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lato Caput Mundi - 젤라또
젤라또 카푸트 문디는 서울의 어떤 젤라또 가게를 떠올리게 한다. 가게가 작아도 너무 작다는 점, 유제품의 품질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는 점, 소르벳이 별로 없다는 점, 징그러운 단가의 재료를 쓴 메뉴가 몇가지 있다는 점,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쑤고 있는 남자가 에릭슨을 다녔다는 점.
날이 추워지면 곧바로 문을 닫아버리는 이 조그마한 가게의 경험을 굳이 꺼낸 이유는 요새 한국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열악한 국내 환경을 비웃듯이 이른바 미식가들은 진귀한 재료에 대한 갈증을 더 크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어떠한 것들은 요리의 본질마저 바꿔놓는 경지에 올랐다. COE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커피나 희귀한 와인 따위처럼 테이스팅을 거치는 기호품의 영역부터 대기업이 관리하는 종자를 교잡한 가축에 이르기까지, 주방은 재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고객에게 편견을 심어주고자 노력한다. 물론 일견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저렴한 것을 찾으려고 하는 관성이 있는 요리사가 아직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어두운 근현대의 경험 덕분에 가짜에 가까운 물건들에 익숙해진 환경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태껏 한국은 같더라도 더 공을 들인 생산물에 대해 그다지 대접을 해준 적이 없다. 오죽하면 지금까지도 시장의 농산물보다 방치하듯 키운 것이 더 나은 맛이 날 때가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나는 두 가지 지점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하나는 정말 그러한 엄청난 재료가 나머지를 압도할만큼 중요한가? 두 번째는, 만약 그렇다고 해도, 과연 평가를 내리는 이른바 미식가들은 그를 구별할 수 있는 감각을 갖추고 구별하는 것인가? 물론 이러한 지점은 그다지 중요한 것들은 아니다. 어쨌건 음식은 먹을만 하며, 어쨌건 미식가들은 삶에 만족을 얻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불유쾌한 영향력을 느낄때 나는 제동하고픈 욕구를 느낀다.
개중 하나가 아이스크림이다. 대형마트 냉동고와 베스킨 라빈스가 압도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은 유독 재료 타령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실은 피자와 유사하게 수입 재료를 처음부터 끝까지 깔아주는 편리한 환경 때문이지만, 단순히 소규모로 직접 만들기 때문에 좋다 식으로 해결되던 마케팅이 이제는 아티장 젤라떼리아(Gelateria Artigianale) 쪽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색을 지닌 콜로이드라는 단순한 물건으로 귀결되는 제품 특성상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인식하는 아이스크림의 제조 과정이란 재료가 아이스크림으로 변하는 블랙 박스 모델(Black Box model)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하여간 그러한 상황 속에서 카푸트 문디의 젤라또를 꺼낸 이유는 이곳 아이스크림이 가진 두 가지 특성 때문이다. 하나는 기술적 특성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점성이 상당히 낮은 편인데, 그렇다고 묽은 것은 아니다. 기계에서 사출한 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에 가까운 상태인데, 텍스처를 잡아주는 재료까지 쓰지 않았으니 그 위태로움이 한층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 맛이 묽다는 느낌은 전혀 아니다. 당도 조절을 설탕의 대체품 거의 쓰지 않아 단맛이 정직하게도 참 많지만, 그만큼 두터운 재료의 사용량이 감각을 빠르게 장악한다. 노른자를 넣은 아이스크림 베이스가 선사하는 특유의 고소함이 좋은 자바이오네는 어수룩한 만듦새에도 불과하고 걸작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많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엉망이 된 질감의 아이스크림을 만나보곤 한다. 처음부터 잘못된 점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보관에 따른 열화를 막지 못한 결과가 대부분이다. 물론 둘은 연결되어 있는 지점이지만, 제대로 만든 아이스크림이라도 시간의 경과에 따른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가장 좋은 것은 이렇게 빠르게 소진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기계에서 뽑는 대로 판다면 그것은 젤라또 기계를 소프트 아이스크림 기계로 쓰는 꼴이 되는 것이니 좋은 일만은 아니다. 