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 프랑크푸르트 요리

프랑크푸르트 - 프랑크푸르트 요리

한국에서 독일 요리는 불행한 취급을 받고 있다. 자칭타칭 독일 전문가들마저도 실은 독일 요리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 채 독일 요리는 맛이 없다는 편견을 재생산에 전달하고 있는 수준이다. 물론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식문화 마케팅에 비교적 공을 들이지 않는 당국의 문제도 있겠으나, 국제관계나 경제 등의 분야에서 독일이 심심치 않게 롤모델로 떠오르는 와중 독일 식문화가 가진 강점은 어째서 가져오지 못하는가 하는 갈증은 그대로 지속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생각이 가능하다. 일단 한국에 독일 식문화가 아예 없지는 않다. 21세기 초까지 독일 맥주는 지금과는 달리 당시 유수의 미식가들마저 극찬해 마지않았던 고급품으로 인정받았다. 또 다른 한가지 분야는 육가공이다. 밀가루를 넣은 어육 소시지부터 스팸으로 대표되는 통조림에 이르기까지 어두운 근대를 거치며 육가공품이 식문화에 새로이 자리한 상황에서 소시지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독일의 육가공은 한국의 육가공 문화를 이끌어왔다. 물론 독일의 지역색이 강한 육가공품들이 자리잡았다기보다는, 한국인의 육가공품 문화에 어울리는 독일 육가공품이 선택적으로 수용된 모양새에 가깝다. 그럼에도 썩 다양한 종류가 국내에서 대량 생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지중해 지방의 염장 건조육이나 노르망디~잉글랜드의 선지를 이용한 블랙 푸딩(부댕 누아)과 같은 육가공품에 비해 압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럼에도 독일 소시지를 활용한 식문화가 같이 유입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시지는 캠핑 아이템 이상의 존재로 거듭나고 있지 못하다. 식문화를 선도해야 할 주방에서 육가공품을 다루지 못하는 현실 또한 원인일 것이다. 그 속에서 독일 요리를 전문으로 표방하는 가게들은 종종 등장하고 또 사라지는데, 프랑크푸르트 역시 그 중 하나라 생각했다.

어찌저찌 독일을 상징하는 요리가 되어버린 슈바인스학세는 뼈를 그을리면서 얻은 육수로 그레이비 느낌의 소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평범하게 이상적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종류의 소스가 배척받고 있는 관계로 단맛 바탕의 소스만이 제공되어 아쉬움을 남겼지만, 콜라겐이 많은 부위를 조리하는 대안적인 방법으로 유익했다. 피하에 가까운 부위를 고온의 젤라틴 형태로 조리할 것이냐, 또는 냉채와 같이 굳혀 낼 것이냐 하는 선택지는 족발에서 흔히 나타나지만 족발은 고온을 유지할 경우 전체적인 불균형이 일어난다는 문제가 있다(특히나 오래 삶지 않는 족발은 더더욱). 그에 비해 오븐에 굽는 조리법은 껍질을 질감 다변화의 매개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메리트가 있다.

그러나 학세는 사실 프랑크푸르트 요리랑 별 관련이 없고, 진정 프랑크푸르트를 프랑크푸르트 레스토랑으로 만드는 것은 그뤼너 소세(grüner soße)였다. 적어도 서울에서는 이 소스를 먹을 수 있는 곳을 거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소스의 존재만으로도 방문의 이유가 되었다. 특유의 신맛과 화사한 상큼함이 차가운 요리부터 구운 고기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어울리는데, 애석하게도 허브의 개입이 적극적이지 않아 미완의 그뤼너 소세였다. 보리지나 처빌, 타라곤 등 주장이 강한 서양 허브를 잔뜩 써서 만들어야 하는데 그 내심을 알아주는 이 없었다.

(튀김의 상태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보여주는 것이 있으니 생략하겠다.)

프랑크푸르트 모처의 관광식당. 프랑크푸르터 슈니첼. 삶은 달걀은 그뤼너 소세의 단짝이다

원래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사였기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정말 많은 그뤼너 소세를 먹었다. 원예가 발달한 프랑크푸르트의 역사를 보여주는 요리이기도 하면서 코티지나 사워 크림같은 유제품의 발효 풍미를 만끽할 수 있어, 중북부 유럽에서 마치 지중해 해안가를 떠올리게 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서울의 날씨는 그만큼이나 더웠지만, 프랑크푸르트 요리가 서울에서 깃발을 세우기에는 슬프게도 모자라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도전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 어느 문화권도 마찬가지지만, 독일 역시도 단순히 서너 가지의 요리로 대표될 수 없는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그 내면을 들추어 보지 않고서 어떻게 인생을 풍요롭게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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