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레이셔 박 -

글레이셔 박 -

제조 과정에서 육안으로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복잡한 레시피 수행이 용이한 수직형을 선호하지만 이는 원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네모박스 모양의 기계들은 물론 소프트 아이스크림 기계라도 사용자가 정확히 이해하고 사용한다면 좋은 간식을 만드는데 부족하지 않다. 예컨대 호르히 로카의 「Rocambolesc」는 매장에서는 Cattabriga의 603 BIB 리버스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만들지만 그들이 열등한 음식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이외에도 기성품이 다르고 "Oxymoron"이라고 불리는 장난감도 있는 등 소프트 아이스크림 치고는 팔자가 매우 좋기는 하다-. 중요한 것은 기계를 어떻게 다루며, 왜 그렇게 다루는가, 무엇을 넣어서 무엇을 뽑아내는가에 있다.

따라서 입장과 동시에 보이는 칼피지아니사의 제조기를 보고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그보다도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입구에 걸려있는 불상의 액자들이다. 무의미한 잡지 게재의 기록이나 사설 교육기관이 수여하는 '쯩'들과 함께 눈에 밟히는건 펜스테이트에서 제공하는 3일 과정의 교육 이수 증명이었다. 교육 과정의 제목이 "Introduction"이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시한 이유가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했다. 초보자를 위한 교육만을 받았다. 그 내용을 고백하고 싶었던 것일까? 생각건대 소비자가 알파벳 읽을 줄 모르길 바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초보자 단계의 교육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날 때부터 대단한 위인을 자처하는 경우의 위험함에 비하면 아름답다고까지 하겠다. 그러나 바로 그 단계에서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면? 소비자는 괴로움에 빠진다.

두 가지 맛과의 가격차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선택하게 되는 세 가지 맛(KRW 7000)에 본지의 등재조건인 바닐라와 나머지, 코코넛과 어떤 차를 끓였다는 맛 세 가지를 담았다. 전체를 관통하는 감각은 흐림이었다. 바닐라는 가열 과정에서 생기는 불유쾌한 맛이 그대로 남아있어 불행한 가운데 점도까지 불충분해 맛의 경험이 먹구름과도 같았다. 기성 우유의 열악한 환경은 주어진 사실이지만 그것에 대한 답변이 존재하지 않았다. 나머지는 이야기해서 무엇하랴. 전체적으로 기계에 넣으면 나오기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인상이었다. 바닐라가 바닐라 맛이 없듯이 코코넛도 그랬고 그런 연장이었다. 그 가운데서 경험을 지탱하는게 있다면 깨를 넣은 튀일이었다. 튀일로서 질감은 좋다고 말하기 힘들었지만 아이스크림의 흐릿한 맛에 대조되는 짙은 고소함으로 경험에 긍정적인 인상을 더했다. 튀일을 없애고 남은 아이스크림은 남아도는 혀의 단맛과 대비되는 후각의 공허함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역마다 이런 개인 가게들이 난립하지만 적절히 거리를 두고 경쟁자가 생기기 전까지 도시 곳곳을 채워나갈 뿐, 취향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는 만들어지고 있지 않다. 당장의 요리에 대한 평가보다도, 이러한 환경이 나는 더욱 우려스럽다. 그러나 이곳의 음식으로부터 취향을 논할 가능성은 앞으로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단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쓰레기통에 뚜껑이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음식에 대한 대화가 오고가지 않는 서울에서 접시는 요리사에게 거의 유일한 정보원이 아닌가? 그곳에 뚜껑이 덮여있으니 어떠한 변화도 기대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