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에르 아란다 서울 - 2022년 가을 오픈

하비에르 아란다 서울 - 2022년 가을 오픈

솔직히 말해서 기대보다 걱정이 컸다. 어찌저찌 사업주의 본체가 어디인지를 대충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방식의, 유럽도 자주 가보고 사업도 해봤으니까라는 흐름대로 오픈하는 유럽향의 영업점들이 주로 가지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이곳도 벗어나기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청담동이라는 입지, 조악하기 짝이 없는 홈페이지 및 공식 인스타그램의 현지화 수준은 이러한 우려를 더했다. 단어당 $0.03~0.04정도 쳐주는 일반적인 번역가를 고용한 느낌인데 외국인이 쓴 문장을 그대로 한국어로 옮겨 쓸 뿐이므로 고가를 지향하는 식당으로서는 부적절할 뿐더러 께름칙하기까지 하다. 주대까지 포함하면 인당 40~50만원의 식당에서 번역기 느낌을 내고 있다니, 저렴한 자동응답 보이스웨어로 "신선한 재료로 정성을 다해 모시는~"따위의 메시지를 설정해둔 과거의 식당들이 떠오른다. 전문 마케터가 너무 티를 내는 경우는 그쪽대로 불안하지만 과연 웹사이트 하나도 현지화가 되다 말았는데 음식이 이 땅에 잘 자리잡을 수 있을까 의문이 컸다.

방문 전

하비에르 아란다 서울의 예약은 서드 파티 앱(캐치테이블)로 가능하며, 예약 확인 문자가 발송되나 이후 별도의 확인 전화는 없다.

요리

하비에르 아란다 서울은 제약이 있는 공간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게 스페인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스페인식의 시간적 경험을 어느정도 구현하고자 노력했는데 그 일부가 위 사진에 보이는 공간이다. 스페인식 정찬처럼 시작 시간이 아주 늦지는 않지만, 예약 시간에 식사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 공간에서 까바를 한 잔 하면서 일단 기다리는 방식이다.

커뮤니티 테이블에서 진행되는 오로되브르-혹은 타파스-의 경우 사전에 파악한 메뉴와 구성이 달라졌는데(하나 빠졌다) 큰 틀에서는 변화 없는 모습이었다. 원래 여기에 페란 아드리아의 에어 바게트를 따라한 요리가 있었는데 가장 먼저 사라졌다. 나머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첫째로 보이는 그림은 선명한 짠맛이다. 바칼라나 초리조와 같이 염장 재료들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는데, 바칼라 본본같은 경우 타르트 바닥지의 단단함이 자연스레 특유의 짠맛을 강하게 느끼도록 연출한다. 위틀라코체-이 '식재료 수입'부분에 대해서는 총평에서 후술함-를 이용한 옥수수 스프는 특유의 향을 거의 살리지 못해 무의미했지만, 서울의 황당한 초당 유행을 모르는 외국인 셰프이기에 가능한 좋은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니기리는 일단 니기리가 아니라 마키즈시라는 점에서 참 젊은 셰프다운 무감각함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밥을 형상화한 폼이 주는 감각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스시의 산이나 발효, 어느 쪽도 없이 그저 마지막의 짠맛을 덜어내는 한입거리의 역할이 더욱 커보였지만.

음료의 경우 네 가지를 고르게 하는데 IPA를 선택했다. 드라이호핑한 맥주의 느낌을 살짝 떠올리게 하는데 맥주의 마우스필이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느끼게 했다.

lettuce cocktail, shrimp tartlet, iced parsnip and doenjang

이러한 한 입 요리의 공세는 식탁에 앉아서도 이루어지는데, 커뮤니티 테이블에서 보여준 짠맛과 달리 자리에 앉아 제공되는 요리는 정작 단맛에 치중한 모습이었다. 이를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짝짓기 와인과 별도로 식전주를 주문했는데, 소믈리에와 와인 주문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눈 상태였기 때문에 적절히 요리와 어울릴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지만 그래도 이런 음료가 더 짝이 맞는 것은 앞선 요리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료를 주문하지 않는 고객이 많은 서울인 만큼 식전주를 권하기 어렵겠지만 정작 그러한 선택때문에 필요한 때에 식전주 주문이 어려운 것은 그것대로 곤란하다.

