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ok Book:Fortnum & Mason, HarperCollins, 2017

The Cook Book:Fortnum & Mason, HarperCollins, 2017

그 여느 때보다도 귀족과 왕족 타령에 진저리가 나는 요즘이다. 아주 짜증을 넘어서 절망적인 감정마저 든다. 아시아 민주주의의 횃불(?)따위의 소리까지 듣는 문화권에서 유독 호스피탈리티와 F&B 사업에서는 귀족과 왕들이 통치를 이어나가려는 듯 하다. 게다가 그 족보를 살펴보면 기업들의 주머니를 채워주기 위한 가짜 왕조같아서 더 거부감이 든다. 이거 손님이 아니고 주인이 왕이라서 왕이라고 장사를 하는건가 의심이 들 정도인데, 정말 귀족과 왕 타령을 하는데 부끄럽지 않게 상품과 서비스를 갖추기는 커녕, 단지 몇몇 중요한, 혹은 그 사이에 끼어서 선택받은 이들에게 진정한 왕 대우-한국적인-를 선사하고 있는 풍경을 보다보면 나머지 배경의 사람들이 너무 걱정된다. 결국 몇몇 이들이 놀이터를 즐기기 위해 나머지가 눈 뜨고 코 베이고 있는건 아닌가.

이런 불행한 현실을 깨버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바로 내일모레면-이 글의 작성일은 2021년 5월 30일- 출간되는 포트넘 & 메이슨의 책이 번뜩 떠올랐다. 이제 출간될 책은 티타임 책이라서, 호텔 바깥에는 애프터눈 티라는 문화가 없고 호텔들도 구색 맞추기 수준에 머물러 딱히 이야기할 이유가 없는 책이지만 일전에 출판된 책들은 다르다. 이미 나는 앞선 두 권의 포트넘 & 메이슨 책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왜 그 이야기를 안했지. 1707년 설립되어 수많은 황제와 왕들, 프린스 오브 웨일스들, 공작들, 공작부인들, 총리들, 총리부인들...을 먹여살린 이 포트넘 & 메이슨을 낱낱이 밝혀 그런 이상한 환상과는 적어도 좀 다르다는 현실을 밝혀보고자 한다. 이 책은 그럴 목적으로 쓰인게 아니지만, 그런 지점들이 있으므로.
「포트넘 앤 메이슨」의 300년 역사상 처음 출간된 요리책이다. 포트넘 앤 메이슨이 유통하는 재료들, 피크닉 햄퍼부터 다이닝 룸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고객들에게 제공해온 요리들에 뿌리를 두고, 그들의 재료를 바탕으로 한 요리들을 담은 실전용 요리책이다.

일단 저자 이야기부터 해보자. 이 책은 포트넘 씨와 메이슨 씨의 책이 아니다. 그분들은 이미 오래전에 영면했다. 그렇다면 그 기업의 직원이 쓴 것도 아니다. 저자는 여러 메이저 잡지에 레스토랑 리뷰를 비롯한 식문화에 대한 글을 쓰는 톰 파커-보울스다. 그 이름이 익숙한 사람도 있으리라. 조부가 장남이 아닌 덕에 작위를 상속받지는 않았으나 백작가의 후손이며, 그의 어머니는 찰스 왕세자의 유명한 불륜 상대다. 이제는 정식으로 결혼해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그의 아버지가 되었다. 물론 그는 왕위계승서열을 따지는 적자들 사이에 끼지는 못하지만, 친부도 앤 공주와 한때 연인이었으니 거의 반다리 왕가와 걸친 집안에서 자랐고, 음식 관련 인플루언서들이 꼭 표기하는 학벌과 학력에 있어서도 프렙스쿨-이튼-옥스포드의 전형적인 루트를 모두 거쳤으니 "정통 귀족"임은 분명하다.