다만 생각해볼 지점은, 아슬아슬함에도 불구하고 카푸트 문디의 질감은 일관적이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이 아이스크림의 만족감에서 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의 문제이다. 유럽인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존경해 마지않지만, 취미 농업인으로서 지리적 특성이 곧 제품을 결정한다는 시각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결과물에는 훨씬 많은 변수가 작용하며, 실은 AOC(PDO) 인증마저도 품질의 하한선을 보장해줄 뿐이다. 그리고 그 보장은 일정한 과정의 규격화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점 때문에 와인의 경우에는 이러한 인증을 반납하고 자유롭게 만드는 생산자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다른 재료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카푸트 문디는 이탈리아를 고향으로 두고 있는 이민 가정에서 운영하는 가게로 기업을 끼지 않고 이탈리아의 몇몇 농장으로부터 재료를 수급한다. 시칠리아 브론테의 피스타치오, 피에몬테 크라반차나의 헤이즐넛, 칸티아노의 사워 체리. 초콜릿은 도모리. 브론테 타령은 많이 들어보셨겠지만 크라반차나나 칸티아노에 대해서 들어보신 분은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칸티아노는 특유의 절인 체리(Amarena di Cantiano)로 명성을 가지고 있으며, 크라반차나는 랑게에 위치한 마을로 랑게의 헤이즐넛은 PGI를 받은 피에몬테 헤이즐넛 중에서도 별도로 지역 이름을 표기하는, 유럽 지역 내 최고의 헤이즐넛으로 정평이 나있다.
재료론이 옳다면 카푸트 문디의 아이스크림은 그 자체로 완벽에 가까운 물건이었어야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렇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특별할 것 없이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사용했을 뿐인 바닐라와 자바이오네는 여름 우유의 풍성한 단맛이 초원의 아름다움을 그리는 듯 했지만, 피스타치오는 아주 눈에 띄는 수준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재료 자체에서 격의 차이가 나타난 것은 그나마 헤이즐넛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랑게 헤이즐넛이 가진 특징이 기타 헤이즐넛과 역으로 가는 특성이 있었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견과류는 단순히 식물성 지방으로 인식되곤 하지만(정말로 기름을 짜기도 하고), 지방 함량이 낮은 제품이 좋은 경우가 있다. 헤이즐넛의 경우다. 물론 모든 헤이즐넛이 그렇지는 않지만, 랑게 헤이즐넛은 지방이 적은 편인데 향은 강하다 보니 투여량을 늘려 그 시너지를 쉽게 극대화할 수 있다. 물론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경우만. 오히려 이탈리아에서 아이스크림을 쑤는 상황이라면 비용을 생각해서 관두어야 하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여러분이 이러한 재료를 제대로 맛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재료를 논할 자격이 박탈된다거나 한다는 결론으로는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 다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와 연결된 감각 기관들은 그 자체로 준엄한 심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하니, 좋은 식사로 이어지는 길에 대해 그러한 작은 지점에 지나치게 천착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반대로 카푸트 문디의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재료의 고귀함에 비해 특출나지 못했다고 해서, 나쁜 재료를 써도 괜찮다고 생각할 리 만무하다. 이러한 재료의 선택은 무엇보다도 제작자로서의 자부심, 그리고 단순한 거래처를 넘어선 이웃으로서 공급자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아이스크림을 두 컵 먹었을 뿐이기 때문에 어째서 좋은 재료가 좋은 결말로 완전히 이어지지 않았는지 정확한 진단은 불가능하고, 그런 일은 하고 싶지도 않다. 애초에 여행지에서는 평소처럼 관리하지 않기 때문에 내 감각이 무뎌졌을 공산도 있다. 그 무엇보다도 슬픈 것은 이곳에서 즐겼던 행복한 추억은 고작 미식가들의 재료 타령에 대한 스트레스 따위로 덮기에는 너무나 크다는 점이다. 신선한 날씨, 따스한 바람,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카푸트 문디가 위치한 공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잠깐 동안은 너무나도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좋은 음식의 맛도 궁극적으로는 좋은 경험에 봉사하기 위한 것은 아닌가? 몇 장의 사진이 그 따스함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