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두 라가불린

어느 날의 두 라가불린

스피릿에 대해 말할 기회는 거의 없다. 정확하게 말해서, 식품 산업의 큰 분야중 하나인 기호식품 업계에 대해서가 그렇다. 차에 대해서, 커피에 대해서, 증류주들에 대해서 말할 기회가 잘 없다. 왜? 본 사이트를 만들게 된 취지에 거스르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복제 가능한 경험을 매개로" 라는 전제조건으로 해야 하는데, 솔직히 그런 제품들에 잘 손이 가지 않는다. 국내에서 제대로 된 유통망을 갖추고 있는 물건들은 대체로 관심 영역에 들어올 이유가 별로 없다. 그렇다고 생필품으로 갖추고 있는 시바스 형제나 워커의 아들들 제품들 정도가 공감 가능한 영역에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날의 두 라가불린은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12년 CS와 16년. 최근에 개봉한 12년 CS의 상태는 가히 옳았다. 그윽한 이탄의 향기, 짭짜름한 팔레트, 결코 모자라지 않은 나무의 바닐린. 튤립 모양의 글랜케런을 흔들기가 아쉬웠다.

그렇다면 좋게 하루를 끝낼 일이지, 이제와서 무슨 소리인가. 바로 이 기호품들의 현재의 좌표에 대한 질문이다. 현재 상태는 좋은가. 최근 데이비드 창 셰프가 낸 회고록에서 짤막하게 위스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패피 반 윙클"을 마신 이야기인데, 힘든 시절 물보다 패피를 더 많이 마셨다고.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패피는 지금처럼 하이프가 심한 물건은 아니었다는 단서와 함께. 위스키 애호가들은 그렇다면 데이브를 부러워할 것인가. 한 병, 아니 한 잔을 마신 게 자랑으로 남는게 패피가 아닌가. 위스키 세계에는 이런 유니콘들이 많다. 패피 정도면 양호한 편이다. 위스키 업계의 전통이었던 병입업자 시장은 곧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환상을 창조해냈고 이제는 모든 위스키-특히 맥캘란-가 "한정판"의 성질을 지니지 못해서 안달이다. 모든 위스키가 한정판이다. 아닌 것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무조건 미래의 위스키는 더 나쁘다"는 공감대 아래 "구형" "구구형"등의 타이틀을 걸고 한정판의 지위에 오른다.

이런 상황은 나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 나도 사람이고 그러한 한정판 위스키들을 사랑한다. 무한한 것은 세상에 없지만 특별히 적고, 그렇게 적은 이유가 더 좋은 맛을 위해서라면 누구나 혹할만 하다. 그러나 시장이 그러한 성격을 짙게 지닌다면 나는 주춤한다. 과연 이것이 내가 바라던 세상인가. 모든 위스키들이 더 맛있어지는 대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열등재로 밀어내면서 승천한다. 물론 요새 위스키들의 아쉬움은 완전히 환상은 아니다. 연 6~7% 이상 성장할 것으로 관측되는 위스키 업계의 무서운 성장 속도에 항상 원액의 생산량이 따라오지는 않는다. 따라서 위스키 업계는 이러한 영향을 덜 받으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숙성년도 미표기(NAS) 제품들을 늘려가고 이는 곧 생산량을 위해 맛을 적당히 타협한다는 것을 뜻한다. 많은 물, 많은 저숙성 원액. 면세점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싱글 몰트 위스키들이 그렇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가치 있는 원액들은 한정판 딱지를 달고 소비자를 매혹한다. 이런 전장의 최전선에는 LVMH가 가진 아드벡이 있다. 이제는 무엇을 위해 마시는지도 모르겠다. 위스키를 좋아하기 때문에 한 번은 마셔보고 싶다라, 과연 합당한 탐욕인가. 라벨 이상의 합리성이 있는가. 테이스팅? 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즐기지 않는다(그건 직업적인 일이다), 평소에 감각기관을 철저하게 관리하지도, 훈련하지도 않는다. 식음행위에 방해되지 않도록 개인적인 관리는 하지만 프로가 아니기 때문에 일정 수준을 강요받지 않기 때문이다. 앞다투어 위스키 팬들의 리뷰 장소를 모시는 다양한 앱들, 서로서로 자신의 미각을 전시하는 매체들 사이에서 나는 방황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점수를 매긴다. 단위는 무려 백 분의 일로, 그들은 구분한다. 내게 위스키 점수는 출판물로는 짐 머레이, 웹사이트는 whiskyfun.com으로 족하다. (이제는 짐 머레이도 필요 없다) 물론 먹는 이들에게 자신의 느낌은 언어화하고 표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우니 좋지만 그 사이 위스키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글이 잘 쓰이지 않으니 알기 쉽게 다른 이야기를 끌어오자. 앞서 다른 기호품들 이야기를 했다. 한국은 세계 커피의 약 6%를 소비하는 커피 소비의 대국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커피는 어디로 가는가. 널리 퍼진 커피의 존재는 처절하게도 밋밋하다. 맥심의 세대가 있다면 나머지는 아메리카노 세대다. 두 커피의 존재가 커피를 편하게 마실 수 있게 해주니 좋다. 그러나 그 다음이 없다. 혹자가 커피의 맛없음은 참아도 어리석음은 못참는다고 했던가. 커머셜 원두를 알다가도 모를 방식으로 단지 검게 추출할 뿐인 무수히 많은 커피들이 우리에게 "카페 문화=공간 대여업"이라는 인식을 남겼고 이 나라의 카페 개수는 이제 프랑스와 영국을 합친 만큼 많다. 덕분에 형성된 거대한 시장 규모에 비해서 커피는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 미국에 아메리카노, 호주의 롱 블랙과도 다른 "아아"가 우리의 커피로 자리잡았는데, 이들간의 우열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아"를 맛있게 타는 곳을 여러분은 가지고 계신가? 그렇다면 맛있는 아아는 무엇인가? 이것에 대해 우리는 언제 마지막으로 이야기해보았는가?

