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글렌드로낙

어느 날의 글렌드로낙

빌리 워커. 그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의 이름이 반갑지 않다. 그의 팬들도, 그의 팬들의 팬들도.

빌리 워커의 고향은 애초에 위스키로 굴러가던 곳이었다. 발렌타인 제국 아래에서 자란 그가 위스키 공장에 취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특기할 점은 그가 화학을 전공했다는 데 있었다. 빌리 워커는 화학 전공을 살려 약품 제조회사에서 일하는 등 화학자로 커리어를 쌓은 뒤 고향의 발렌타인에서도 자연스레 화학 지식을 이용해 위스키 생산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그는 곧 발렌타인을 관두고 소규모 증류소에서 마스터 디스틸러를 시작하는데 그의 야망은 그때부터 이미 남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증류나 블렌딩과 같은 기술적인 부분을 넘어 세일즈 등의 영역까지 넘보았던 그는 남아공의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벤리악을 인수하면서 스타덤에 오른다. 이들의 사업 전략은 블렌디드 라벨에 쓰이는 증류소 중 적절한 해리티지를 가진 증류소를 사들여 부활시키는 것이었는데, 긴 역사를 가진 벤리악이 낙점된 것이다. 물론 단순히 역사를 잘 포장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벤리악은 새로운 싱글 몰트-라틴어로 포장된-기도 했지만 플로어 몰팅과 같은 옛 기법을 부활시키고, 퍼스트 필 버번에서 오크 향이 더욱 빠르게 스며든다는 점을 근거로 퍼스트 필 버번을 바탕으로 캐스크 피니시나 더블우드로 와인 캐스크의 색채를 사용하는 등 특유의 아이디어 역시 성공의 비결일 것이다. 메쉬를 쑤는 온도나 포샷을 잘라내는 타이밍 등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대대적인 변경을 가했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안목은 마케팅 측면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버번 캐스크에 대한 그의 신념을 반영한 초기 증류분은 이후 무수히 많은 실험용 캐스크로 옮겨져 한정판의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그는 독립병입자들이 아닌 증류소가 희소성의 가치를 가지기 원했으며 그렇게 되는 방법을 잘 아는 남자였다.

벤리악을 바탕으로 이후에는 글렌드로낙까지 인수하여 지금의 그는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글렌드로낙은 벤리악과 달리 셰리를 정체성으로 내세웠고, 특히 페드로 히메네즈 피니시와 같은 강렬한 과일의 단맛을 강조하는 캐릭터로 이미 진행중이었던 셰리 유행의 흐름을 제대로 찔렀다. 이외에도 위스키 애호가들의 취향을 반영한 냉각여과 생략, 색소 미첨가 등의 요소들도 브랜드의 명성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거의 반평생을 이렇게 차입매수 후 엑시트 방식으로 위스키 업계의 성장을 이끌고, 또 그 혜택도 받은 빌리 워커지만 그가 커질수록 드리우는 그림자 역시 더 짙어진다. 인물에 대해서는 잘 알려졌지만 맛에 대해서는 더 적게 논해진다. 라벨에 빌리의 사인이 되있는 것으로 이미 사람은 이 위스키의 맛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만다. 자신은 까다롭고 섬세한 입맛의 소유자라서, 경허밍 풍부하고 부유한 미식가라서 그렇지 않을 것 같은가? 천만에. 선조가 물려준 낡은 인류의 두뇌는 그런 것으로 바뀌지 않는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글렌드로낙은 참으로 뻔하게 좋은 맛이로 기억에 남았다.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의 정직한 단맛, 긴 시간만이 줄 수 있는 좋은 마우스필이다. 누가 감히 부정하겠는가.

하지만 빌리 워커 본인보다도 그 뒤가 걱정이다. 그를 좇아 소규모 병입자와 실험작들, 인물을 강조하는 영웅주의 마케팅은 늘어나고 있지만 편하게 좋은 위스키를 만나기는 어째 어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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