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ical Spirits, FUCK TRUMP AND HIS STUPID FUCKING WALL

Empirical Spirits, FUCK TRUMP AND HIS STUPID FUCKING WALL
광각 렌즈의 폐해

덴마크의 Empirical Spirits에서 만든 FUCK TRUMP AND HIS FUCKING WALL을 드디어 개봉하였다. 아무대로 가정집 주방이다 보니 딱히 개봉할만한 상황이 없었고, 결국 혼자 해먹는 자기만족용 요리를 위해 개봉하고 만 것이다.

"복제 불가능한 경험"은 일체 게시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이 원칙은 무수한 의문과 위협에 빠져 있다. 애당초 복제는 뭐고 불가능은 뭔가. 사람이 하는 일인데 편차가 있을 수 있고 불가능은 상대적이다. "사회생활의 경험법칙 또는 거래상의 관념에 비추어 실현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와 "절대적 물리적 불능"은 구분 가능한가? 나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개념에 스스로 천착하는 이유는, 나의 글에 더 많은 논의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스스로 맛에 취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일방적으로 말하는 방식이지만 이 글을 읽는 이들이 내가 말하는 것들을 마주하고 느끼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기에 기왕이면 경험이 수월한 것들을 글감으로 삼을 뿐이다.

그러한 점에서 덴마크 어디께에 가서야 구매할 수 있는 Empirical Spirits의 물건을 소개하는 것은 상당히 고민되는 일이었다. 물론-이 제품의 음미라는 경험의 복제는 한국에서 전적으로 가능하다. ES가 온라인 판매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세금 문제가 걸린다-나는 덴마크에서 핸드캐리로 이 물건을 들여왔으므로 1병 관세 면제의 혜택을 입었을 뿐이어서, 27%의 증류주라는 독특한 성격의 물건에 어떤 세금이 물릴지에는 아는 바가 없다.

그럼에도 게시를 결정한 것은 애당초 이 물건은 경험의 복제를 도전할 사람이 없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비용만 지불할 용기가 있다면 이제는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구매 당시만 해도 덴마크 동네 가게에나 공급이 되었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유럽의 많은 대규모 리테일러들이 이 제품을 판매한다. 온라인 배송이 되는건 확실하다. 그런데 어차피 이 글을 읽고 공식 홈페이지 같은 곳에서 이걸 주문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경험의 복제 불가능성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먹고 싶은데 못 먹는 사람은 없는 셈이라고 치자. (정 원하신다면 소분해서 한 두분은 드릴 수도 있겠다)

기본적으로 이 요리는 고추를 투명한 액체로 만든 것에 가깝다. 개봉과 동시에 화사한 고추의 향이 폭발적으로 피어오른다. 정확히 어떤 고추 블렌딩으로 칠리를 만드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남미 어디께에서나 맡을 수 있는, 과실의 향긋함과 고추 특유의 매력을 진득하게도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증류 방식을 취해 팔레트의 매운맛은 완전히 사라졌다. 마치 할라피뇨의 향을 액체로 만든 듯한 느낌이다. 팔레트에서는 신맛이 지배하며, 후개구로는 메론이나 녹색 채소의 짙은 풍미가 매우 긴 여운을 남긴다.

니트로 테이스팅하기 위한 제품은 아니므로, 공식 사이트의 제안에 따라 Fuck Trump and Coconut을 만들어서 마셔도 보았다. 입맛에 맞는 레시피대로 코코넛 밀크 대신 코코 로페즈를 썼고 비율도 수정하였다. 혼자 마실 거라서 가니쉬도 생략. 기본적인 맛의 얼개의 구성을 느껴보자.

칵테일로 활용했을 때 이 물건은 또 다른 위대함을 발한다. 아주 손쉬운 방법으로 음료에 그야말로 멕시코의 뉘앙스라는걸 더해준다. 화사한 고추의 향기를 손쉽게 더할 수 있으면서도 신맛과 녹색 채소의 향의 문법은 자체로 어색하지 않다. 어떤 음료와 섞어도 이 물건이 액체에 부여하는 힘은, 바로 멕시코의 맛이라는 캐릭터를 부여하는 지점에 있다. 멕시코의 맛이라는 점에 대해 생각해 보셨는가. 타코에 올라가는 그 신선한 칠리. 칠리의 향긋함이 고스란히 배어들면서 음료의 팔레트에서는 발효로 얻어지는 과실향과 채소향을 더하니 , 바텐더의 강력한 새 무기가 되어줄 수 있겠다.

Emprical은 단순히 Noma의 후손들 A와 B가 아니다. 그들은 증류라는 하나의 요리법을 집중적으로 후벼팜으로서 증류 조리의 새로운 지평들을 열고 있다. FTAHSFW는 그러한 그들의 풍성한 상상력과 철저한 실행능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러분이 바에서 즐기는 것은 단순한 노스탤지어나 시시한 굽신거림이 아니라 위대한 요리라는 점을 그들은 보여주고 있다. 여러분에게 칵테일이란 무엇인가? 증류주란 무엇인가? Emprical은 이걸 통해서 그 질문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덴마크 현대 요리, 뉴 노르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 물건으로 답을 갈음할 수 있다. 결코 그들의 요리가 아이디어만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저온 증류, 진공 증류, 발효, 냉침. 현대 요리에서 주로 논의되는, 정확하게는 이들이 논의를 열어제낀 요리계의 첨단 기술의 집성체이기도 하다. 허무할 정도로 활용도가 좋은 완성도는 증류소의 전통 따위에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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