모든 커피가 스페셜티가 될 필요는 없다. 커머셜로 원두의 양만 적당히 맞춰 추출한 에스프레소도 비율만 잘 맞춘다면, 적당히 쌉싸름하면서 커피 콩의 향, 아침의 각성까지 두루 전달해줄 수 있는 좋은 요리가 된다. 그러나 그러한 커피의 꿈은 어디에 있는가. 원가론에 입각해서 커피가 비난받는 일은 하루이틀이 아니며, 총체적 문화의 공간으로서 카페는 카공족과 주문의 매너따위의 담론에 휩쓸린다. 그 속에서 커피는 내몰린다. 나는 열 번에 한 번도 커피의 맛에 대해 직원이나 오너에게 말을 하지 않는 편이지만, 나만 가만히 있는다고 카페는 평화로운 공간이 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커피 맛"을 토대로 커피를 개조하고자 하는 이들은 이미 내가 무수히 목격해왔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커피와 기계, 그걸 내리는 사람은 그 주문을 만족시킬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이러한 지옥도가 펼쳐지는 와중에도 좁디 좁은 한국의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있다. 수백~수천 만원을 호가하는 컨설팅부터 COE 딱지를 달고 나오는 원두까지 한국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커피의 풍경이 다양해졌다. 영미권의 저작물들도 썩 부족하지 않게 공유되고 옮겨진다. 그러나 그런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가 도처에 깔린 커피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값비싼 원두는 유명세를 타고 각 가정과 업장으로 순식간에 팔려나가지만, 각자 내리는 환경부터 제각각이니 원두에 대해 말해 무용하며, 애초에 그 경험은 복제 가능하지도 않다. 매일매일 세계 최고의 원두만 마실 수 있는 환경 따위는 없다. "세계 최고의 원두를 먹어봤음네"하는 이야기는 백 년을 읊어도 우리가 지금 마시는 커피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위스키도 마찬가지다. 국내 위스키 시장의 성패는 저가 블렌디드 위스키, 즉 유흥주점 판매용 제품들의 매상과 정확하게 비례한다. 애호가들이 논외라며 무시하는 골든 블루사가 시장의 절반을 점유하고 있다. 기타 업체들도 비슷한 저가 블렌디드로 먹고 산다. 40도 미만의 위스키가 40도 이상의 위스키의 점유율을 뛰어넘었다. 이게 현실이다. 이 위에서 극소량에 불과한 싱글 몰트니 피트니 따지는 애호가들의 소모임이 있고 그 안에서도 누가누가 더 귀하고 비싼 걸 마시는지 가른다. 이딴 이야기로는 세상은 커녕 내가 오늘 마실 위스키마저도 바꿀 수 없다. 커피는 카페인이고 위스키는 알코올인게 현실이다. 체면치레로서 이름은 달려있지만 문화로 대접받는 날이 올까. 비싼 가격표를 단다고 문화가 가꾸어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커피는 자기 길을 찾아가고 있다. 커피는 생산지에서 완성되는 제품이 아니므로 어쨌거나 문화가 조금씩은 가꾸어지고 있다. 그러나 위스키는? 여느날 위스키 테이스팅 코스를 제공한다는 어떤 바의 광고를 봤다. 블로그 체험단 광고였다. 아, 술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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