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원 - 비건 중식, 그냥 중식

가원 - 비건 중식, 그냥 중식

이곳을 검색하면 백의 구십구가 비건 중식당이라는 점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래서 두 가지로 생각해보았다. 하나는 비건 중식당이라는 음식점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원래 중화 요리가 이미 채식에 대한 방대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음은 차치하고서라도 한국에서의 가능성은 어떤지. 둘은 그냥 중국 음식점으로서 가원은 어떤가.

마땅한 결론을 내지 못했으므로 가원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두 가지가 얼떨결에 뒤섞인 듯한 음식을 하고 있었다. 비건 옵션을 내면 주로 돼직고기를 두부로 바꾸는 식으로 내어주는데, 나머지 재료들에 대해 얼마나 엄격하게 비건인지는 모르겠다. 야채에 전분 등 건덕지가 없는 음식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할랄이나 코셔와 다르게 보편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인증 기관이 없다 뿐이지 잣대의 엄격함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열악한 현실과 당사자들의 용인 속에 지나가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속편한 해결법은 손쉽게 영역을 늘려갈 수 있어 당사자의 권익 증진에도 도움이 되지만 반대로 진정한 의미에서 채식의 발전에는 장기적으로 악수이다. 두부는 동물성 단백질의 모사품이 될 수도 없고 그러려고 만든 재료도 아니기 때문이다.

두부 이야기를 제외한다면 가원의 조리는 일관적인 가운데 장단이 뚜렷해 주방이 오래도록 튼튼히 유지된 느낌을 냈다. 탕수육의 소스는 튀김옷 전반에 잘 흡착되어 먹는 가락이 부드러운 가운데 내부의 단백질이 과조리되지도 않았지만, 절품이라고 하기에는 반죽의 두께가 필요 이상으로 완벽에는 거리가 있다. 소스의 신맛은 풍성한 편으로 참으로 좋은 일상 음식이라 하겠다. 이런 소스의 영문명이 sweet and sour라는 점을 망각한 오늘날에 더 빛이 나는 완성도다.
가지는 속에 스터핑을 채워 튀겨내는데 소스를 흡착시키지 않고 끼얹듯 내서 마무리한다. 서울 도심 내 몇 안되는 비건 선택지라는 점에서 가타부타를 논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고기 요리인 탕수육 쪽과는 정교함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가지의 크기 때문에 소스에 몰아넣은 조미의 비중이 자연스레 줄어들고 가지의 단맛은 이 요리가 가지튀김일 이유를 더하지 않는다. 익숙한 음식 외에는 전부 이른바 요리부로 넘어가는 한국식 중식 메뉴 구성의 문제로 지나치게 거대해진 느낌인데 가지를 먹기 위해 먹는 가지튀김이라면 작은 가지를 소 없이 튀기는 쪽이 유익하리라는 인상이다. 튀긴 만두를 먹듯이 먹을 수는 있지만 비건 음식은 종국적으로 고기의 모사를 떠나 과채가 가진 고유의 매력을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딱히 그런 목적을 띈 요리는 아니라 느꼈다.

두부 대체의 문법은 여기까지 이어지는데 여기서부터는 아직 내 영역이 아니라 느낀다. 다만 생각이 드는 것은 대부분의 한국 비건 요리가 동물성 단백을 콩단백으로 대체한 뒤 같은 방식의 조미를 사용하는데, 콩고기부터 비건새우 등의 노골적인 모사품들부터 이런 짜장면까지 같은 바이브를 공유한다. 개인사를 이야기하기는 싫지만 레퍼런스를 위해 타율적인 채식 생활 경험을 인용하자면 애초부터 주어지는 재료가 야채밖에 없으면 반대로 그 안에서 고민하게 된다. 식문화에 대한 레퍼런스 자체가 부족했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예컨대 시금치에 된장찌개말고는 먹을 게 없으면 두부로 차돌 된장찌개를 모사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그 자체로 맛있게 먹을 궁리를 하는 식이다. 시금치는 얼마나 데칠지 기둥은 어디까지 자를지 하나하나가 신경질적인 문제가 되고 버무리는 기름의 종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생산 영역까지 장악하게 되는 농촌 생활이라면 채소들이 끊임없이 내는 잡무에 휩쓸리는 가운데 통제할 수 있는 영역도 넓어지므로 모사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 안빈낙도가 가능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콩고기를 다져 만든 새우나 어묵 따위에서 슬픈 맛을 느끼지만 잘 띄운 청국장에서는 기쁜 맛을 보았다.

그럼 육식 위에 쌓아올린 식문화로부터 비건들이 배제되야 하는가? 짜장면도 탕수버섯도 가능해야 하지만 방향성은 재검토해야 한다. 검토 내용에 따라 아주 다른 길을 갈 수도 있고 살짝만 비트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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