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방 - 제과, 영감, 본질
국내 제과점에 대한 글의 빈도는 초기에 비해 크게 줄었다. 오랜 독자 여러분이 가장 잘 아시리라. 이유가 몇 가지 있겠지만, 내가 피력했던 '아마추어리즘'에서 제과 아마추어리즘은 나에게 멀어져만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들거나 활용하는 측면에서의 아마추어리즘의 벽도 있지만 - 집에서 많은 양의 생크림과 초콜릿을 보관하는 일은 우리 주방 사정과 너무 상반된다 - 제과에 대한 글쓰기의 아마추어리즘에서 나는 내가 없는 세계가 낫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제과에 대한 글쓰기는 '결론적으로 맛있었다'는 끝맺음이 아니면, 허용되지 않는 세계가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제과가 아닌 음식 저널리즘 분야 전반이 전부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까탈스러움을 내세우는 영상 콘텐츠 제작자들이 주로 노리는 먹잇감은 일상 속의 식사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제과? 크리스마스의 케이크나 여름의 빙수 따위가 핀잔거리가 되는 것이 전부이지, 대부분의 제과 저널리즘은 상당한 부분을 내부자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제과를 배우거나 제과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청년들이 학생과 블로거 사이 어딘가에서 제과사가 되거나 그만둘 때까지 여러 제과점을 다닌 기록을 남기고, 언젠가 그 기록은 끊어진다. 또 새로운 사람들이 그 일을 하고 있고, 그런 것들이 네이버라는 플랫폼에 켜켜이 쌓여 있다. 나는 그 중 한 겹이 되고 싶지는 않다.
물론 좋은 제과를 두고도 나쁜 말을 고민해서 쏟아내는 것이 절대 해법은 아닐 것이다. 한 마디로 원한을 가지는 프로들을 여럿 만나온 내가, 본지의 취지에 불구하고, 불필요한 적대감을 형성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은근히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유순한 마음 때문에, 한동안 제과는 의도적으로 외국의 것만을 다루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마음의 짐을 다소 내려놓았다. 결코 이곳의 과자들이 이런 고민을 가져다준 것은 아니지만, 우연의 것으로, 간만에 제과를 두고 '사유하는 즐거움'을 여러분과 다시 나눠보고자 한다.
과자방은 외견상 썩 성공적인 제과점이라고 본다. 양적으로, 질적으로, 제과라는 장르가 택해야 할 정도를 탁월한 열정으로 따르고 있다. 특별한 날을 가꿀 수 있는 케이크부터 일상에 약간의 단맛을 더해줄 과자들까지 구성이 풍부하고, 다시 찾는 객과 초객을 위한 것들이 두루 구비되어 있다. 일상을 풍성하게 만들기에 좋은 제과점이라는 점을 먼저 밝히고 가자.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과자방이 선보였던 두 제과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상을 구체적으로 풀어보려고 한다.

소금을 뿌려 마무리한 버전에서 샹티 유사의 크림으로 바뀌었는데, 큰 틀에서 맥락은 유지되고 있다. 초콜릿의 긴 호흡에서 프랄린과 비스퀴가 치감과 약간의 짠맛을 더한다. 그렇지만 이름에서는 위스키라는 단어가 가장 앞을 차지하고 있는데, 한국어의 어순을 감안하여 위스키와 소금이 초코를 꾸며주는 말이 되어야겠지만 인식 속에서는 불어처럼 위스키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은 과자와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일 테니.
