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스 - 2024년 겨울 이전 오픈

기가스 - 2024년 겨울 이전 오픈

인구 천만, 배후지까지 합하면 넉넉잡아 수천만의 인구가 활보하는 서울이지만 서울이 좁게 느껴지는, 넓은 세계를 바라보는 요리를 하는 식당을 찾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외국의 느낌이 나는 요리를 하거나,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한다고 해서 그런 요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경향성에서 나는 편협함마저 느낀다.

기가스는 얼마 되지 않는 예외 중 하나로, 서울이라는 틀을 벗어나려는 요리를 선보이는 모습으로 청담동에 있는 레스토랑 중-가장 청담동스럽지 않은 멋을 뽐냈다. 그리고 결국 그 자리를 떠났는데, 새로운 기가스의 모습에 대해 다뤄보자.

예약 전에

예약은 네이버 예약(새로 생긴 듯 하다), 캐치테이블, 전화 등으로 가능하며, 별도의 확인 절차는 없다.

요리

와니농장의 야채

첫 샐러드는 기가스를 관통하는 조리의 미학을 가장 명징하게 보여준다. 첫째로는 순간성(ephemerality)이다. 여기서는 이우환의 표현을 빌려보자. 기가스의 요리는 마치 작품처럼 계획은 짜되 단순한 계획의 실현으로 완성되지 않는, 제요소와의 관계에 주목한다. 제작은 재현적 수순이 아닌, 여러 조건과의 대응 속에서 탄승한다. 이렇게 얻어낸 결과물은 에스키스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 순간적(ephemeral)이고 일회적(unique...Einmaligkeit)이지만 일견 전일성(Alleinheit)마저 드러낸다.(이상 이우환, (2002), 여백의 예술, 현대문학, pp. 279-280에서 일부 발췌.) 물론 이우환의 작품도, 기가스의 요리도 이런 개념들을 완전히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가스의 요리는 어째서 그 아름다움에 근접하는가? 하나는 조리의 동기가 그 자신-주방에게 있지 않은, 어쩌면 타율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동기, 즉 자연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가스의 자연도 인간이 꿈꾸는 완전한 자연과는 거리가 있지만, 계절의 순환과 땅과 바다의 섭리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기가스의 요리가 그 대상이 되는 재료와 가지는 관계는 더욱 특별하고 생경하게 다가온다.

기술의 측면에서는 텍스처를 상실하는 압착과 인퓨징, 그리고 다시 불어넣는 휘핑을 통해 일회성을 성취한다. 기가스의 요리는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재료의 결합이지만, 순간적이고 낯선 음식이기도 하다. 기가스의 샐러드는 일상적인 식물들로 꾸며내지만, 그 풍경은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이다. 하우스 온실의 딸기는 꿈꿀 수 없는 눈 덮인 노지 아래 숨죽이고 때를 기다리던 푸성귀의 고귀한 신맛이 있다. 뛰뚜아멍의 사바용이 프랑스적 문법에서의 아름다움을 뽐냈다면, 기가스의 사바용은 스스로를 빛내기 위한 디딤돌의 느낌을 준다.

겨울 루꼴라, 서해 관자, 저지소 우유 리코타 퐁듀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가스의 요리가 완전한 우연에 기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간의 변동성(분명한 맥락이 있다는 점에서무작위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에 주목하지만 그 자체에 휩쓸리기 보다는 자신의 언어로 소화해내는 것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당연하게도 기가스의 요리는 완전하지 않고, 완전할 수도 없다. 이 요리는 그 불완전성의 일례라고 느꼈다. 켜켜이 쌓아낸 맥락을 통해 각각이 기여하여 완성하는 한 입에는 크게 수긍이 갔지만, 균형에 있어서는 분명 불완전했다. 소스의 응집도는 현실적 문제-한국에서 치즈를 요리한다는 것은 언제나 고통을 수반한다-를 감안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구성 요소별 균형이 흔들리고 있었다. 첫 한 모금 뒤로는 그 완성된 한 입을 갈망해 접시를 긁어보지만 나머지로는 재현할 수 없는 그런 문제가 있었다.

비트, 밖미역섬 갑오징어, 겨울 허브

기가스의 개별 요리에 대해서는 몇 차례에 걸쳐 다룬 바 있으므로 이제는 다시 하나하나 뜯어볼 열정이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서는 하나 기록해 두자. 오징어를 소스로 가공하는 그 감각만은 색만큼이나 악마적으로 탁월하다.

귤, 당근, 서해 생합
보리새우, 유자

청명한 매운맛을 주제로 하는 이 요리에서는 어쩌면 단백질의 무의미까지 느꼈다. 물론 새우의 단맛도 분명 좋은 성질을 지니고 있지만, 이 요리에서는 더욱 급진적이지 못한 데 데한 아쉬움까지 느낄 수 있었다. 이 요리의 주인공은 새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추와 호박이다. 찬바람 아래 단단히 굳어진 단맛과 따사로운 햇빛이 교차하는 듯한 감각, 지고의 사치스러움이 스며들었다.

마라도 민어, 시금치, 냉이
7일 숙성 한우, 18개월 숙성 밤
푸름 당베르, 배 세미프레도
다크 초콜릿 파이
그랑메르 클라푸티(Clafoutis Grand-Mère), 펜넬 뿌리

제대로 분리되어 있는 전문 제과 주방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서양 요리라는 틀을 가지고 있는 기가스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클라푸티는 그러한 약점을 착실하게 보완하여 공간 이전을 통한 도약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잠시 클라푸티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클라푸티는 옥시타니아, 리무장 지역의 음식으로 다소 묽은 반죽에 과일을 과육 그대로 넣고 굽는다. 원래는 검은 체리를 사용하는 게 가장 일반적으로, 씨가 있는 것을 사용할지 없는 것을 사용할지에 대한 소소한 취향의 논쟁도 있다. 레퍼런스가 될 수 있는 클라푸티로는 역시 Gérard Mulot의 것을 꼽을 수 있는데, 크렘 프레슈를 사용해 우유를 사용하는 옛방식의 레시피보다 한층 기품 있는 쾌락을 선사하면서도 끈적함과 무름 사이의 틈을 파고드는 커스터드의 질감으로 파리를 사로잡곤 했다. 물론 체리 수급부터 문제가 되는 우리의 팔자에서 같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기가스의 클라푸티는 아쉬운 대로 아쉬웠다. 기가스의 클라푸티는 넉넉하지 않은 인력과 장비로 기가스적인 꿈을 그려낼 수 있는 훌륭한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클라푸티의 세계에 섰을 때에는 첫째, 두께가 너무 얇았다. 구운 커스터드의 질감을 충분히 만끽하려면 조금 더 깊이가 있어야 한다. 둘째, 우리 사과가 가진 신맛은 구웠을 때 뽐내기에는 다소 모자란 감이 있다. 어느 쪽이던 인위적으로 맛을 잡아 당겨주는 조치가 있었어야 한다. 예컨대 라뒤레는 레몬을 처방해서 체리의 신맛을 인위적으로 강조하는 것과 같이.


이전한 기가스에 대한 총평은 아직 이른 것으로 보인다.

같이 보기: 기가스
오픈
2022년 봄
2023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