짧게나마 다루어보자면 칵테일이라고 제공된 것은 이 요리사가 여전히 분자미식학의 기술을 정확하게 활용하는데 미숙함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에스푸마를 잔의 윗부분에 올려 층을 만들었는데 밀도 탓인지 잔을 기울이면 같이 입으로 따라 흘러들어오지 못하고 아래의 양배추 즙만 마시게 된다. 기술이 기능에 앞서는 실정이다. 나머지 둘은 사용한 기술이나 표현하고자 하는 맛에서 비교적 또렷한 인상을 주었는데, 타르트는 앞선 본본과 유사하게 단단한 바닥지가 자연스레 전체의 맛을 긴 여운으로 음미할 수 있게 도왔고 아이스크림은 살짝 알갱이 질감이 있는 편이지만 야채의 단맛, 된장의 짠맛 사이의 또렷한 방향성을 그려냈다. 야채 찍어먹는 양념으로 된장만한게 없지 않은가? 그는 이 요리에서 자신만의 감각으로 한식의 습관에 다다르는 모습을 보였다.

빵에는 아르베키나 단일종 EVOO와 에쉬레(!)를 제공하는데 정작 제공하는 빵은 그 엄청난 품격에 어울리지 못했다. 미세한 사워도우 향이 있기는 하지만 썰어둔 채 시간이 지나다보니 애초에 속이 좀 마른 것도 있고, 애초에 속이 잘 발달한 촉감을 주지 못했다. 껍질향 역시도. 그러나 나는 빵 외적인 부분을 굉장히 높이 사고 싶은데, 두 기름의 가격도 그렇고-무엇보다도 '식전빵'이라는 단어를 입에 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연 스페인식의 서비스까지 어느정도 이식하겠다는 욕망이 아주 거짓은 아니었다.

pinenut Ajoblanco with eel

수프 역할인 아호블랑코는 원래는 아몬드 페이스트와 마늘로 만드는 것을 한국 식재료인 잣을 차용하는 식으로 이식했는데, 국산 잣의 단가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요리에서는 정직하게 아몬드만 사용한 것만 못해서 심경이 복잡했다. 이런 부류의 음식은 특유의 질감을 형성하기 위해 견과의 식물성 지방을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볶아서 향을 끌어내야 하는데 그것을 다시 차게 만들다보니 정확히 어느 과정의 문제인지까지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당기는 고소함이 부족한 결과만은 느껴졌다. 기름이 많은 생선인 장어를 덧대고 사과로 신맛까지 보태는 나름대로 배포가 큰 설정이지만 실행의 인상은 반대로 단순하다.

Green asparagus, goat cheese sphere, rhubarb pureé, orange miso

앞서 언급했듯 이제 빠지긴 했지만 하비에르 아란다는 스페인 출신이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려는 듯 지속적으로 분자미식학적 접근을 끼워넣는데, 어느정도 한국의 이런 부류 요리들이 가진 고질병인 일단 기술을 사용하기로 하고 나머지를 나중에 해결하는 방식의 사고가 이 요리에서도 살짝 느껴졌다. 치즈를 거른 뒤 구형으로 빚어냈는데esferificación 치즈가 가진 맛을 완전히 걸러낸 느낌에 아스파라거스에 비해 빠르게 씻겨 내려가므로 요리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실 이렇게 가느다란 아스파라거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렇지 않나. 스페인의 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요리에서 그의 요리는 한국에서 금지당한 사고의 자유로움을 보여주지만, 그렇지 않은 무대에서는 여지없이 취약함을 드러낸다.

shrimp gazbacho, shrimp tuilé, clam and cherry Bloody Mary

야채에 비해 지역의 편차가 적은 해산물로 오면서 요리의 인상은 훨씬 나아졌는데, 토마토 워터로 맑게 낸 가즈파초는 토마토의 감칠맛이 모자라 무딘 음식이었지만 대파와 새우젓을 올린 튀일은 상당히 놀라웠다. 새우젓의 쓴맛은 완전히 빼면서도 튀일의 고소함, 새우젓의 짠맛이 대파 마요네즈의 지방과 멋드러지게 어울렸다. 다음 요리의 저온조리한 뉘앙스의 대합의 부드러움으로 넘어가는 흐름도 경쾌했고, 블러디 메리 주스는 앞선 가즈파초보다 나았다. 토마토에 대한 선택지가 열악한 한국의 실정 때문에 자꾸 문제를 회피하는 느낌이 있지만 새우젓이라는 주제에 대한 도전, 그리고 그 성공은 가히 주목할 가치가 있었다.

