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궁 - 한국식 중식의 사정

서궁 - 한국식 중식의 사정

한 때 '노포'라는 단어와 함께 오랜 중식당 방문이 마치 미식가들의 통과 의례처럼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다.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녹두장군의 5대 짬뽕을 소비했고 전국 오지에 있는 오랜 중식당이라면 전부 '맛집'으로 등극했다. 대만 국적의 화교들 역시 덩달아 중국 요리의 명인으로 떠올랐다. 호텔에 자리를 잡은 요리사는 '쓰부'가 되었고, 개인사업자 중에는 이연복과 같은 스타도 나왔다. 이 시절 정립된 이른바 호텔식-화상 스타일 한국 중화요리와 5대 짬뽕식, 짜장면 짬뽕 탕수육 볶음밥 군만두 정도에 목을 매는 노포류의 갈래가 등장한다. 물론 엄밀한 구분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인 흐름이었다.
어릴적 뭣모른 채로 이런 부류의 식당을 열심히 따라다니곤 했는데 뭇 블로거들이 근거지를 둔 서울에 남아있는 흔적을 톺아보면 우스운 일이었다. 「서궁」에서의 한 끼 식사도 그랬다. 주로 같은 지하에 있는 「버거 플리즈」를 가지만 일요일에는 선택지에 서궁만이 남는다.

서궁의 요리는 나쁜가? 전혀 그렇지 않다. 매장 운영은 굉장히 매끄러우며 음식의 품질은 일관적이다. 만두 모양이 조금 흐뜨러지기는 했지만 두터운 피를 과하지 않게 튀긴 채로 속의 유분기가 적당하니 요깃거리로 큰 흠이 없다. 만두소에 개성이 강한 재료나 양념을 사용하지 않는 한국의 만두 정서상 특출남을 보여주기는 어렵지만 이제는 납작만두까지 갈대로 가버린 만두 세계에서 중용을 지킨다면 앞서 나가는 시대가 아닌가. 볶음밥은 '한국식 중식'이라는 장르가 단지 내오는 요리 뿐이 아닌 매장의 운영 방식을 포괄하는 개념임을 떠올리게 만든다. 중간 정도 공정까지 미리 손을 써둔 채로 마무리하여 내는 방식인데 아주 바싹 마른 나머지 보리를 섞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흩날린다. 맛이 강한 가공육으로 포인트를 더하는 양저우식과 달리 한국식 볶음밥의 해물은 큰 맛을 더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으로 갖춘 염도와 질감이 한 끼를 만족스레 떼울 정도는 되어준다. 분명 이 볶음밥은 이 근방에서는 아주 괜찮은 선택이며, 무작위의 중국요릿집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주 운이 좋은 편이라고까지 할 정도로 앞선 편이라고까지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서궁」의 볶음밥이 다른 볶음밥보다 앞선다는 것은 상대적인 이해이다. 절대적으로 이런 방식의 볶음밥 문화가 지금 앞서 나가고 있는가 하면 결단코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단순하게 보아도 본말전도이기 때문이다. 볶음밥은 기본적으로 밥이라는 매개체vehicle에 기타 단백질이나 양념 등으로 맛을 내는 음식이고 여기에 달걀이나 라드와 같은 지방도 들어가니 지방의 부담을 덜기 위한 향신채(파)가 따라오는 등 모든 재료들이 얼기설기 엮여있다. 서궁의 볶음밥은 짠맛이 모자라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러한 부재료들이 마치 직물을 짜듯이 상호 보완하는 구조는 적절하게 구현해 내놓는다. 문제는 특유의 건조함이다. 열을 이용해 기름을 완전히 입혀내지 못하면 식으면서 기름을 도로 내뱉는 기름밥이 되곤 하기에 볶은 채로 흩날리는 상태를 유지하는 볶음밥이 흔히 볶음밥의 황금률로 제시된다. 확실히 서궁의 볶음밥도 경쾌한 느낌이다. 하지만 특유의 가벼움은 결과, 즉 기름과 양념이 전부 잘 배어든 밥을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볍게 잘 날리는 마른 질감 그 자체를 의도한 느낌이 강하다. 기름이 강하게 당기지 않다보니 다른 요리에 손이 가고 편하게 먹는다는 생각은 들지만 입맛이 당기는 정도가 약하다. 촉각과 미각의 불일치 사이에서 약간의 혼란마저 온다.

그럼에도 이곳의 볶음밥은 많은 중화요리 식당들이 알아서 탈락하면서 얼떨결에 굉장히 앞선 음식을 내는 곳이 되었다. 여의도 복판에 갇혀 반드시 중국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나는 또 다시 서궁을 찾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내가 찾는 곳은 남부에도, 동부에도, 북부에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당들이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단지 무언가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위치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물론 서궁의 요리사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 다른 쪽이 각성해야 하는 문제다. 탕수율을 붓니 찍니 하는 사이에 볶음이라는 기술 자체가 아주 실전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한국에 밥 쥐는 명인은 초월적인 번식력을 자랑하는데 반해 웍 토스 명인은 멸종 위기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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