이름과 실질의 연결은 성공했다고 본다. 쉘을 지나고 나면 썩 이른 타이밍부터 피트 위스키의 향이 입천장을 지나 콧등까지 스친다. 피트의 느낌이 난다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라프로익이나 아드벡보다는 탈리스커의 느낌으로 추측한다. 버번 캐스크에서 숙성한 위스키와 다크 초콜릿만큼 전형적인 짝이 없으니, 향을 녹여내는 위치나 정도에서도 벗어남이 없어 적절한 그림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과자를 두고는 이견의 여지가 있다 보겠다.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넘어 나는 묻고 싶다. 케이크에서 위스키의 향이 나면 맛있는 것인가? 미성년 때부터 제과를 배워 주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제과학교나 원데이 클래스 선생님들의 수업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제과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위스키의 환상에서 한 걸음 물러서면 위스키 이전에 초콜릿을 바탕으로 한 과자에 대해 생각해보자. 위스키부터 소금까지, 초콜릿의 높은 농도로 인한 피로를 넘어 초콜릿을 완식하기 위한 설정이다. 사실, 제과에 사용되는 초콜릿 자체가 그 위대한 향에 불구하고 강한 쓴맛을 다스리기 위한 가공품으로 시작하는 것이 같은 맥락 위에 있다. 그런 점에서 과자방의 위스키 소금초코는, 이름의 배열처럼 초콜릿에 대한 필요를 느낄 때 우선하여 떠오르는 그런 결과물은 아니다. 잘 만든 초콜릿 케이크에 대한 필요를 충족해줄 수 있는 것은, 이번에 게재하지 않는 도쿄 세베이유 쪽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무슈 아르노-아르노 라러까지 이어지는 이야기가 되는 셈인데 이쪽에 대한 사족은 달지 않겠다.
두 초콜릿 케이크가 상시 진열되어 있는 과자방의 포트폴리오가 유지되는한 위스키 소금초코가 가진 약점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를 통해 여러분께 초콜릿 케이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면, 좋은 것은 무엇인가? 이 가게에서 여러분도 두 과자 사이에서 나름의 취향을 찾아보시길 바란다.

다양한 콘셉트를 시도하고,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는 과자방은 분명 매력적인 제과점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이 재방객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같은 수준을 만족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들이 있어, 그 예시를 하나 들고자 한다. 지금은 계절이 지난 가을철의 파리지앵이다.
파리지앵, 사워 계통에 속하는 칵테일로 사실 바에서 자주 마시는 칵테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데이빗 원드리치가 추적한 기록에 따르면 해리스 뉴욕 바의 바북에서 등장한다고 하는데, 파리의 해리스에서 딱히 이 칵테일을 내세우고 있지는 않다. 나 또한 카시스를 취급하는 바에서도 이 칵테일을 주문한 기억은 없다. 파티셰들이 고전 칵테일 역사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아마도 카시스를 활용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찾다가 길을 만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원본의 파리지앵 칵테일은 진과 드라이 베르무트, 그리고 크렘 드 카시스의 단순한 구성이지만 과자방의 파리지앵은 히비스커스에 이어 이탈리쿠스까지 후각을 자극하는 것들의 존재감이 전면에 등장한다. 질감의 경우 바바를 감싼 무스, 크림에 글라사주의 구성으로 질감이 매우 아슬아슬하다. 전부 다 입안에서 녹아내리듯 무너지는 부드러운 식감의 일변도이기 때문에 여러 겹의 향이 동시에 밀어붙이는데, 주장이 강한 증류주들이 남긴 인상으로 곧잘 음료를 마시게 된다. 바닥지를 사용하지 않는 케이크라고 하지만, 바바가 대책없이 부드러워야 하는 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려 지나치게 촘촘하게 구워 충분히 적셔지지 않은 바바까지 있는 세상이라지만 파리지앵의 바바는, 기둥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연약했다.
향이 순식간에 여러 겹으로 밀어닥치는데 반해 맛은 카시스의 과실 이외에는 썩 평면적인데, 제과에서 술을 다루는 방식의 특성상 쓴맛을 연출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더라도 기왕에 칵테일을 바탕으로 다루자면 질감이나 맛의 구성 어느 한 측면에는 조금 더 두터움이 있었어야 했다는 감상이 남아 있다. 카시스 우롱처럼 편하게 마시는 카시스 음료에도 우롱차의 쓴맛이 지탱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이 제과에서는 그것의 존재감이 충분하지 않았다. 음료를 요구하기 위한 설정이라면(가끔 그런 것이 있다. 예컨대 안젤리나의 몽블랑) 성공적이라 하겠지만 그것은 과한 변호가 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