Chipirone, dill and pepper sauce, corn crumbles

오징어의 경우 길이를 재보지는 않았는데, 15cm 미만의 경우 어획이 금지되는 새끼 오징어(총알오징어)를 굳이 사용한 이유는 느낄 수 있었다. 연체류의 부드러운 촉감이 살아나게 조리하여 옥수수 크럼블의 질감과 선명한 대비를 연출한다. 여러모로 충실한 요리인 가운데 과연 기억에 남는 것은 옥수수의 진한 향으로 위틀라코체와 달리 우리가 아는 그 뻔한 옥수수였음에도 고귀한 맛을 보여주었다. 요리사가 한국의 비즈니스-초당옥수수-를 잘 모르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Smoked Mackerel, olive sauce, finger lime caviar and grilled lettuce

고등어는 또 다시 분자미식학의 귀신과 마주하게 되는데 다른 예시들에 비하면 의도 자체는 선명하다. 라임 주스를 캐비어로 만들어 등푸른생선에 곁들이는 산의 존재감을 이끌고, 자연스레 올리브 소스의 신맛의 여운과 이어진다. 곧바로 증발하지 않고 씹어야 비로소 라임의 신맛과 쓴맛이 다가오므로 분명히 액체인 즙과는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고는 있다. 전체적인 완성도는 무난한 수준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기대가 컸던 올리브 소스 쪽이었다. 아세이투나(Aceituna)를 어떤 올리브 품종처럼 설명하는데 실은 아랍어로 올리브(앗-자이툰)를 복수로 이르는 말(앗-자이투나)에서 따온 말로 그냥 올리브라는 뜻밖에 없다. 그것보다는 올리브의 높은 유분, 그리고 쌉싸름한 맛을 소스로 승화할 지에 대해 기대가 있었으나 앞선 오징어와 같이 전반적으로 소스는 감싸는 역할에 치중하고 있다.

Quail breast with parsley oil, parpadelle, cordyceps and grada padano with

육류로 넘어와서, 처음 만나게 되는 파스타 메뉴는 Christian Le Squer에 대한 레퍼런스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동충하초나 메추리 등 재료의 선택만 보면 아주 진보적인 맛을 낼 것 같지만 정작 이 요리가 살아남는 방법은 전통 방식이다. 가금류 잔뼈를 끓여 낸듯한 소스는 뻔한 진득함과 짠맛으로 이 접시를 살아남게 만든다. 동충하초는 버섯 특유의 향을 잘 살리면서도 바싹 조리하였지만 평범한 버섯과 유의미한 차이를 보여주지 못하며, 메추리는 역시 재료의 한계로 특유의 살맛이 모자라다. 프레젠테이션을 앞세운 문법의 파스타는 소스를 빨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소스를 더하고 다시 더할 수밖에 없다. 다행인 점은, 이 소스는 그럴 가치가 있다.

Duck breast, charlotte, coconut cream, strawberry pureé, curry
Corchinillo, hollandaise of quince, garlic and saffron, pickles

