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rsquare, Indelible, Mk. XVIII
온라인 포럼을 무대로 새로운 럼의 시대를 연 포스퀘어 증류소의 리처드 실은 럼 업계의 거인이다. 종래 대부분 칵테일을 위한 저렴한 믹서로 쓰이는 가운데 좋은 럼이라고 불리는 시장은 클레망과 같은 AOC 마르티니크나 플랜테이션을 필두로 한 가당 럼이 양분하고 있었다. 국가마다 생산 방식도 달라 통일적인 규제가 없었기에 숙성 기간이 긴 음미하는 럼sipping rum 시장에서는 은근슬쩍 연도를 과장한 상표를 쓰면서 색소와 당을 담뿍 넣는 등의 제품이 시장을 장악했다.
이런 시장 속에서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각국 증류소들은 싸구려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는데, 흐름에 변화를 만든 인물이 포스퀘어의 리처드 실이었다. 그는 애초에 당류를 증류하여 알코올을 얻는 과정에서 단맛이 강할 수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증류 과정, 숙성 과정에서 얻어내는 향과 텍스처가 참된 증류주의 맛이라는 철학을 다시 세웠다. 스카치 위스키와 같은 술에서는 당연한 것이 그간 럼에 있어서는 당연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다양한 캐스크의 사용이나 숙성 컨디션의 관리 등에 대해서도 그의 제품은 선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덕에 가격도 올랐거니와 원하는 배치를 구하기도 어려워진 포스퀘어이기에 이제는 기대같은 느낌은 아니리라 지레짐작했다. 70달러에 육박하는 가격을 생각하면 퍼포먼스에 대한 잣대는 더욱 엄중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퀘어의 최근 배치는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여러 캐스크 사용을 통해 얻어낸 오렌지 제스트나 과육의 과실향이 럼 원액 특유의 캐릭터와 만나 재밌는 캐릭터를 그려냈고 오크의 전형적인 바닐라 향 역시 모자라지 않게 뽑힌 편이었다. 열대 기후의 폭발력인 증발량을 적절하게 관리한 끝에 맞춘 40% 후반대의 ABV, 그럼에도 두터운 마우스필이 과연 마스터 디스틸러의 고집은 여전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가끔은 세상이 잘 돌아가는지 걱정되는 한 잔이었다. 포스퀘어는 주류점에서도 몸값이 비싼 병을 모아놓는 진열장에 들어가 버렸고 럼의 표기에 대한 국제 규격에 대한 소식은 아직도 요원하다. 럼이라는 술은 분명 앞으로도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을 텐데 발걸음이 느리다. 술도 어디서 태어났는 지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는다지만 가끔은 너무하다 싶을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