그런 그가 귀족이니 엘리트니 하는 삶을 전부 벗어던지고 뛰어든 곳이 음식 글쓰기였다. 보통 GQ나 데일리 메일에 기고하는 일을 귀족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의 음식에 대한 사랑은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총애를 받은 카밀라 여사의 요리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그의 입맛의 귀족을 넘어 로열 패밀리에 가까운 취향이 묻어난다고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대중을 상대로 한 글쓰기를 지향하면서 영국이라는 찬란한 문화가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살찌워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저자의 배경 소개가 길었는데, 여왕과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워런트를 달고있는 포트넘 & 메이슨과 왕가에 출입하는 아드님이 말하는 진짜 「포트넘 & 메이슨」요리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자.

우선 요리에 대해 다루기 전에, 식자재 유통상인 그들답게 고작 두 페이지의 재료 소개에서도 놀라운 탁월함이 돋보인다. 물론 그들이 유통하는 방대한 재료들을 소개하는 것은 아니고, 가장 중요한 재료들에 대해서만 '이런 것들은 주로 이런 것을 쓰세요'하는 간단한 소개가 있는데 하나 하나가 서울에서 구할 생각이 아득해지는 것들 뿐이다. 물론 런던에서 삶을 이어나간다면 그래 좀 좋은거 먹고 살지 정도의 난이도지만, 서울과의 격차가 아득히 느껴진다. 이를테면 버터만 두고 보더라도, 영국 아마존에서 아마존 PB 버터나 앵커 버터는 100g당 60~70p, KRW 환산기준 천 원 수준이다. 한국에서도 덩치가 큰 버터를 인터넷이나 식자재상을 통해 구입하면 앵커로 이정도 단가를 맞출 수 있지만, 사실 극적으로 차이가 벌어지는건 프랑스 등 좀 더 맛있는 버터를 찾을 때다. 네이버를 검색해봐도 이즈니가 250g에 7~8000원을 수성하고 있지만 영국에서는 동일 무게로 ocado를 통해 GBP 2.5, KRW 4000 언저리로 해결이 가능하다. 이렇게 좋은 버터가 저렴한게 문제가 아니고, F&M은 아예 서울에 존재하지도 않는 버터를 추천한다. Abernethy라는, 아일랜드에서 핸드밀로 밀어서 판매하는 버터인데 100g에 GBP 2정도를 받는다. 런던에서 서울의 이즈니나 에쉬레 수준의 가격을 주고 사먹는다니. 아일랜드 버터의 훌륭함을 느끼고 나면 그럴만 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서울에서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 간격의 냉혹함을 느낀다. 귀족 귀족 타령하면서 정작 그들의 요리가 아니라, 기본 재료인 버터 하나에도 접근도 못하고 있다. 한-EU간 1톤 미만은 무관세, 1톤 이상과 영국산은 8%에 불과한 관세를 보면 지금의 가격은 정당화되기 어려운데, 선택지마저 엉망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가 귀족 왕 어쩌구 요리를 감히 할 수 있을까?

거기에 더해 이탈리아산 대중적 브랜드 위주의, 사실 사용법이 잘 알려지지 않아 잘 쓴 요리를 만나기도 어려운 앤쵸비같은 재료 이야기를 보다보면 요리로 넘어가기 전부터 진이 다 빠진다. 스페인의 레스칼라를 추천하는데, 한국에서 주로 쓰이는 이탈리아 염장멸치들에 비해 그다지 고급품은 아니지만-사실 버터도 뭐 최고급품 따져가며 추천한게 아니다- 스페인 앤쵸비에 대해서 씹을만큼 다양성이 확보되지 못한 점에서 좌절한다.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전부 지중해산인 이탈리아와는 달리 스페인은 산지에 따라 멸치의 상태가 다르다. 물론 전부 Engraulis encrasicolus라는 종에서 벗어나지 않는 듯 하지만 식생에 따라 멸치의 풍미나 지방의 정도가 달라진다. 당장 스페인에서 멸치 산지로 유명한 곳은 지중해쪽이 아니라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는 칸타브리아의 산토냐로, 어떤 셰프가 그곳의 Don Bocarte社 제품만을 쓴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여간 이런 제품들은 다 무슨 고급이니 에르메스니 찾을 것들이 아니다. 물론 조금 더 나은 품질과 지속가능성 등의 가치를 추구하기에 가격이 오르기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주방의 감초 노릇을 톡톡히 하며 여러 요리에 두루두루 쓰이려고 존재하는 것들이지 뭐 특별한 날에 먹으려고, 혹은 특별한 손님을 대접하려고 존재하는 무언가 어마어마한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 주방은 커녕, 과연 귀족과 왕을 들이미는 곳들의 주방에서도 이런 기본적인 재료의 품질을 담보할 수 있을까? 취향taste의 다양함을 담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 타령이 얼마나 공허한가!

