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겐 다즈, 망고 앤 크림
새삼스럽게도 한동안 여느 마트, 여느 인터넷 상점에서도 볼 수 있었던 새로 수입된 하겐 다즈 이야기를 해보자. 망고와 크림. 단순하고도 명료한 아이스크림이다. 우유로 모자라 크림까지 넣는다, 그리고 맛은 망고맛. 명쾌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것이 하겐 다즈의 유일한 망고 맛이 아니므로, 망고와 크림은 하겐 다즈의 맥락 속에서 다시 살펴질 필요가 있다.
망고가 디저트에서 가지는 위상만큼이나 하겐 다즈도 망고를 다양하게 다뤄왔다. Generall Mills가 소유한 아태지역 사업부만 해도 망고 소르베와 망고 라즈베리를 이미 기존에 판매하고 있었다. 망고 라즈베리는 하겐다즈에서 꽤 잘나가는 맛이라 스틱바로도 나와있다. 현지 공장을 따로 두고 있는 일본에서는 망고와 코코넛, 망고 오렌지 등 레이어 형태로 맛을 나눠둔 제품들도 등장했었고, General Mills가 아닌 Dreyer's가 쥐고 있는 미주 사업부는 그냥 망고 아이스크림을 생산하고 있다.
어? 그렇다. 그냥 망고는 미주 법인이 아닌 바깥에서는 생산하고 있지 않다. 이 망고 앤 크림이 미국 바깥 법인 버전의 기본 망고다. 들어가는 재료도 정확히 같고, 다만 비율에 있어서만큼 조금 다를 뿐이다. 미국의 그냥 망고가 한국의 망고 앤 크림이다.
먼저 망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무슨 망고인지는 말하지도 않지만 뻔한 것이 애플 망고로 불리는 어윈Irwin이다. 색도 맛도 그렇다. 그렇다면 하겐 다즈의 수많은 망고맛 아종들이 난립하는 이유가 이해가 간다. 이 망고는 아이스크림으로 만들기 어렵다. 카로티노이드 함량이 높아 샛노란 색을 띄지만 어윈은 플로리다 품종중에서도 맛에 있어서는 단맛에 치우쳐져있고, 총체적으로는 맛과 향은 옅은 편이다. 그래서 생식하기에도 부담이 없어서 설설 깎아 십자로 칼집만 넣어두어도 입맛을 돋군다. 다만 그러한 친절함이 가공식품이 되었을 때는 고민으로 돌아선다. 크림 사이에 녹아낸 망고 퓌레는 망고향은 남길지언정 필요한 신맛, 단맛을 제공하지 못한다. 생과로 먹기 좋은 과일은 으레 가공하기에는 지나치게 수분함량이 높아, 즉 가공품 기준에서는 맹탕인 상태인 셈이다. 단맛이야 아이스크림을 만들기 위해 쓰이는 스위트너가 채우지만 이래서야 망고 맛이라고 팔 수 없는 지경이니, 시트러스 계열의 과즙이 들어가는 일이 일어난다. 결과물은 망고 향이지만, 사실 망고의 맛은 모사품이다.
그렇다고 나쁜가? 아니, 잘 만들었다. 오히려 생과로는 존재하지 않는, 차고, 부드럽고, 느끼한 망고를 만들어냈다. 다만 "이거 망고 아이스크림 맞아요"하고 흔적으로 남은 망고 과육은 이쯤 되면 별 의미가 없는 편이다. 망고를 씹으면 아이스크림이 가짜 망고가 맞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여름철도 다 지났으니 한국에서 망고 타령을 볼 일도 당분간 없을 것이다. 제주도 농가와 손을 잡고 만들었다던 "애플망빙"의 태풍은 매년 더 강하게 부는 것 같지만 하겐 다즈의 이 파인트를 해치우는 것으로 매듭짓고 싶다.
망고 얘기 하나 하자면, 망고는 출신지에 따라 싹 나는 형태도 다를 정도로 종의 다양성이 무수하다. 물론 개중에는 못먹거나 안 먹는게 나은 것들도 많지만, 꽤 알려진 알폰소부터 기르 케사르같이 현지에서 크게 사랑받는 인도계 품종들은 생식하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폭발력이 있는 편이다. 인도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방가나팔리도 갓 딴 것의 향이 비싼 망고들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고, 중남미 자생종은 구운 타르트같이 짙은 단맛이 나서 플로리다종과 교배한 것은 독특한 풍미를 내기도 한다. 이런 망고들이 다 환상속 이야기인 이유는 간단히 떠올려볼 수 있다. 첫째, 망고는 긴 유통과정을 버티기 어렵다. 냉동으로 유통하면 좀 낫겠다만 냉동으로 돌아다니는 망고는 시장논리속에서 원가를 후려친 물건들 뿐이다. 둘째, 애초에 유통 루트도 별로 없다. 동남아 여행 붐을 타고 필리핀 망고정도가 알음알음 수입되지만 정보가 너무 없다. 망고의 주무대인 인도나 중동, 플로리다의 망고 시장은 그야말로 딴 나라 이야기. 어윈이 플로리다의 대표 품종이기는 하지만 점차 거센 도전을 받고 있는데, 한국은 여전히 어윈, '애플망고'의 철옹성이다. 셋째, 두 가지가 합쳐져서 생과+어윈뿐이라는 망고에 대한 인식이 가능성을 닫는다. 애플망빙을 떠올려보면 당장 망고에 대해 예쁘게 써는 것 이상의 가공을 원하지 않는 소비자의 의중이 보인다. 퓨레 정도가 한계다.
흔히 퍼져있는 어윈 망고의 맛은 이 하겐 다즈정도면 충분히 훌륭하게 디저트에 녹여냈다고 느낀다. 망고의 단점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훌륭하게 망고 아닌 망고, 디저트로서의 망고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망고 라즈베리, 망고 소르베등 대안적인 맛들도 있으므로 간만에 하겐 다즈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렇다면 망고 디저트가 여기서 끝날 일인가? 앞으로 할 일은 많다.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남미 최대 품종인 토미 앳킨스와 켄트부터 인도의 케사르까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지를 가지고 수입하는 업체도 있고 사먹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생과 형태로 소비되므로 그저 맛없는 망고 내지 낯선 망고라는 인식표를 달고 대중화에 실패하고 있을 뿐이다. "후숙성 멜론"같은게 디저트의 전통을 위협하고 있기는 하지만 단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탄수화물, 지방과 만났을 때 단맛이 폭발하는 행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여러 망고를 실험해볼 수 있다. 어윈보다 가공을 통해 더욱 빛날 수 있는 망고가 있으리라 믿고, 그렇지 않다면 이 이상으로는 망고에게 지출할 일은 잘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추신: 당장 "망고 사고"같은게 바로 옆나라에 버젓이 있는데 이 땅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은 호텔 어디께밖에 없다(그나마 포멜로는 아예 없다!). 매 여름이면 전국민이 망고를 찾아 호텔 로비에 줄까지 서는데 말이다.