이 많지 않기 때문이리라.

크넬의 문법만 두고 보면 맛이 섬세한 편인 흰살 생선이나 가재를 사용하는데 정작 결과물을 두고 보면 그 매력을 잘 살리기 쉽지 않아 과연 구시대의 유산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특히 좋은 크넬일 수록 낭투아의 가재나, 리옹 근교에서 잡히는 꼬치고기brochet을 사용하는 것이 격식을 높이므로 더욱 그렇다. 그나마 크넬 낭투아는 소스로 체면을 세울 수 있지만 이와 같이 흰살 생선을 사용한 크넬은 뫼니에르 따위의 경쟁자에 비해 선보일 수 있는 강점이 어디에 있을까?

오븐에서 꺼내올 때 표면이 살짝 익은 소스가 내오는 매력도 있지만 생각건대 크넬의 재미는 질감의 변형에 있다. 으깨고 뭉치는 과정에서 부드럽게, 혹은 밀도 높게 의도에 따라 연출할 수 있다. 균일한 반죽이 균일하지 않은 열변화를 거치면서 질감은 다층적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남의 나라까지 가서 먹은 크넬에 그런 감동이 전부 있었다고 하면 블로거의 거짓말이다. 크림 가득한 소스는 추위를 녹이기 충분했지만 반죽을 가르는 손길에는 약간의 저항이 느껴졌고 반죽의 높은 밀가루 비중을 감당하기에는 나머지의 조미가 모자랐다. 그럼에도 크넬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록할 가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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