자, 이제 주방에서 어떤 것들을 가지고 주물러볼지 살펴보았을 뿐이므로, 본격적으로 왕과 귀족(?)들의 요리를 나누어보자. 시간에 따라 배열된 책장에서 가장 첫 장은 당연히 영국식 아침식사인데, 한 장을 넘기자마자 등장하는 인물은 다름아닌 에드워드 8세다. 남성 복식사의 아이콘, 전직 영국 왕. 국민들의 지지를 신경쓴 다른 왕족과 달리 왕족의 삶의 즐거움만 쏙쏙 빼먹은 그는 매일매일 항공기를 통해 아침 식사 재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대접된 선왕의 아침식사는 무엇이었을까?

정답은 청어구이와 파슬리 버터였다. F&M을 통해서 받은 재료는 바로 훈제 청어, 그중에서도 으뜸이라는 작은 어촌 크래스터Craster의 훈제 청어였다. 통짜 기준으로 2021년 물가를 기준으로 보통에서 조금 더 나은 품질의 훈제 청어보다도 마리당 GBP 3~4가 비싸서 청어중에서는 썩 부담스러운 물건이지만, 결국 에드워드 8세도 청어에 파슬리 버터랑 레몬즙 뿌려서 먹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하나에 오세트라 캐비어를 5g 올리는 캐비어 달걀 정도가 아주 약간은 환상적이지만, 그보다도 책을 가득 메우고 있는건 뻔한 영국 요리들이다. 캐저리Kedgeree-주로 훈제 생선살을 잘게 다져 삶아서 으깬 달걀, 버터와 크림에 각종 향신료와 볶아서 만드는 일종의 볶음밥에 F&M이 자랑하는 향신료들을 담뿍 쓰거나 에그 베네딕트에 홀랜다이즈가 아닌 베아르네즈를 쓰는 식으로, 전국민이 즐기는 요리들의 뿌리에 섬세한 감각을 더해 훌륭한 요리로 완성시키는 식의 접근법이 가장 많이 보인다. 점심 식사는 당연이 피쉬 앤 칩스와 피쉬 파이부터 시작이다!