앞선 파스타에서 전형적인 형태의 소스를 냈다면 뒤의 요리들은 소스의 질감과 맛에서 변주를 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데, 애석하게도 한계는 뚜렷하다. 오리에 맞춘 코코넛-딸기-커리로 이어지는 아시아풍 소스는 지방과 집중도 모두 모자란 가운데 국산 오리의 빈약한 껍질이 더욱 잘 드러나고 만다. 요리사가 국산 가금류의 실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지 않은 채 이 도시를 떠나고 만 느낌이다. 역시 앞선 오징어와 같이 도축이 금지된 애저는 레스토랑 나름의 솔루션을 통해 내보이고 있다고 하는데 고생스런 준비에 비해 요리의 전반적인 완성도는 따라오지 못한다. 의도적으로 점도를 높여 짜듯이 플레이팅한 모과 소스는 금새 입안으로 미끄러지는 살결의 연약함과 어울리지 못한다. 그리고 아마 지시한 내용이겠지만 껍질을 베이스팅해서 바삭하게 살린 점을 강조하는데 정작 요리사가 큰 관심이 있어보이는 아드리아류의 조리법은 그다지 언급되지 않는데 이 부분이 강조된다는 점이 다소 의아했다.(참고로 베이스팅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글만 보면 육류 시퀀스에 무언가 모자란 지점이 많아 보이지만 흐름이 극적으로 치닫는다는 느낌은 사실 강하게 와닿는 편인데, 짝짓기한 와인의 덕이 컸다. 뉴질랜드의 어린 피노 누아를 맞추어 냈는데 부르고뉴 깊고 어두운 진홍색의 부르고뉴 피노 누아와는 전혀 다른, 화사하고 밝은 피노 누아의 경쾌함이 분위기를 한껏 들뜨게 만들었던 덕분으로, 비싼 와인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짝짓기로 흐름을 만들 줄 아는 소믈리에의 감각에 경탄했다.

Detox - spinach geleé, aired gin, cardamom, celery
Smoked chocolate mousse with picuillo pepper pureé
mignardises

디저트는 패스트리 인력도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한계를 보이고 있는데 초콜릿과 고추를 맞춰낸 디저트에서 야심만은 돋보였다. 피키요-'기가스'가 이에 관심을 가지는 유일한 식당이었다- 고추를 사용해 멕시코의 몰(mole)과 유사하게 매운 맛과 초콜릿의 조합을 선보이는데 피키요의 단맛을 드러내기엔 초콜릿의 맛이 지나치게 평평하고, 흔한 방식으로 피키요를 그을리는 방식으로 초콜릿의 쓴맛을 끌어내는 등 복잡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미냐디즈는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지만 그보다도 곁들이는 차 셀렉션이 주목할만하다. 공부차의 차를 잔뜩 깔아뒀는데 홍차 달라고 하면 루이보스 주는 서울에서 진짜 홍차, 백차를 심지어 썩 괜찮은 것으로 마실 수 있다. 다기가 공부차 협찬품이긴 하지만 낸다는 것으로 만족한다. 서울에서 정찬 후 기문을 마시는 날이 오다니.


총평: 하비에르 아라다 서울은 분명히 현재 가장 주목할 가치가 있는 새 레스토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요리는 서울 특유의 관습에 젖어버린 타성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우며, 스페인 미식이 가진 풍요로운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조리법과 재료의 왜곡과 변형을 통해 놀라움을 연출한다. 그러나 국내 유통이 거의 불가능한 재료들에 기대는 운영 방식은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품게 만들며, 특히 애저나 새끼오징어와 같은 재료의 경우 국내 정서에서는 법령 위반 뿐 아니라 정서적, 윤리적 문제와고 연관될 수 있는 잠재적 문제가 있다. 또한 엘 불리를 위시로한 스페인 요리의 특유의 기술적인 면모에 강한 영향을 받은 모습을 보이는데 몇몇 지점에서 기술을 위한 기술을 선보인다는 인상을 준다. 요리에서는 여전히 형태는 기능을 좇아야 한다(form follows function). 갑작스레 닫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분명 운영상 많은 변화를 거칠 것이고 그 과정에서의 선택이 앞으로를 결정하리라 본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앞으로도 빵 서비스 방식을 유지하고(빵 자체는 아주 많이 바꿔야 한다) 선명한 짠맛과 향을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점이 있다.

서비스: 슬프게도 젊은 직원들은 요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서버들과 오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소믈리에와 셰프 드 퀴진, 수 셰프는 완전한 프로이므로 대부분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지만 어쨌거나 한국인들이 주로 서비스를 받는 대상은 한국인 직원들일 수밖에 없다.

음료: 어쩔 수 없이 스페인 위주, 과실의 성격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와인을 선호하는 담당자의 성격이 드러난다. 모젤 리슬링, 보르도 클라렛과 같은 뻔한 선택지를 비우고 내추럴에 치중한다. 페어링 추천.

가격: 짧은 코스 KRW 160000, 긴 코스 KRW 3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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