저녁의 정찬의 경우에서는 무언가 말도 안되는 것들이 나올까 싶지만 역시나 전반적으로 그렇지 않다. 블랑케트 드 보(프랑스)나 고아식 커리(비자야나가르-인도 이슬람-포르투갈), 튀긴 주키니 꽃(이탈리아)과 같이, 영국이 교류하는 문화권들로부터 배워온 고전적인 영국식 변형들이 주축을 이룬다. 가장 영국적인 만찬이 아닌가! 세계 각지의 요리들을 한껏 빨아들인 모습들을 보다보면 과연 세계 제국이 맞기는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와중에 이 요리들을 단지 그 땅에서 뽑아온 게 아니라, 영국의 환경에 맞게 손을 본 저자의 아이디어들이 빛난다. 다만 생각을 통해 이해할 수 있을 뿐 서울에서 구현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은데, 이를테면 치즈 수플레를 만드는데 필요한 그레이스번 치즈는 페타랑 비슷하기는 하지만 질감이 다른데 그런건 서울에 없다. 체다 치즈는 있지만 다들 상태가 아주 메롱이다. 단순한 닭 요리에도 랭커셔의 구스나그Goosnargh 닭의 중요성이 강조되는데, 사실 이 닭도 스페셜티 닭들에 비하면 대단한 닭은 아니지만 서울의 닭과는 다르다. 그 차이는 사실 뻔해서, 혼합사료 대신 곡물로 살찌우고 사육기간을 한국 육계보다 여유롭게(8주) 가져가는 것 뿐이다. 최소 1.3킬로, 보통 1.7킬로그램까지 크는 구스나그 닭은 마트에서 파는 닭중에서는 경쟁자가 없고, 억지로 크기만 키운 닭중에서 체급을 맞출 수 있는 국산 닭들을 구해볼 수 있지만 그런 닭들도 가끔은 정말 참담하게 맑고 옅은 맛인데 식감은 또 안좋아서 절망한 때도 많았다. 어디 가족이 드넓은 토지에서 마침 닭을 정성스레 키우고 있으면 가능하려나. 구스나그 닭은 그런게 아니다. 고든 램지가 홍보대사로 있기는 하지만 고급 레스토랑의 경영자가 아니어도 그냥 소매상을 통해 구매할 수 있는 조금 더 좋은 닭일 뿐이다. 이게 톰 파커-보울스가 소개하는, 잘나고 잘사는 영국적 식사의 본모습이다. 하층민부터 왕족까지 다들 비슷비슷한 잉글랜드 식문화에 뿌리를 두고 비슷한 요리를 사랑한다. 그러나 여유가 조금 더 있고 요리에 대한 사랑이 조금 더 있다면, 영국에서 더욱 훌륭하게 맛이 나는 영국의 재료들을 찾아 쓰고, 또 숙달된 경험을 바탕으로 조리에 섬세함을 더하면 그야말로 격조 높은 요리가 된다.

이 책은 아침식사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그 사이사이의 티타임까지 영국인의 일상의 요리들을 빠짐없이 수록하고 있으면서도, 재료와 조리, 레시피의 섬세함을 담아 포트넘 앤 메이슨이 보여주는 귀족적, 혹은 현대 사회에서는 미식가적인 일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아주 더할 나위 없이 잘 묘사하고 있다. 이 빼곡함에 주목하라, 독립적인 장으로 아이스크림 장도 있다! 나의 아이스크림 타령을 떠올리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전술한 바와 같이 한국에 있는 입장에서는 실전용 레시피 책으로는 쓸 수 없지만, 차에 곁들이는 작은 과자들의 레시피는 그럭저럭 쓸만하다. 다만 이제 이 부분의 개정증보판이 신간으로 나올 예정이라서, 특히나 샌드위치나 스콘과 같은 애프터눈 티의 심장과 같은 요리들은 기본적인 것들만 다루었는데 신간에서 풍성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미뤄두었다.

서울 한복판에 왕이 어쩌고 하는 호텔이 들어서면 사람들이 행복해할까? 그곳에 가면 왕의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물론 나는 왕과 귀족 근처도 가고 싶지 않지만, 진정 잘 누리고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란 무엇이고 어떠한가에 대해서 이 책은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 혹시라도 오해할까봐 요약하자면, 왕족들도 다 비슷한거 먹고산다~ 이런류의 정신승리가 아니라, (주로 혈통 덕을 보지만) 지도 계급이 된 사람들은 다양한 문화권의 요리를 한껏 겪어서 그들의 입맛으로 받아들이는 양적 성장으로, 그리고 그런 요리들을 더 나은 방향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세부적인 부분을 개선하는 질적 성장으로 미식 세계를 발전시켜 왔다. 포트넘 앤 메이슨은 그들을 위한 무역업자로서 그 길을 착실히 닦음과 동시에 훌륭하게 기억하고 있다. 삶은 달걀과 에그 베네딕트에 캐비어 혹은 랍스터가 곁들이는 레시피는 돈 많은 사람들 돈자랑하라고 만든게 아니고, 캐비어의 감칠맛과 갑각류의 질감과 향을 더하여 더 좋은 요리가 될 가능성이 있어서 수록된 것이다. 이것이 단지 이 고급 재료들을 봐라, 놀랍고 부럽지 식이라면 과연 그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문화를 가꾸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